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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구나무 Jun 23. 2022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명량, 그 이후

「칼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군살 없이 뼈만 발라진 충무공의 글귀들, 난중일기에 혼을 불어넣어 침묵의 바다로 살아 있는 이순신을 불러오는 김훈은 차라리 영매다. 독자는 시공간의 차원이 뒤틀린 틈으로 빨려 들어, 4백여 년 전 살육으로 유린당한 조선의 바다를 바라보는 한 무인의 고뇌 속으로 빙의되고 만다. 우리 가슴에서도 그의 칼이 울음을 울고, 그가 치러야 했던 보이지 않는 전쟁처럼 물러설 곳 없는 사지(死地)에서 운명은 잔인했다. 죽음은 쉽고 남겨진 삶은 버거웠다. 적에 맞서 싸우다 죽고, 도망치다 잡혀 죽고, 물에 빠져 죽고, 굶어 죽고, 역병에 걸려 죽었다. 전쟁이 불러온 죽음은 적과 아를 가리지 않았고 바다 위에 뒤엉킨 시체들 너머로 죽음의 세계는 보이지 않았다. 수습되지 않은 주검들은 바다가 삼켰다. 그리고 침묵했다. 사람이 떠난 섬에도 봄이 찾아왔다. 꽃은 피었다. 그 바다에서 그의 칼이 울었다. 작가는 그 울음을 노래라고 불렀다.               


1597년, 정유년에 적들은 다시 몰려왔다.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지만, 이미 유린당한 영토는 조선의 것이 아니었다. 남의 손에 넘어간 강화 협상은 결렬됐다. 그해 정월, 임진년에도 선봉에 섰던 가토가 이번에도 빗장 풀린 조선의 바다를 앞서 건너왔다. 저항은 없었다. 땅과 바다를 그리고 도성과 백성을 내어준 이들은 무력했다. 무력할수록 임금의 교시는 조바심을 냈고, 전선이 밀릴수록 조정은 승전보에 목말라했다. 그 난리 통에 충청, 전라, 경상의 바다를 지키는 삼도수군통제사가 체포됐다. 이순신은 한산 통제영에서 포승줄에 묶여 의금부로 끌려갔다. 기동 출격 명령에 따르지 않은 죄, 조정을 능멸한 죄를 물었다. 고문을 당했으나 죽음은 면했다. 그는 백의종군했다. 원균이 그의 후임이었다. 여름, 조선 수군은 칠천량에서 패했다. 참담하게 무너진 회복 불능 상태로 곤두박질쳤다. 전함 3백 척 이상이 깨어졌고, 삼도 수군이 전멸했으며, 경상 해안 일대가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한산 통제영은 왜적이 아닌 도망치던 조선 수군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가 다시 임명됐다. 인계받은 12척 판옥선, 그가 쥔 한 움큼이 곧 조선 수군의 전부였다. 명량 전투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순신은 명량에서 크게 이겼다. 그의 말대로 천행이었다. 이겼으나 아직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도망치는 적선을 뒤쫓지 않았으나 수평선 너머에서 적들은 다시 몰려올 것이다. 척후를 띄워 퇴주하는 적의 동태를 놓치지 않았다. 패배한 적들은 희생양을 찾았다. 명량에서 살아남은 잔당 무리가 해남반도에 올라 분탕질을 놓았다. 혈안이 된 적의 척후들이 얼마 남지 않은 조선 수군의 행적을 더듬어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의 촉수는 허둥대고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며칠 날씨는 계속 맑았다. 바람은 약하고 물살이 순했다. 다행히 적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암태도에 잠시 머물던 함대는 칠산 앞바다와 위도를 거쳐 고군산군도까지 물러났다. 성벽처럼 둘러친 무산십이봉을 울타리 삼아 수군 진이 있는 선유도 안쪽 바다는 호수 같다. 싸울 자리도 아니지만, 더더욱 죽을 자리도 아니다. 막힘없이 터진 바깥 바다는 경계에 유리하고 기습에 불리하다. 해안을 따라 놓인 봉화는 공격에 불리하고 방어에 유리하다. 섬과 섬들이 조밀한 내해에서 대규모 작전이 곤란하지만, 소규모 기동 작전은 효과적이다. 먼바다의 큰 파도를 넘어야 하는 왜선의 용골은 암초가 많고 바다가 수시로 들고나는 조선의 연안에서 무력하다.      


조선 수군은 고군산에서 열흘 넘게 머물렀다. 지친 병사들을 쉬게 하고 부서진 전함을 수리했다. 승전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빈손으로 오지 않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지는 못해도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먹을 것보다 칠천량의 패배를 딛고 일궈낸 기적 같은 승전에 병사들 사기는 충만했다. 음력 9월 가을 바다는 바뀌는 계절에 몸살을 앓았다. 하늘은 맑았지만 사나운 북풍에 파도가 들끓었다. 충무공은 비로소 아팠다. 놓을 수 없었던 긴장이 풀려나가자 몸속 깊이 파고든 고문의 상처가 찬바람을 낌새 채고 재발했다.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다.               



임금에게 올릴 승첩에 관한 장계를 고쳐 썼다. 깨어진 적선과 베어낸 적의 머리 숫자를 두고 고심했다. 부관이 올린 초계의 문장은 승리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적을 물리친 그 칼이 언제든 자신의 목을 겨누게 될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두려움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았다. 적들도, 백성들도 그리고 임금과 조정의 신하들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셈법이 달랐지만, 전란을 겪고 있는 임금의 고뇌를 헤아려야 했다. 그는 조선의 바다에 어두웠고 왜적의 조총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 머물러 있었다. 임금의 교지는 자주 울었고 걱정으로 늘 잠 못 이룬다고 적혀 있었다. 그의 근심의 뿌리는 왜구들을 무찌른 난세의 장수가 임금을 몰아내고 나라를 다시 세웠던 피의 역사까지 뻗쳐 있었다. 의심의 눈길로 장계의 문장 하나하나를 뒤지고 역모의 냄새를 찾을 용안을 살펴야 했다. 고쳐 쓰고 고쳐 썼다. 그럴수록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뼈만 남았다. 일기에는 몸이 느끼는 고통인지 마음에 맺힌 아픔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어 몸이 좋지 않다고만 적어 남겼다. 바람에 막혀 되돌아왔던 장계와 판관은 이튿날 다시 올라갔다.


 아산에 있는 고향 집이 무사할까 싶었는데 아니나 싶게 막다른 길에 몰린 왜적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분탕질을 당했다는 전갈을 병조의 공문을 가져온 일꾼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편지조차 쓰지 못했다. 대신 아들 회를 보냈다. 음력 시월 초사흘, 새벽에 배를 띄워 법성포로 돌아갔다. 고군산은 숨어서 쉴 자리지만 싸워서 죽을 자리는 아니다. 아직 적들은 조선의 바다에서 물러가지 않았다.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진격을 머뭇거리는 적을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었다. 적들이 있는 곳이 그가 가야 할 곳이고 죽는다면 조선의 바다 어디쯤이 될 것이었다. 북에서 몰아닥치는 세찬 바람에 남진하는 그의 함대가 떠밀려갔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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