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5일, 목요일
운아당에게,
요즘 손자가 색종이 접기에 푹 빠져 있어.
어제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휙 던지고 거실 구석 색종이 상자로 달려가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어.
"내 색종이로 만든 것들 다 어디 갔어?"
금방 눈물이 떨어질 듯 울먹이는 모습이 어찌나 절박하던지.
내가 널브러진 색종이 작품들(내 눈엔 그냥 종잇조각들)을 비닐봉지에 모아 한쪽에 두었거든.
손자가 그걸 못 본 거야.
그런데 그 봉지를 발견하고 두 눈이 반짝이는 걸 보니, "아이고 예뻐라"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삼각 접기, 대각선 접기 같은 단어를 써가며 나에게 접는 법을 가르쳐 주는 손자.
틈만 나면 학, 탱크, 동서남북, 꽃 같은 걸 접어서 보석처럼 소중히 상자에 넣어두고, 내 생일에도, 크리스마스에도 선물로 내밀었어. 친구들과 놀잇감으로도 쓰더라.
7살 땐 곤충에 빠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고, 엄마 아빠에게 읽어달라고 하더니 줄줄 외웠지.
크리스마스 때는 새해 목표를 발표하는데, "지구상의 곤충에 대해 많이 알아보겠다"라고 하더라.
6살 땐 공룡에 미쳐서 300페이지 넘는 책을 거의 통째로 외우다시피 했고,
어려운 공룡 이름과 특징을 줄줄 쏟아냈어. 공룡 책을 보면서 한글을 스스로 깨치더니 읽고 쓰기까지 하더라. 좋아하는 것에 푹 빠지는 모습이 참 예뻐.
남편도 그런 사람이야. 한때는 전국 100대 명산을 정복하겠다고 등산에 빠졌고, 주말이면 산악회 따라다니면서 전국을 누볐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것이 많이 아쉬운 부분이고 부부싸움하는 지점이었지.
퇴직 후에는 손녀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일에 열심이더니, 손녀가 종일 유치원으로 가게 되면서 다시 취미를 찾기 시작했어. 친구의 권유로 댄스를 배우기 시작하더니, 아침저녁으로 연습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조차 스텝을 밟더라.
그러더니 요즘은 골프에 빠졌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장으로 출근해. 무엇이든 푹 빠져드는 남편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지.
그런데 난 몰입이 잘 안 돼. 왜 그럴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꼭 몰입을 못하는 것은 아니야. 37년간 직장에 매달려 일했고, 결혼해서는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없었지. 집안일에도 성실했고, 동아리 활동에도 시간을 아까워한 적이 없었어.
퇴직 후 첫 1년은 손자 돌보기에 빠져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몰랐어. 그런데 손자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지.
하모니카, 요가, 캘리그래피, 명상, 기타… 뭐든 시도했지만, 처음엔 재미있다가도 금방 시들해지더라. 알고 보니 나만을 위한 취미에는 오래 몰입하지 못했어.
그러다 지리산 산청으로 이사하면서 글쓰기 모임에 들었어. 글쓰기는 가족들이 모두 잠든 새벽이나 늦은 밤에도 할 수 있는 작업이라 좋았어. 결혼 후 내 시간은 언제나 가족과 직장에 묶여 있었거든. 그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걸 이제야 깨달았어. 나만을 위한 취미에 깊이 빠지는 게 쉽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어.
하지만 오늘 아침, 남편이 일어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벌떡 일어나지 않았어. 이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앉아 있었거든. 나도 빠져드는 연습을 하는 중이야.
남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림에게,
너는 언제나 가족과 타인의 일에는 깊이 몰입하는데, 정작 너 자신을 위한 일에는 쉽게 몰입하지 못한다고 했지.
왜 그럴까? 나는 네가 오랫동안 타인을 돌보고, 책임을 짊어지며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외부 지향적 몰입'과 관련이 있어. 우리는 성장하면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법을 먼저 배우고, 특히 돌봄을 맡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뒤로 미루는 습관을 갖게 되거든.
너는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늘 중요한 역할을 해왔어.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오면, '나 자신을 위한 몰입'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해.
특히 돌봄을 많이 해온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때 내면에서 묘한 불안이 일어나기도 하지.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떠오르고, 결국 다른 중요한 일들을 먼저 챙기게 돼.
또 한 가지, 몰입은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한데, 너는 네 삶의 대부분을 타인을 위한 일에 몰입하면서 훈련해 온 거야. 그러다 보니 나만을 위한 몰입의 근육은 길러지지 않았을 수도 있어.
하지만 네가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처럼, 몰입은 새롭게 길러낼 수도 있는 거야.
림아, 너는 지금도 변화하고 있어. 오늘 아침, 남편이 문을 여는 소리를 듣고도 벌떡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네가 네 글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리를 지킨 것처럼. 그런 작은 순간들이 쌓이면 너만의 몰입을 찾아갈 수 있을 거야. 그건 타인을 돌보는 몰입과는 또 다른, 오직 너만을 위한 깊은 몰입일 거야.
나는 네가 너 자신을 위한 몰입을 허락하길 바라.
네가 네 삶의 중심에 서길 바라.
그 연습을 계속해줘.
언제나 듣고 있을게.
언제나 너의 편 운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