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보리
2025년 3월 6일, 목요일
운아당,
어제 늦게 잠들었더니 아침에 늦잠을 잤어. 어쩔 수 없나 봐. 한창나이 땐 밤을 새워도 멀쩡했는데, 이제는 몸이 먼저 반응해.
오늘은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자원봉사자 발대식이 열리는 날이야. 서둘러 아침을 차려놓고 행사장으로 달렸어. 차로 한 시간은 걸리니까.
'청보리'라는 이름, 참 예쁘지? 청소년을 보호하는 이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내게 청보리는 단순한 봉사단체가 아니라 특별한 인연이 있어.
자원봉사자 역량강화를 위해 개설된 '인성동시 작가반'에 참여하면서 알게 되었고, 이 인연 덕분에 산청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글을 쓰게 된 계기도 되었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벌써 3년째야. 작년에는 청보리 자원봉사자 대표로 군수 표창도 받았어. 성실하고 꾸준히 잘 참여했다는 말이지.
행사장에 도착하니 20명의 봉사자 중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참석했더라. 1명은 현재 군입대한 청년이야. 그 청년은 메시지를 보내와서 사회자가 낭독해 줬어. 이 단체가 얼마나 순조롭게 잘 기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야.
자원 봉사자들의 얼굴마다 웃음이 가득했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 몇몇 회원이 내 첫 책, 『어머니 신순옥』 소식을 듣고 다가와 축하해 주었어. 진심이 느껴지는 그 마음들이 참 따뜻했어.
발대식은 지난해 활동 보고, 새로운 임원 소개, 그리고 올해의 사업 안내 순으로 진행되었어. 그중 가장 관심이 간 건 ‘전래놀이 지도사’ 자격증 과정이었어. 요즘 아이들은 영상매체에 익숙해서 함께 노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잖아. 그래서인지 이 프로그램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어. 청소년들과 함께 놀이 문화를 확대해 나가면 인성발달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배워서 손자, 손녀와 함께 전래놀이를 하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신청했어.
청보리에서 활동하며 청소년을 돌본다기보다,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어. 내 삶의 영역이 넓어지고, 마음은 더 단단해짐을 느껴. 봉사가 누군가를 돕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결국은 나를 더 깊게 만들어 주는 일이더라. 그리고 함께 하는 동료들이 참 정겨워서 만나면 좋은 친구처럼 마음이 좋아.
한창 아이들 키우던 시절에는 옆 돌아볼 시간도 없었지. 내 안에 갇혀 바쁘게 하루를 살아내느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살필 여유조차 없었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을 바라보니, 그제야 보이더라. 내가 나만의 삶에 갇혀 있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얼굴들, 말없이 건네던 따뜻한 손길들, 그리고 내가 흘려보낸 소중한 순간들이. 마음을 열자 타인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 속에서 내가 조금씩 말랑말랑 해지는 걸 깨달았어.
림아,
네가 이렇게 타인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봉사는 단순한 나눔이 아니라, 스스로를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초월적 관점'이라고 하지. 나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타인의 세계를 마주할 때, 자기라고 믿었던 거짓 자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는 거지.
자기 발견의 여정은 일평생을 통해 계속 진행된 진정한 자율성을 향한 여정이 아닐까 싶어.
우리는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되고, 더 깊이 성장할 수 있어. 네가 이제 그것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는 게 참 대견해. 지경을 넓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길 바라.
나는 너를 믿어.
너의 성장을 언제나 응원할게.
운아당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