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피난

스님. 제발 좀.

by 마르코니

산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는 말을 아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가슴이 쉴 새 없이 뛰었다. 손에 자꾸만 식은땀이 나서 운전대가 미끌거렸다.

입은 바짝 말라 심한 구취가 느껴졌다.

우리가 절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오전이었다.

큰 스님께 외투와 소지품을 챙겨 오라고 이르고 황급히 방으로 달려갔다.


나는 방에 있던 가방에 지갑과 노트북, 스마트폰을 넣고 옷가지를 주워 담았다.

벽에 걸려있는 패딩을 입고 주방으로 달려갔다.

주방에서 있던 골판지 박스에 냉장고 속 얼마 없는 반찬거리를 죄다 쓸어 넣었다. 반쯤 남은 쌀 포대도 포개 얹었다.

싱크대 서랍을 열어 부르스타와 냄비 몇 개를 포개서 챙기고 차로 달려갔다.


테라칸 짐칸에 박스와 가방을 던져 넣고 다시 주방으로 달려갔다.

고양이 사료

절 처마 끝에 있는 사료 그릇과 그 주변에 사료 포대를 몽땅 뒤집어 부었다.

피난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더 이상 배식은 어려운 문제다.

야생 고양이를 잡아서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고양이에게 채무의식을 느낀다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각자 도생해야 한다. ‘미안하다, 얘들아.’

정말 가야 할 때다. 조수석에는 혜천이 벌써 탑승해 있었다.

큰 스님은 꼬깃한 스님용 천보따리를 품은 채로 때 묵은 목탁과 막대를 쥐고 있었다. 주지 스님의 피난 짐은 그 천 자루가 다였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입지 말라고 핀잔을 드렸던 그 남루한 외투를 또 걸치고 있었다.

큰 스님은 그야말로 영락없이 힘없고 쓸모없는 노인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오, 부처여. 뒤늦은 후회가 따랐다.

나는 시동을 걸고 드라이브 기어를 넣었다.

"곧 다시 올 거예요. 별일 아닐 겁니다."

"그래 별일이라도 있겠냐,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려가 보면 알 것 아니겠냐."

우리는 그렇게 의례적인 말을 교환하고 비포장 산길을 출렁이며 내려갔다.

산사에는 스마트폰 시그널이 닿지 않는다. 라디오도 마찬가지. 혹시 몰라 라디오를 켰다. 찢어지는 잡음만 방출되고 있었다. 마치 그 무엇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내는 것 같았다.


우리는 한참을 내려와 비포장길에서 벗어났다.

산 중턱부터 입산 안내소까지 이어지는 국도로 들어섰는데, 이때 우리를 향해 다급히 손을 흔들어 대는 한 무리의 등산객을 만났다.

대충 20분만 더 내려가면 인적이 나타나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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