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욜 MaYol Mar 16. 2024

현찰사現札寺 주지스

mayol@골계전 1.

 살다보면 아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난다.

 그런데 셈을 못하는 내게 셋 이상 아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게 늘 문제다.

 내 셈법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건가 아니면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알 수 있게 되는 건가.

 그렇게 나의 '셈' 밖에 있는 사람이 하나 생각이 난다.

 스님이라고 부르긴 뭐하고 그렇다고 스님같이 생기지 않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님'자 빼고 ‘주지스’라고만 제목을 붙여봤다.

 내게 가끔 농담을 던지는 스님이다.

 집만 있고 절은 없이 떠도는 대처승對處僧이 아닌가 싶은데 정확하게는 모른다.  

 그저 사람 좋고 인심 좋아 가끔이라도 연락이 오면 마다 않고 밥상머리에 마주 앉곤 한다.


 “왜 절을 안 정하고 그리 돌아다니세요?”

 “우하하하하. 절이 무슨 소용. 돈이 최고지. 내가 지을 거야. 사천만 땡겨줘. 우하하하하.”

 “그래, 절 이름은 뭐로 하려고요?”

 “우하하하하. 현찰사現札寺! 난 현찰을 좋아해. 우하하하하.”

 "그러시구만요. 하하하. 멋진 포즈 좀 취해 보세요. 사진 하나 찍게요."

 "뭐? 이렇게 하면 멋진가?"


 현찰사 주지스는 내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오호! 스님 쵝오!!"


 나는 그에게서 이 이상 멋진 포즈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걸 그림으로 남겼다.

 그분이 막걸리처럼 걸걸하게 한바탕 웃어젖히면 내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곤 했다.

 그날도 골골 시원찮은 몰골로 책상 앞에서 머리를 흔들고 앉아있는데 그분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네, 중국집 먹는가?”

 “아, 아직 집까지 주문해 먹어 본 적은 없는데요.”

 “우하하하하. 그래, 그럼 오늘은 집 말고 음식만 먹세!”


 배도 고프고 머리도 답답하기만 하고 해서 문 앞에 나가 그분을 기다렸다.

 햇살이 나른한 게 나오기 잘했다 싶었다.

 잠시 후 멀리서 1톤 트럭 한 대가 왔는데, 현찰사 주지스였다.


 “그런데, 스님. 중국집 요리 드셔도 되는 거예요?”

 “아, 걱정 말어. 중놈이 고기 먹고 디졌다는 소리는 못 들어봤네. 우하하하~”


 주지스는 야구모자에 점퍼를 입고 무릎을 꿇고 다니는 건 아닌가 싶은 물 빠진 청바지를 후줄근하게 입고 있었다.


 “일단 출발해보자고. 내가 가끔 가는 중국집인데, 그 집 짬뽕이 기가 막혀. 특히 해물짬뽕이 최고지.”


 주지스는 입술로 빨아낸듯이 깨끗한 엄지를 들어 보이며 싱긋이 웃었다.

 1톤 트럭에서 나오는 강한 엔진 소음이 매연을 뱉어냈고 시커먼 배출가스가 맑은 봄볕을 흐트러뜨리며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다. 조수석 창문으로 흘러 들어온 매연냄새에 기침이 났다.


 “부릉부릉~”

 “콜록콜록”


 주지스는 이 건물인가 저 건물인가를 살피며 한참을 기웃거리다가 드디어 어떤 복잡한 건물 주차장에 차를 들이댔다.


 “이 건물 2층에 있는 중국집인데 자네도 맛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야. 다시 오자고 애원하게 될 걸. 우하하하하.”


 은근히 기대가 되어 주지스를 앞세워 따랐다.

 큰 건물은 두 개의 동으로 나뉘어 있어서 중앙엘리베이터 좌우로 계단이 여러 개 있었다.

 성격 급한 주지스는 먼저 눈에 보이는 비상계단 입구로 들어갔다. 2층인데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높은 로비천정탓에 다른 층수보다 두 배는 더 굽어져 올라갔다. 퍽퍽한 다리로 겨우 걸어 올라 비상문을 열려고 하니 문이 잠겨있었다.

 문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건너편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세요.]


  현찰사 주지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젠장! 이럴 거면 비상계단을 막아 놓던지!”


 우리는 다시 계단을 내려와 중앙계단을 이용해 2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우리를 가로막은 건 병원 간판이었다.


  [너희 둘 항문외과 의원]


 “어, 중국집이 분명히 여기 있었는데?”


 어쩔수없이 투덜거리는 주지스를 따라 다시 계단을 내려와 옆 건물로 이동했다.

 옆 건물 비상계단을 통해 올라갔더니 또 문이 잠겨져 있었다.

 그때는 나의 인내심에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치만 주지스만 할라고.


  “이뤄~ㄴ, 우라질!!”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키며 계단을 내려와 다시 중앙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니 거기도 병원이었다.


 [너희 둘 정신상담센터]


 “에고 다리야. 이 장소가 아닌가 봐요?”

 “아니야, 분명히 여기가 맞다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이미 두 개 층 높이의 계단을 네 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으니 층수로 따지만 약 8층 정도의 높이를 오른 셈이었다.  


 ‘헉헉’

 ‘헉헉’


 다시 계단을 내려올 때는 난간을 붙잡은 주지스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몸살 끝에 짬뽕 한 그릇 얻어먹으려다가 유격장에라도 들어선 것 같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우리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주지스의 체면을 생각해 꾹 참았다.


 “이런, 젠장할! 도대체 이놈의 중국집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어이, 어이, 아저씨 여기 화장실은 어딨소?”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화장실을 다녀온 주지스가 다른 건물인 것 같으니 차를 빼서 이동해 보자며 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해서 그런지 허기가 급하게 밀려들어왔다.

 점심시간이 다 된 주차장이 밀려들어온 차들로 꽉 차서 한참을 요리조리 피하며 간신히 빠져나올 때였다.


 “이봐요. 주차비는 내고 가셔야지!”


 달려온 주차관리 아저씨의 소리를 듣고 차창을 내린 주지스가 화를 내면서 주차비를 정산했다.


 “이런 제장맞을! 도대체 중국집이 어디로 간 거야. 주차비는 왜 이리 비싸고!!”


 밀려들어오는 차들을 피해 주차장을 막 빠져나가려는데 주차 관리인의 목소리가 사이드 미러에 부딪혀서 차 안으로 튕겨져 들어왔다.


 “아, 거기! 영수증 없어요? 여기 3층 중국집에서 먹은 거면 돈 안 내도 되는데!!”


 나를 태운 1톤 트럭은 덜덜거리며 이미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고 다시 돌아 들어오기에는 밀려들어 온 차가 너무 많았다.

 주지스는 뒤따라 나오는 차들에 밀려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차 핸들을 마구 두드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건물안의 사람에게 화장실 위치는 물어보면서도 왜 중국집 위치는 물어보지 않은걸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