여성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손가락으로 배꼽 왼쪽 아래 부분을 가리킨다. "어제 이쪽을 맞았으니까, 오늘은 반대쪽이요." 남성은 손에 든 상자를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고, 그 안에서 개별 포장되어 있는 가로세로 5센티미터 크기의 알코올 솜을 하나 꺼내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는 능숙하게 포장을 뜯더니 배꼽에서 대각선 오른쪽 아래 방향 손가락 두 마디 떨어진 지점에 알코올 솜을 쓱쓱 문지른다.
그 사이 남성은 주사액이 담긴 작은 유리병의 고무 뚜껑 부분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는다. 피스톤을 뒤로 당기자 주사기 안에 하얀 기포와 함께 투명 액체가 차오른다. 유리병을 깨끗하게 비운 그는 여자가 닦아낸 부분의 뱃살을 엄지와 검지로 꼬집듯 잡는다. 강한 소주 냄새가 남자의 코 안으로 침투한다. 아직 알코올이 전부 기화되지 않아 꼬집은 부분은 살짝 미끌거린다. 남성은 그녀의 눈을 한번 쳐다본다.
남자) "자 오늘도 안 아프게, 멍 안 들게 놔드릴게요"
여자) "네~"
사람의 피부는 생각보다 단단하다. 동물로 치면 가죽 아닌가. 지금 피부를 뚫으려는 차디찬 금속이 주인의 건강을 위한 주삿바늘인지 아니면 생명을 위협하는 독침인지 그런 건 피부 입장에선 알 바가 아니다. 그냥 힘껏 밀어낼 뿐이다. 주삿바늘은 쉽사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뱃가죽과 잠시 사투를 벌인다. 그 사이 뱃가죽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간다. "스읍" 여자는 이를 앙다물고 얕게 숨을 들이마신다. '아까 유리통 고무를 뚫을 때 주삿바늘이 살짝 상한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남자의 머리를 스친다. 여성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하지만 남성은 시간을 끌수록 여자가 더 고통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자가 힘을 조금 더 주자 마침내 뱃가죽이 주삿바늘에 안쪽 공간을 내주고야 말았다. 이제 서서히 피스톤을 누를 차례다. 주사기 안의 공기는 금세 약물을 여성의 몸으로 밀어냈다.
남자) "환자분 고생하셨습니다~ 안 아프셨죠?"
여자) "네~ 감사합니다~"
우리 집엔 이렇게 생긴 주사기들이 엄청나게 많다.
시험관이라 쓰고 '주사 지옥'이라 읽는다
갑자기 웬 뜬금없는 병실 스케치냐고? 여긴 병실이 아니다. 우리 부부의 침실이다. 그리고 의사 행세를 하는 허무맹랑한 남성은 바로 나다. 매번 시험관 시술 때마다 펼쳐지는 우리 집 아침 풍경이다. 시험관 시술은 주사로 시작해서 주사로 끝난다. 채취 전에는 과배란을 유도하고, 조기 배란을 막고, 난포를 터뜨리기 위해 각종 주사들을 맞는다. 이식이 끝나면 혈전 방지, 프로게스테론 수치 증가 등을 위한 주사들이 또 기다린다. 대략 보름 사이 난임 여성들은 거의 매일, 정말 엄청나게 많은 배 주사를 맞는다.(그래서 매번 왼쪽 오른쪽 번갈아가며 맞는 것이다.) 주사는 매일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병원이 집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매일 가서 맞기란 불가능하다. 집에 싸들고 와서 맞을 수밖에 없다.
주사는 누가 놓는 게 '국룰'일까
그럼 주사를 누가 놓는 게 좋을까. 난임부부마다 상황은 다 다르다. 남편이 다른 지방에서 근무를 하거나(주말부부), 교대 근무자라 매일 같은 시간에 집에 있기 어렵다면 아내가 직접 놓을 수밖에 없다. 남편이 겁이 많거나 또는 첨단 공포증(바늘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것)을 겪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놔주겠다는데 오히려 아내가 거부하기도 한다. 남편이 놓는 게 더 불안하다는 거다.
