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포형제맘 Aug 28. 2024

엄마의 첫사랑은 너야

3주나 빨리 나온 첫째

  임신이 안정적이지 않았을 때는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럽고 또 안 좋은 결과가 나올까 봐 늘 노심초사했었다. 그런데 안정된 임신을 하고 나니 평소와 같이 생활해도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임신 전부터 하던 과외도 똑같이 오후부터 밤까지 다 하며 막달까지 지냈다. 그동안 아이 키우며 잊고 있었던 첫째의 임신동안 기억을 되살리니 새록새록하다. 나에게 첫 임신의 경험을 해 준 네가 참 고맙다. 첫째가 속상해하거나 동생으로 인한 질투를 할 때 귓속말로 말해준다. "엄마가 너 생기기까지 엄청 기다렸어. 엄마의 첫사랑은 너야." 그럼 첫째가 말한다. "엄마 첫사랑은 아빠 아니야?"라고 ㅋㅋㅋ




 임신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코 <산모교실>이었다. 말은 산모교실이지만 업체에서 광고들을 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 대강 보험이나 상품 설명과 출산이나 육아 정보를 함께 다룬다. 하지만 산모들이 가는 목적은 경품을 타기 위해서가 거의 다 일 것이다. 나 또한 스케줄까지 짜며 오전에  집 주변에서 하는 산모교실을 열심히 다녔다. 신기하게도 첫째를 임신했을 때 산모교실을 갈 때마다 내 번호가 당첨되어 경품을 탔다. 유모차 등 큰 것을 타지는 않았지만 갈 때마다 내 번호가 당첨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내 아이가 행운이 많은가 보다는 기분 좋은 상상도 했다. 역시 넌 럭키였어!


 첫째 임신하는 동안은 검진을 갈 때마다 주말로 예약을 잡고 거의 남편과 함께 갔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고 싶었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머리크기는 주수보다 빠르고 다리길이는 주수보다 느렸던 전형적인 한국인의 특징을 보여준 첫째였다 ㅎㅎ 임신동안 병원에서 하는 요가도 다녔는데 이때 참 좋았다. 그전에 요가를 하면 무리한 동작들을 해서 나에게는 부담이 되었는데 산모요가는 부담을 적게 주며 스트레칭이 되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첫째 때는 임당 재검사도 했다. 재검사할 때 먹었던 약이 괴로웠던 기억이 난다. 친정엄마가 당뇨이시기에 걱정을 한 것과 달리 재검사에서는 통과해서 무사히 출산까지 보냈다. 


 신혼집으로 시작했던 집은 작아서 임신 동안 이사를 했다. 당시에 우리가 선택한 아파트 중 매매로 나온 집이 많지 않았다. 얼핏 보기에 깨끗해 보였는데 가구를 다 빼고 보니 그제야 지저분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수리를 했다고 생각했던 것은 전주인이 어설프게 페인트 칠을 한 것이었고 그 마저도 부분부분 했어서 엉망이었다. 그렇게 이사를 하고 난 뒤 조금씩 수리를 하게 되었다. 이 수리는 내가 조리원에 있을 때도 남편이 계속 이어서 했다. 어느 날은 싱크대를 교체하고, 어느 날은 바닥 마루를 깔았다. 그렇게 이사오기 전에 한 번에 하지 않고 이사 후 치우고 해서인지 아기가 3주나 빨리 나왔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블로그 글들을 보고 고통이 어느 정도 일지 두렵기 시작했었다. 갑자기 양수가 터져 병원을 가게 되었다. 병원은 집에서 가까운 편이라 남편과 바로 갔다. 진통을 겪으며 너무 힘들다가 무통주사를 맞으니 살 것 같았다. 무통 맞은 후 잠시 잠들기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족분만실로 가서 첫째를 만났다. 울면서 나온 아기에게 "알콩아, 엄마아빠야."라고 말하니 울음을 뚝 그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기는 정말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하나 보다. 병원에 있는 산후조리원으로 예약했었기에 병원에서 3일 있다가 조리원으로 이동 후 2주를 보내고 왔다.



 임신했던 기간이 전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임신 전부터 마음고생을 했고 너무 기다렸던 아기였기에 작은 순간들일지라도 떠올리면 늘 감동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는 힘들고, 지치고, 감정과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더라도 이러한 순간들이 있기에 이겨내며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 같다. 오늘도 더 많이 사랑해!



이전 01화 너를 만나기까지 3년의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