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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요즘 초등학생 꿈

대통령, 과학자, 의사, 간호사, 연예인, 회사원…?

by 사적인 유디




얼마 전, 외가 사촌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날이 있었다. 몇 년 전의 수줍음 많고, 낯가리던 사촌 조카들은 어느새 활기차고 발랄한 초등학생 저학년이 되어 있었다. 오밀조밀 말을 잘하고, 아는 게 많은 아이들과 함께 놀던 중 한 조카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내가 예상한 대답은 발레리나, 연예인, 유튜버였다.

끼가 많았고, 그 끼를 보여주는 직업이 생각났다.


하지만, 조카가 한 말은 나를 충격에 빠지게 만들었다.

나 : 땡땡이는 커서 뭐 하고 싶어~?
조카 : 나는 백수!


백수라니…? 이 아이가 지금 백수가 뭔지 알고 말하는 걸까 싶어 다시 물었다.

나 : 백수? 백수가 뭔지 알아?
조카 : 응! 돈 많고, 놀고먹고 하는 사람!
나 : 돈 많이 없어도 백수 할 수 있는데?
조카 : 아니야, 엄마가 돈이 많아야 백수 할 수 있대!
나 : 그래? 그럼 돈 많으려면 일을 해야 되는데?
조카 : 엄마한테 빌려달라고 하면 돼
나 : 엄마한테 돈을 빌리면 갚아야 되잖아, 그러면 일을 해야 되는데?
조카 : 음… 엄마 그럼 그냥 돈 줘!


‘돈 많은 백수‘

사실 나를 포함한 내 주위에서도 많이들 이 말을 하고는 한다. 월요일 출근했을 때나 출근길에 ‘아, 돈 많은 백수였으면 좋겠다‘, ‘로또 1등 당첨되면 좋겠다‘라고 농담식으로 말하고는 했었다.


친구들과 이 말을 내뱉을 때는 웃으며 소비되는 유행어처럼 사용되었지만, 그 말이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장래희망으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꽤 큰 충격과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대통령, 과학자, 선생님, 간호사, 의사, 연예인, 요리사, 회사원 등 다양한 직업군을 장래희망이라며 말하고는 했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에게는 이런 꿈조차 없다는 것이 사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에서도 매일같이 ‘일하기 싫다‘는 말을 한다. 출근길은 지옥 같고, 월요일 아침은 존재 자체가 고통이다. 열심히 일해도 보람이 없다고 느끼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모른 채 그저 눈앞에 있는 일만 쳐내야만 하는 현실. 그렇게 일은 점점 무의미한 노동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일에서 자부심 대신 피로만을 느낀다.


그 결과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일=고통’이라는 이미지를 전하고 있던 건 아닐까.


내가 어렸을 때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어른들이 꿈이 없는 아이라고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아이들이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하자 철없는 꿈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직업도 갖기 싫고,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부모님한테만 기대려고 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백수가 되고싶다’는 꿈 아닌 꿈이 생겨났다.


이게 과연 맞는 걸까?

일이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을 떠나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고 성장하고,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며 타인과 연결되는 그 모든 사회 경험이 일의 본질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현실의 일은 의미보다 효율과 숫자로 표현되는 성과가 먼저인 시대가 되었다.


자부심 없는 노동, 기계처럼 반복되는 일상, 그리고 꿈이 없는 아이들. 이 사회가 멀리 내다보았을 때 과연 건강한 사회로 발전할 수 있을까?


일하기 싫어보다는 각자의 일에 대한 의미를 찾고, 자부심을 갖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좋아서 일하고,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회.

부나 지위, 직업의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남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아이들이 마음껏 꿈꾸고, 도전하고, 실패해 보며, 그 속에서 나다움을 찾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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