우리는 다행히 이런 상황에 모두 해당하지 않아 내가 주사를 놓기로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직접 주사를 놔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내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난임 환자 23만 명(정확히는 2020년 기준 22만 8천382명) 가운데 남성은 35%를 차지한다.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상당수가 운동이나 금연 같은 생활 습관 변화 또는 약 복용으로 개선이 가능하다.(물론 무정자증처럼 심각한 상황도 있지만 극히 일부라고 한다) 나도 정자 활동성과 기형 정자 비율이 정상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개선된 케이스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여성 난임 환자의 경우 몸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야 한다. 나는 저녁에 좀 뛰면 되고, 술 좀 안 마시면 되고, 약이나 좀 챙겨 먹으면 되지만 아내는 훨씬 더 많은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꼭 주사를 놔주고 싶었다. 매일매일 아랫배에 차가운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괴롭고, 참담한 그 순간 옆에 함께 있고 싶었다.
2020년 초 병원에서 처음 주사 놓는 법을 배우면서 찍은 사진
치열한 난임 전투.. 남편의 역할은?
난임 전투에서 남편은 아내의 하나뿐인 전우다. 아침부터 북새통인 난임 병원에서 원무과나 주사실 번호표(보통 동선이 진료실→원무과→주사실)를 뽑거나, 약국에 가서 약을 챙겨 오는 일은 남편의 몫이다. 남편의 역할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내를 보호하는 일이다. 무엇으로부터? 각종 걱정과 시선으로부터. 마치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에 끌려간 세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귀도는 아들 조슈아를 위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현실을 창조했다. 그들이 억지로 끌려온 게 아니라 게임을 하기 위해 수용소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식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실제로 조슈아의 시선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의 눈에 다 떨어져 가는 죄수복을 입은 유대인들은 게임 참가자였고, 이들을 총칼로 위협하는 독일 군인들은 '표정만 무서운' 진행 요원이었다. 거대한 탱크도 대량 살상 무기가 아니라 1,000점을 따는 사람에게 주는, 1등 상품일 뿐이었다.
아들을 속이기 위해 엉터리 통역에 나선 귀도
나도 '귀도'가 되어보기로 했다
내가 우리 집 주사 선생님이라는 정체불명의 황당한 캐릭터를 만들어 매일 같이 허무맹랑한 상황극을 펼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주사를 놓는 그 고통스러운 행위를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밝은 분위기로 바꿔보려는 나의 작은 노력이었다. 나는 가상현실도 만들어냈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아기와 임신을 지워버린 것이다. 아내가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친구나 친척들의 임신, 출산 소식을 최대한 들리지 않게 했다. 결혼 4년 차,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는 우리 부모님의 궁금증도 머릿속에만 머물도록(절대 입밖에 나오지 않도록) 신신당부드렸고, 내가 예뻐하는 조카 사진도 가족 카톡방에 올라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래야만 아내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임의 최대 적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타들어간다'는 느낌은 정말 가슴이 타들어가 본 사람만 안다
매일 힘든 노역에 시달리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동시에 아들까지 속여야 했던 귀도. 하루하루 포기하고 싶지 않았을까. 절대 아내한테는 내색하지 않지만 나 역시 가끔은, 아주 가끔은 힘든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그건 바로 아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볼 때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터널의 끝이 보이지가 않아.." 아내가 이렇게 말하며 눈물 흘릴 때는 내 영혼이 저 천 길 땅끝 아래로 처박히는 느낌이다. 가슴이 타들어간다는 말을 책에서 수없이 봤지만 실제로 그게 어떤 느낌인지는 나이 40에 처음 알았다. 그건, 정말 가슴이 타들어가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귀도를 버티게 한 아들 조슈아의 웃음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귀도를 버틸 수 있게 했던 건 바로 조슈아의 미소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가 한 번 웃을 때마다 새로운 연료가 공급되는 느낌이다. 아내가 어쩌다 한 번 활짝 웃으면 내 얼굴 근육은 조건반사처럼 웃는다. 난임을 겪으면서 내가 새삼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내가 아내의 시원한 웃음을 참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참 슬픈 건, 마치 흐린 날 해를 찾는 것처럼, 아내의 그 사랑스러운 웃음을 보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