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의 죽음
어느 해 여름의 죽음
어느 해 여름의 죽음이었을까
방충망에 흔적처럼 걸린 모기는
나가던 길이었을까 막 들어왔던 것일까
두개골을 가르듯 쨍한 겨울 아침
다섯 박스도 되지 않는 이삿짐을 풀다 말고
지난여름을 생각한다 이제 어쩔 수 없이
겨울바람에 지쳐 흩어지는 모기의 날개는
나가는 길이든 막 들어왔든 분명히
살고 싶었을 것이다 살아서 누군가에게
너를 놓치지 않겠다 죽을힘을 다해
매달리고 싶었을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다시 바람에 부서지는 모기를 바라보며
어느 해 여름의 죽음을 생각한다
비겁하게 놓았던 손을 생각한다 오래도록
바람이 불어 창문을 닫은 것뿐 그 너머
찢기는 순간을 알고 싶지 않아 하던
담담한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안다
결코 흩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 기어코
다시 살아 돌아오는 시간이 멀지 않았음을
어느 해 여름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방충망에 걸렸던 모기가 겨울 햇살에 반짝 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