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기가 올랐지만 돌아오는 발걸음이 헛헛할 때, 침대에서 뒹굴다 쓸쓸함이 밀려올 때 찾아가는 곳이 있다.
낙성대역 4번 출구로 나와 사람들을 지나쳐 골목을 세 번 꺾은 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인적이 뜸해지는 지점에 붉은 네온사인이 보인다.
계단을 반층 올라가 모자이크 유리로 장식된 올리브색 미닫이 문을 연다. 문이 천천히 열리며 밀려드는 안쪽의 풍경은 홍콩의 뒷골목 바에 들어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빈티지한 청록색 타일, 붉은 조명, 원목으로 된 테이블 위에 올려진 화려한 크리스탈 잔들. 현관 옆 구석에 있는 직사각형의 거대한 어항에는 오직 흰 돌만 깔린 채로 푸른 조명을 받으며 버터플라이 두 마리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있다. 사장님은 흰색 러닝셔츠를 입은 어깨 위로 회색 수건을 걸친 채 웍에 요리를 볶고 있다. 그 뒷모습조차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메뉴판에는 홍콩 음식과 고량주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탕추양갈비, 훈둔완자탕, 양배추찜과 스프링롤과 같은 음식들. 그중 스프링롤과 펀주를 주문한다. 바삭한 겉피 안으로 느껴지는 새우의 식감과 돼지고기의 풍미. 조금은 과하게 남은 잔향을 53도의 펀주가 말끔히 씻어준다.
펀주 다음에는 북경 찡주를 주문한다. 구기자와 당귀향이 풍기는 진한 액체를 천천히 머금으며 사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쉼 없이 웍을 움직이는 그의 몸은 땀으로 러닝셔츠 윗부분이 조금 젖어있다. 손님은 이제 바테이블에 앉은 나와 옆자리의 남자 한 명만이 남아있다. 남자는 잔이 비었는지 생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혼술 16년 차가 되다 보니 오로지 술과 음식의 맛, 자신의 기분에만 집중할 수 있는 노련함이 생겼다. 이것이 자랑인지는 모르겠지만.
혼술을 처음 시작할 시기에는 미묘한 압박감이 있었다. 주변을 힐끗 대지 않기. 시선을 의식하지 않도록(그렇게 보이도록) 노력하기. 무언가에 집중을 하거나 사색에 빠져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혼술을 해야 하는지 질책할 수 있겠지만 혼술에는 어쩔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이른바 혼술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유난한 허망함에 휩싸일 때 주변의 즐거운 웃음소리는 공허의 구덩이를 더 깊게 만든다. 반사적으로 웃음과 농담을 건네고 높아지는 음성, 그리고 고독감. 들떠가는 열기만큼 목소리가 없는 곳으로, 하지만 허기를 달래줄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 진다.
홀로 바 테이블에 앉아 알콜에 서서히 적셔지며 벽면의 어딘가를 바라보다 보면 내면의 충족감이 차오르는 찰나가 있다. 시간은 느려지고 상념은 옅어진다. 만족으로 가득 찬 고요의 순간이다.
직사각형의 어항 안에는 버터플라이가 조명을 받아 흰색 비늘을 반짝이며 큰 지느러미로 물속을 유영하고 있고 천장에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J^P^N의 Amend가 흘러나오고 있다.
마지막 한 조각 남은 스프링롤을 입안에 넣는다. 식기는 했지만 아까보다 달짝지근함이 진하게 느껴진다. 찡주는 여전히 강렬하다. 사장님이 타이밍 좋게 보이차를 한 잔 내어주었다. 조심스레 한 입 마시자 깊은 향과 옅은 흙냄새, 평온함이 흘러들어온다.
어찌 보면 혼술에 대한 욕구는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친밀한 이와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 스스로에 대한 집중력이 무뎌지고 자신의 기분이 타인의 감정에 의해 좌우된다. 상대와 나를 동일시할 때 서운함과 갈등은 심화되며 관계를 무너뜨리기에 가장 최적의 시기가 된다.
홀로 있음에 익숙해지고 만족할 수 있을 때에 타인과의 관계 또한 굳건히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다.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고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자유이기도 하다.
이제 가게 안에는 나뿐이다. 마지막으로 금문고량주를 주문했다. 유리잔에 담긴 투명한 술을 한 모금 들이키자 유난히 강한 타격감 이후 내쉬는 숨결에 산뜻한 배향이 느껴진다.
잠시 주방으로 사라졌던 사장님이 접시에 정갈하게 깎은 복숭아를 올려 서비스로 주셨다. 이것 또한 혼술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 월간 에세이 11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