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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국현 May 21. 2024

사랑의 반경 (하)

사랑한다는 것은 같은 팀이 된다는 뜻이다. 팀의 규모가 커지면 공동체라고 부른다. 하버드 대학에서 무엇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했었다. 7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의 생활을 면밀히 추적하고 수많은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 연구의 결과는 무엇일까? 인생의 행복은 부나 명예에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공동체에서 사회적인 연결이 긴밀할수록 더 행복하고 신체적으로 오래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행복에 관한 수많은 연구에도 공통된 결론이 있다. 행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에 속한다면 사회적 연결이 사실상 어렵다.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으로 원인을 오로지 개인만의 노력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나의 사랑이 건강해지려면 우선 사회가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소수인 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수인 대중을 지배하도록 용인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허용이다. 신자유주의 논리로 사회적 불평등은 극대화되었으며 다수의 자유 상실로 귀착되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인정이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기 때문에 불평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는 상호 간의 평등이 중요하다. 평등은 인간 사랑에 대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자유, 평등, 소유, 안전의 이 네 가지 권리는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권리이며 이를 자연권이라고 한다. 이 자연권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1789년 인권선언에서 공식화되었다. 자연권이란 증명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권리라는 뜻이다. 인격이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른 행위를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춘 존재를 말한다. 평등이란 이러한 인격을 지닌 인간은 모두 동등한 존재라는 뜻이며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존중하는 상태를 말한다. 인간을 소중한 존재로 본다는 것은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모두 귀중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불평등을 묵인하다는 것은 소수의 인간들만이 귀중한 존재이고 나머지 인간들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본이 특정 소수에게 편중되어 야기되는 인격 간의 지배와 예속 관계를 타파해야 한다.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의 본질은 인간의 관계가 돈을 매개로 한 예속 관계로 변질되면서 개인의 자유가 상실되는 점이다.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인간이 인간에게 예속되는 관계를 탈피하여 서로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생존 불안이 사라지면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이 줄어든다.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져 주면 상호 간 진정한 사랑을 가능케 하는 토양이 마련되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문제로 접근하고 해결해 나간다면 나만 사랑하는 이기적 사회에서 벗어나 보다 공동체의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불안은 연대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신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에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른다. 사랑도 욕망이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불필요한 욕망을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명품과 비싼 외제차가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무인도에 혼자 살아도 명품을 욕망하게 될까? 

사회화를 통해 나도 모르게 습득된 욕망은 소비만이 진정한 희망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미디어를 통해 습득한 사랑은 가난하면 이룰 수 없어 보인다. 이런 비정상 욕망에서 해방되지 못하면 평생 사랑을 구걸하는 거지 신세를 면치 못한다. 허영은 빌 허(虛)와 꽃 영(榮)으로 이루어져 있다.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비어있는 꽃을 뜻한다. 속이 비었음을 감추기 위해 새로운 상품을 끊임없이 구매한다. 비싼 가방, 멋진 외제차는 초라한 나의 본질을 가리기 위해 한 잎의 꽃잎일 수도 있다. 진정한 꽃향기를 가지려면 자신의 내면을 자신만의 그 ‘무엇’들로 채우고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얼마를 가져야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어떤 것을 가져야 행복할까?로 바꿔야 한다. 돈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고, 친구가 되어 주고, 서로 여유로운 시간과 추억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기를 모두가 같이 꿈꾸어야 한다. 노동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어야 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자본주의 철학에 저항해야 하고 소득을 적절히 분배해야 한다. 


경제적 발전은 물질적 풍요의 증가가 아니라 인간의 실질적 자유가 확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자본에게 빼앗긴 실질적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이 설계한 인생을 거부해야 한다. 하지만 자본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생계가 어려워진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자본이 설계를 삶을 거부하고 자유를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민중들에게 매월 일정한 소득을 지급하는 기본 소득을 통하여 우리의 자유를 기대해 볼 수 있다. (내용이 길어지니 기본 소득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태곳적 인류는 등가교환의 원칙을 적용하며 살지 않았다. 일대일 교환의 원칙을 만들었으면 인류는 지금까지 존속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은 루시의 사촌은 연약한 아이를 지키느라 교환할 것이 없었다. 루시의 동료들은 교환할 것도, 거래할 것도 없어도 서로 연약한 아이를 같이 키우고 부족한 것을 같이 채우면서 생존했다.  


우리는 학창 시절에 석기시대 때 물물교환을 하면서 살았다고 배웠다. 물물교환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모든 경제 활동을 물물교환으로 할 수는 없었다. 고대 사회에는 부족한 것이 더 많아서 등가교환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바닷가에 사는 어부와 숲에 사는 사냥꾼이 서로 물물교환을 한다. 어느 날 사냥꾼이 생선이 먹고 싶어 토끼 세 마리를 들고 어부를 찾아왔다. 그런데 어부는 근래 물고기를 못 잡아 교환할 수 있는 생선이 없었다. 그때 사냥꾼은 생선이 없음을 투덜대며 토끼 세 마리를 다시 메고 돌아가…지 않고 가지고 온 토끼 세 마리를 그대로 선물로 준다. 그때 어부는 고마움을 답례하기 위해 예쁜 조개를 선물한다. 조개는 다음에 신세를 갚겠다는 약속의 증표였던 것이다. 태초에 서로 선물하고 보답하는 마음이 인류는 존속하게 하였다. 조개껍질은 최초의 화폐가 아니라 신뢰의 증표였다. 인류 최초의 경제는 교환이 아니라 선물이었다.


