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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숨 Mar 01. 2022

아내는 오늘도 퇴사를 고민한다

난임 직장인이 사는 법

자기야 5시 반이야 일어나!


  난임부부의 아침은 조금 일찍 시작된다. 회사원 2명이 동시에 출근 준비를 마치고 러시아워를 피해서 7시까지 병원에 가려면 새벽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6시 반이 되기 전 차에 시동을 걸었다면 일단 안심이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아내는 이내 곯아떨어진다. 아내가 고개를 툭 떨구면 머리에 말려있던 롤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병원 입구에 도착하면 일단 아내부터 내린다. 나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사이드미러 속 아내는 이미 뛰고 있다. 대기 환자는 우리밖에 없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 우린 예약 없이 방문한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예약 환자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야만 진료를 볼 수 있다. 아무리 일찍 와도 소용이 없다. 


  "7시 58분 차를 타야 되는데.. 8시 3분 차를 타면 지각인데.." 


  아내는 지하철 앱을 들여다보며 연신 중얼거린다. 그렇게 20분을 마음 졸인 끝에 마침내 아내 이름이 불렸다. 아내는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초음파실로 후다닥 들어갔다. 불과 몇 초라도 옷 갈아입는 시간을 아끼려는 것이다. 그사이 나는 주사실 번호표를 뽑는다. 몇 분 뒤 진료실에서 나온 아내는 계주를 하듯 내 손에서 번호표를 넘겨받아 주사실로 향한다. 잠시 후 주사실에서 나온 아내는 곧바로 병원을 뛰쳐나간다. 


"오빠 약국 좀 들렀다 가줘요. 나 간다!" 


  그날 아내는 다행히 지각을 면했다. 그나마 고차수(시험관 시술을 여러 번 했다는 뜻)라 주사에 대한 설명을 길게 들을 필요가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시험관 초기 몇 달 동안은 지각을 피할 수 없었다.


  아니 병원 가면서 예약도 안 했냐고? 시험관 시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면 충분히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시험관 일정은 크게 보면 이렇게 구성된다. 이 과정이 대략 보름에 걸쳐 진행된다.


1. 과배란 시작(생리 2일차)
2. 난포 관찰+주사 추가(1~3일 간격)
3. 난자, 정자 채취
4. 배아 이식


  우선, 1번부터 난관이다. 생리 2일차에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럼 생리 2일차 되는 날을 미리 예상해서 그날로 예약을 잡아 놓으면 되겠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있다. 생리가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약이 불가능하다. 2번은 병원마다 다른데 적게는 2차례 많게는 5차례까지 병원에 가서 난포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난포가 하루에 얼마큼 자랄지는 미리 예상할 수 없다. 그날 초음파를 봐야 며칠 뒤에 와야 할지 다음 진료 날짜를 정할 수 있다. 어쨌든 예약이 되긴 하는 거 아니냐고? 겨우 1~3일 전 예약이다 보니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첫 진료 시간은 언감생심, 자리가 없다. 역시 불청객이 되기 일쑤다. 


  3번 채취는 수면마취를 하기 때문에 아예 하루 휴가를 내야 하는데, 날짜는 역시 '그때 가봐야' 안다. 4번 이식 날짜 역시 미리 알 수는 없다. 채취 후 수정된 배아 상태에 따라 날짜가 정해진다. 아예 이식을 못할 수도 있다. 이식 후에는 임신 여부를 판가름하는 피검사가 이어진다. 1~4번 과정에서 언제든 돌발 변수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이처럼 시험관 일정은 모든 게 안갯속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병원에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난임부부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약 껍질


  출근 전 한바탕 스피드 게임을 했다면 이제 눈치 게임을 할 시간이다. 회사 동료들에게 난임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게임이다.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아내의 바지를 세탁할 때였다. 생각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자그마한 플라스틱이 잡히는 것이었다. 꺼내보니 작은 알약 3개가 들어있던 약 껍질이다. 얼마나 허겁지겁 먹었으면, 얼마나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으면, 약 껍질을 쓰레기통에 버리지도 못하고 주머니에 찔러 넣었을까. 그 황망했을 표정이 떠올라 세탁기 앞에서 가슴이 아려왔다. 병원에 가느라 지각을 하고, 때로는 급작스러운 휴가를 내고, 약도 몰래 까먹어야 하지만, 아내는 난임 사실을 회사에 알리기는 싫다고 했다.



