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이 사라져 가는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어쿠스틱 기타연주곡 모음 음악을 들으며 소설을 읽는다.
조해진 소설가의 ‘환한 숨’이다. 아홉 편의 단편을 엮은 책이다.
조해진이라는 작가의 책은 처음 만났다.
〈환한 나무 꼭대기〉는 1990년대 서울의 여자대학교 동기의 이야기다.
혜원은 암투병을 하는 환자다. 동기생 강희는 간병인이다. 강희는 대학을 마치고 절에 들어간다. 그러나 환속하여 생존을 위해 여러 가지 직업을 갖는다. 나이가 들어가며 손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간병일을 하게 된다. 대학 동기 혜원의 간병인이 된다. 그러나 혜원은 죽는다.
“외로움은 해변으로 밀려와 퇴적되는 세상의 물건들처럼 그녀의 마음 가장자리에 쌓여갔다.” 경제적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다고 하는 세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반열에 올랐다는 대한민국에 혼자 사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절절한 외로움이 그들을 힘들게 한다.
〈흩어지는 구름〉은 화가인 남자와 영화를 찍는 여자가 동거한다.
아빠를 일찍 잃고 엄마가 식당을 하며 살아가는 환경에서 남동생은 시골 외가에 맡겨졌다. 고달픈 성장 과정을 거친 남매가 어른이 되어 만난다. 경제적 궁핍과 온전한 가정을 갖지 못하는 삶이 다음 세대에게도 이어진다.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을 해낼 수 없었을 거라고,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는 말을...”
어쩌면 사람은 이 세상에 떨어지는 빗방울 하나와 같다. 구름의 한 조각으로 소급되는 빗방울, 자연은 끊임없이 돌고 있고 모든 물질은 순환한다. 나는 다만 이곳에 일시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숨〉
기간제 교사가 특성화고에 근무한다. 제자가 3학년 실습 나간 현장에서 사고로 숨진다. 세상은 한 사람의 죽음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간다. 공장의 기계도 돌아가고 사람들은 출근과 퇴근을 하고 딸을 잃은 엄마는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 하물며 임기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기간제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하나 어머니와 나는 결국 공장 안으로 들어가보지도 못 한채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가는 중이었다. 어떤 꿈속의 길처럼 그녀와 나란히 걷는 이 길도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다고 생각했다.”
〈눈 속의 사람〉 화자는 어느 출판사에서 기획한 구술사에 참여한다.
Y와 한 팀이 되어 6,25전쟁 체험자들의 구술을 담아 책으로 발간했다. 7년 전의 일이다. 강원도 전방에서 미군의 정찰병으로 근무했던 노인이 죽었다는 Y의 전화를 받고 강원도 태백으로 조문을 간다. 젊은 남녀가 1년여를 함께 일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채록을 위해 여수에서 눈 내리는 밤, 막차를 놓치고 모텔에서 함께 지낸다. 사람의 인연은 정해졌다고 운명론자들은 말한다. 그 하룻밤의 기억이 평생을 간다.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증언은 객관적일 수 없다. 증언은 증언자의 기억 속에서 선택된 언어이고 증언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구경꾼의 위치에 있으려 할 뿐, 자신의 과오나 잘못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의식하지 못하며 때로는 완전히 망각하기도 한다. 말해도 되는 것과 말해선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니 어느 부분이 진실이고 진실이 아닌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 체험자의 구술을 진실인양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들이 유리한 내용이면 진실이고 불리한 내용이면 기억의 오류라고 한다. 역사의 법정이라는 말도 흔히 사용한다.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단지 목소리 큰 사람이 침 튀기며 내뱉는 소리일 뿐이다.
어려운 개발의 시대를 단편의 이야기로 꾸며놓은 소설을 읽으며 소싯적 회상에 빠져들었다.
책 소개
『환한 숨』 조해진 저. 2021.03.09. ㈜문학과지성사. 314쪽. 14,000원.
조해진 : 2004년 문예중앙에 소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호석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