누군가 넘어져 허리를 굽혀 그를 일으켜주려 할 때 나 자신도 같이 일어설 수밖에 없다. 타인을 돕는 것은 결국 나를 돕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등장으로 공장이 생기고 모든 일이 분업화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쌀을 재배하지 않고 소도 키우지 않는다. 노동을 제공하고 받은 임금으로 쌀과 고기를 사 먹는다. 분업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그 사회가 유지된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서는 더욱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나를 대신해 다른 노동을 하는 타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내가 먹는 밥알 하나도 수많은 노동과 관계로 복잡하게 연결된 결과물이다. 서로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다. 세상의 선함을 믿고 나의 노동을 통해 어떻게 타인과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내가 하는 일로 이 세상의 선함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다음 질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나와 연결된 사회가 선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인간을 타인과 결합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 결합을 ‘연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연대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의존하고 돕고 협력하여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상호 의존과 정보 공유, 협력적인 문화를 갖춘 하나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즉, 연대란 모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공유하고, 위기와 고통을 함께하고,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집단의 기반이 되며, 현대사회에서 각 개인이 지향하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이를 통해 집단이 구성원 모두를 위한 이익을 창출해냄으로써, 사회적 결속력을 강화하고 선순환적인 사회 구조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세상은 경쟁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다양한 연령, 성별, 직업 및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할 때 비로소 연대의 가치가 펼쳐진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경쟁을 이겨 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임무이자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구성원들 간의 상호적인 참여, 의견 교환 및 행동을 통해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위해 단결할 수 있고, 시민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시위를 벌일 수 있다. 작은 실천으로는 친구나 가족에게 힘든 일이 있을 때 곁에서 함께 해주거나, 지역사회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 또한,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서 연대를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연대는 이제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가치 중 하나이다. 연대는 힘의 결합과 창조적인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사회적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연대는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연대는 사회적 차별, 불평등, 인종 갈등 등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상호 간의 이해를 높이는 교육이 필요하며,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우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연대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공동체나 사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작은 연대의 실천을 통해 큰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연대를 실천하고 협력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책임이 있다.


역사는 연대를 통해 발전했다. 유럽은 그리스 시대 이후 2,500년 동안 전쟁에 시달렸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서 항구적인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유럽을 하나의 질서로 통합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유럽 국가들은 합의를 통해 유럽연합 European Union을 만들어 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부터 시작해 국가 주권(통화주권, 국경통제권 등)을 하나씩 하나씩, 지금은 상당 부분을 유럽연합에 넘겨주었다. 유럽연합은 유럽인들의 수천 년에 걸친 전쟁에 대한 악몽을 토대로 하여 유럽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해결해 보려는 용기를 냈고 합의를 통해서 그 길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유럽연합을 넘어 세계정부를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기후위기나 핵폭탄으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인류 문제 해결에 대한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다. 유럽연합이나 세계 정부는 인간의 부족본능에 대한 성찰의 산물이고 연대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랑을 잘하는 것은 연인에게 밤하늘의 별을 따주는 것보다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사랑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다. 연대는 사랑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며 세상의 선함을 믿는 것이다. 서두에 인용한 위스턴 오든의 시구의 제목은 ‘1939년 9월 1일’이다. 2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는 날이었다. 욕망이 사랑을 앞지르면 이런 비극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욕망의 속도를 늦추지 못하면 절벽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결국 멸망을 맞을 수밖에 없음을 시인은 시를 통해 경고하고 있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 Mark Twain 은 말했다.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기 때문에.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도 순간일 뿐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짧고 누구를 미워할 시간도 없다. 전등(傳燈)은 ‘등불을 전한다’는 뜻의 불교 용어라고 한다. 각자의 등불을 들고 우리의 사랑만을 전할 뿐이다.


인도 경제학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아마르티아 센 Amartya Sen 이 이런 말을 했다.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찌가 넘어지면 악마가 입맛을 다시며 다가온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살다가 꼴찌를 만나게 되면 (네가 꼴찌가 될 수도 있다.) 외면하지 말고 꼴찌의 곁에 있어주길 바란다.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그들과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소리를 지르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악마는 자신보다 더 큰 존재라 느껴져 사라져 버릴 것이다. 나약한 호모 사피엔스는 연대를 통해 진화의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같이 몸부림쳤던 것이 춤으로 승화되었고 이는 인류 최초의 연대 표현이라 생각한다. 연대는 사랑의 확장이다. 춤은 엔도르핀을 생성한다. 도파민보다는 엔도르핀이 넘치는 세상, 모두가 같이 즐겁게 춤추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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