아내가 회사에 가지고 다니는 약 보관함


  회사에 알리기 싫은 심정, 아내만 그런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아래 기사 참조) 응답자의 86.1%가 '난임치료 휴가를 사용하기 위해 상사에게 보고하는 것이 싫었다'고 답했고, '상사와 직장동료가 난임치료와 결과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싫었다'는 비율도 82.1%에 달했다. 아직 난임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호기심에 머물러 있다. 그 호기심과 수군거림이 우리 같은 비자발적 딩크 부부를 가장 힘들게 한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216150600530

(2022년 2월 17일 연합뉴스 기사)



회사를 그만두자니
그만둔다고 임신이 된다는 보장이 없고,
회사를 다니자니 스트레스 때문에
임신이 더 안 될 것 같아..


  아내는 매일 퇴사를 고민한다. 하지만 쉬운 고민이 아니다. 만약 회사를 그만뒀는데도 임신이 안 되면, 경력까지 함께 잃게 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냥 다니자니 난임 직장인으로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임신이 더 안 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진퇴양난이요, 사면초가다. 답이 없다.


딱 3일 휴가와 프라이버시를 바꾸라고?


  회사에 난임 사실을 공개하고 지원을 받을까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현재 법으로 정해진 난임치료 휴가는 연 3일이다. 한 달에 3일이 아니고, 1년 365일 통틀어 딱 3일이다. 이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 주변에는 아마도 난임 부부가 한 명도 없는 모양이다. 시험관 시술을 무슨 쌍꺼풀 시술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위에서 설명했듯 시험관 시술 한 차수에만 최소 5번 넘게 병원에 가야 한다. 1년에 3번만 시술한다 해도 15번 이상이다. 그런데 난임치료 휴가가 13일도 아니고 고작 3일이라니. 고작 3일 쉬기 위해 나의 아픔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면, 모두의 호기심과 수군거림을 감내해야 한다면, 나 같아도 이 휴가는 절대로 신청하지 않을 것 같다.


'맞벌이' 난임 부부는 정부 지원도 못 받는다


  난임 직장인들의 아픔은 또 있다. 우리 부부는 2년간 시험관 시술을 6차례 하면서 1천6백만 원 정도를 썼다. 시술 한 회당 2백만~3백만 원이 든 셈이다. (2019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로는 시험관 시술 평균 비용이 366만 원이고 건강보험 지원을 뺀 본인 부담은 153만 원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값비싼 비급여 주사 비용, 각종 비타민, 약값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시술 비용은 해마다 오르고 있다.) 한 회당 최대 110만 원을 지원해주는 정부의 난임 시술 지원비 사업이 있지만 중위소득 180% 이하, 그러니까 2022년 2인 가구 기준 월 수입 586만 8천 원 이하만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적지 않은 난임 부부가 30대 중반이 넘는, 보통 과장급 이상의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는 거다. 자연히 우리 같은 맞벌이 난임 부부는 소득 때문에 정부 지원비를 1원도 받을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시술비 지원 대상자는 얼마나 될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난임 시술비를 지원받은 인원이 4만 5천686명이다. 전체 난임부부(약 23만 명)의 20%도 채 안 된다. 명색이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인데 난임부부 10쌍 중 8쌍이 시술비 지원을 못 받고 있다면 정상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강보험 지원(시술비 중 급여항목의 30%만 부담)도 시험관 9번(신선배아)까지만 해준다. 우리 부부는 겨우 3번 남았다.



2022년 2월 11일 YTN 뉴스 화면 캡처

아이 낳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TV 뉴스에 저출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쓴웃음을 짓는다. "우리나 좀 도와주지" 하면서 말이다. 아마 다른 난임 동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21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26만 5백 명으로 또다시 최저치를 경신했다고 한다. 20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아이를 낳겠다고 발버둥 치는 난임 부부가 무려 23만 쌍이다. 이미 신생아 10명 중 1명은 난임 시술로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 10명 중 9명은 K-직장인이다.(여성정책연구원 조사, 위 연합뉴스 기사 참조) 저출산을 고민하는 정부 당국자들이여, 평일 아침 7시 전국의 난임 병원을 견학할 것을 추천한다.




<오늘도 아내를 바늘로 찔렀다(부제: 난임부부 생존기)첫 화부터 보기 https://brunch.co.kr/@a1f9702194b543e/1

새 연재 <일상의 인상> 보기 https://brunch.co.kr/@a1f9702194b543e/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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