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난 지우개 더미

아이의 필통내부가 심하게 지저분하다.

by 초코푸딩

어제 문제집 푸는 큰아이 옆에 있던 필통을 우연히 보았다.

필통 안에는 한 6조각으로 동강 난 지우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연필은 깎아야 할 때가 이미 지난 것들이 3개 정도 들어있었다.


"방에 가서 연필 깎아서 넣어놔. 그래야 글씨 쓸 때 편하지. 그리고 혹시 학교에도 연필깎이가 있어?"


아이는 "응 있지. 우리 집 거랑 똑같은 기차 연필깎이 은색 그거야. 똑같은 거."


나는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서 곧이어 이런 말을 했는데 내가 말하고도 조금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준비했던 대답이 아니었어서 나도 말하고 조금 놀랐다.


"교실에 있는 연필깎이는 학교에서 갑자기 연필심이 부러졌거나 할 때 쓰는 비상용이지 학교 가서 연필 깎으라고 준비해 놓은 게 아니야. 그러니까 연필은 집에서 깎아라~"


그리고 옆에 거슬렸던 지우개.

사실 예전 같으면 지우개 보고도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갔다. 왜냐하면..


생각해 보니까 지우개가 작은 개 여러 개면 오히려 좋겠다 싶어서였다.

하나 잃어버리면 남은 조각 쓰면 되고 친구도 빌려주고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새거 넣어주면 또 어차피 조각낼 거니까.


지우개를 조각내면 가루가 나와서 필통이 지저분해지는 게 싫어지는 나이가 되면

더 이상 안 그러겠지. 아니면 볼펜만 많이 쓰는 학년이 되면 안 그러겠지. 그것도 아니면

성격이 그런 거니까 알아서 하겠지.


큰아이의 연필을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는걸 3년을 했다. 4학년때부터 안 해줬던 것 같은데

사실 그렇게 해줬으면 알아서 잘 깎아서 다닐 줄 알았는데 약간은 아쉬웠다.

그래도 깎아주는 건 안 해줄 생각이다.


자기가 불편하면 깎아 다니겠지. 아니면 내년부터는 샤프를 사준다고 했으니 더 이상

연필깎이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매번 등교시마다 가지런하게 곱게 깎인 연필을 바라는 게

순전히 내 욕심이 아닌가 싶다.

예쁘게 다듬어진 지우개를 바라는 것도 내 욕심이 아닐까 싶고..


지금은 4학년이니까 집에 와서 알아서 샤워하고 가방정리하고 공부할 것 하는 것만으로도 생각해 보니 어마어마한 장족의 발전이다.

7살인 둘째는 혼자 샤워를 못하니까 엄청난 진화이자 발전인거지..


앞으로 매우 큰 발전을 할 아이가 기대가 된다.


부모는 아이가 못하는걸 해결사처럼 다 해주는 게 아닌 혼자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한발 물러서서 지켜봐 주는 존재라고 하였다. 잊지 말아야겠다.



+이 글을 쓴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아이의 필통에는 더 이상 연필이 없다. 샤프만 사용해서 필통 내부가 매우 쾌적한 편이다. 역시 모든 건 변하고 걱정은 결국엔 해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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