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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이 May 19. 2024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 제목을 보면 그 즉시 코끼리가 나타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코끼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코끼리가 잡히지 않으려고 팔짝팔짝 뛰어다닌다. 포획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떠올리지 않기 위해 철창에 가둬야겠다. 다른 날 저 노래를 틀면 코끼리는 철창에 갇힌 모습으로 어김없이 나타난다. 뇌에는 부정의 개념이 없어서라는데, 생각할수록 신기하고 재밌다. 시험에 도전하는 것을 포함해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말까, 시도해 봤는데 그럴수록 더 시험장에 서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모습을 떠올리기도 싫을 때 그만두자고 다짐했는데 지겹다기보다 오히려 생생한 것이다.


 몇 년째 일하며 속 방송 할 수 있는 자리라면 응시해 시험을 보고 있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좋은 점 많다. 수험생 생활과 경제활동을 함께 할 수 있고 욕심내면 낮이고 밤이고 주말이고 공휴일이고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하지만 때로는 주중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이 없을 수도 있고 이유를 모른 채 하던 일이 없어지기도 한다. 정해진 것도 약속도 없다. 불안한 마음에 다른 직종 인터뷰도 보고, 시험을 2번이나 봐서 합격한 회사 연봉협상을 하면서도 그 일을 하는 대신 놔야 하는 이 일과 계속 떨어져도 채용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아직도 저절로 고개가 돌아가는 이 시험을 계속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꼭 그렇게까지 공채험에 합격하고 싶은지, 다른 일을 수는 없는지 따져보지 않았다.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할 있을까.


 처음 해보는 프리랜서 방송인과 수험생을 병행하며 서른을 넘겼다. 서른을 갓 지났을 때는 주변의 상당한 외압이 있었다. '이제 서른 넘었는데 자리 잡아지.'라는 말은 오랜만에 만나는 어른들 사이에서 투 두 리스트 중 하나인가 보다. 그 말을 생각하느라 밤에 잠이 안 왔다. 인생에는 챕터가 있어서 제한 시간이 다 되면 이번 장을 덮고 다음 장을 펼쳐야 되는 건가. 전 아직 이번 장을 다 못 읽었는데요... 서른 살 앞에는 육중한 문이 있어서 누구나 계단을 오르다가도 서른 살에는 한 번 문을 열고 나서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내가 놓치고 있었던 건가. 이런 말씀드리기 뭣하지만 제 앞에는 아직 계단이 많고 문 같은 게 안 보이는데.... 어쩌면 눈치 주는 사람이나 외압이 없었는데도 주말이면 결혼식에 다니며 스스로 초조함과 압박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 느낌에 압도되어 있느라 한동안은 주변 사람들 속에서 사색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시험을 보기 시작한지 2년이 지나자 함께 연습하며 시험을 준비하던 동료들이 다른 길을 찾아갔고 이제 가끔 만나거나 그저 문자로 안부를 묻게 되었다. 이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다른 길과 일을 찾을 수 있고, 삶에서 챙겨야 하는 다른 부분도 많다. 직업과 직장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 기회를 소진할 필요가 있느냐에 대해 동료들과 가끔 만나 얘기한다. 함께 시험 보던 때의 추억을 나누며 웃기도 한다. 그게 아직도 과거의 추억이 아니라 현재인 나는 웃다가 심각해지기도, 심각하게 웃기도 한다. 요즘 뭐 해?라고 질문을 받으면 민망할 때도 있었고, 나도 궁금해질 때도 있었다. 요즘 나 뭐 해?


 일요일마다 내일 출근하기 싫다고 우울해하던 친구들이 많다. 이제 그들은 아침마다 사내 메신저에 쌓인 후배들 이름을 볼 때마다 연차를 실감한다고 한다. 사귀던 사람과 결혼을 한 친구는 아이소식을 전하기도 한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전직하기도 하고, 오래 공부한 친구는 졸업장을 받았다. 두 번의 퇴사와 3년의 프리랜서이자 수험생인 생활을 거친 지금의 내가 가지게 된 것은 무엇일까? 지인들처럼 누구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결과물은 없는 것 같다. 몇 년 동안 시험에 도전하면서, 갖은 오디션과 미팅에서 붙기도 떨어지기도 하면서 얻게 된 전리품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동안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헛되이 소모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무조건 고. 하고 나서 후회해도 경험이 남기는 수확물이 있다고 믿는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은 없다. 그게 플러스 수확물인지 마이너스가 되는 잔여물일지는 하기 전엔 알 수 없다. 그래서 항상 하는 쪽을 선택했던 것 같다. 지나온 시간이 내게 남긴 것의 실체가 남들 눈에는 물론이고 내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찾아서 발견해내면 되지 않을까. 있긴 있을테니까. 얻은 것 잃은 것을 따지는 셈을 하기 위해서라기보다 현재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알고 싶기 때문이다. 뭐가 남아있는지 알아야 어떻게 쓸지, 처리할지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야 그게 진짜 'go'가 아닐까? 방금 쓰며 알았는데 키보드에서 'go'를 한글로 치면 '해'네. 딱 좋다.


내일은 되겠지 오늘은,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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