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레는 시간들을 온전히 즐기면 좋겠어
기대하고 고대한 것에 비해 생각보다 대책 없이 출국날 아침이 되었다.
'이제 빠진 건 가서 산다. 여권과 카드만 챙겨!' 하는 마음으로 차를 타고 공항으로..
집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는 더 챙겨야 했는데 놓친 것은 없는지 불안했는데, 한강을 건너고 인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설레는 마음이 커지는 걸 보면.. 집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여행이 시작되는 게 맞는 것 같다.
10시 55분 비행기여서 7시 반 도착을 목표로 집에서 출발.
가는 동안 잠들 거라고 예상했던 딸은 여권은 잘 챙겼는지, 본인의 가방은 잘 실어두었는지 조잘조잘 이야기하기에 바빴고 함께 영종대교를 건너고 공항으로 가는 그 길의 설렘을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더해 주었다.
(만 0세에 함께 갔던 괌에서는 이 다리 위에서 끙아를 해서, 엄마가 기저귀 갈기에 바빠 다리를 못 봤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더니 어찌나 까르르 웃던지ㅎㅎ)
2 터미널로 가는 길에 만난 공항남녀를 뒤로 하고.
발렛으로 차를 맡기고 캐리어를 끌고 들어간다. 22년만 해도 마스크가 필수이던 시절이니 공항과 비행기에서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된다고 아이에게 신신당부를 하면서.. 안 그래도 답답한 기내가 마스크로 더 불편할까 봐 걱정하면서..
빠르게 수속을 하고 짐을 맡긴다. 예상보다 백드롭이 오래 걸려서 많은 사람들이 벌써 여행을 다니는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니다 보니 대수롭지 않으면서도 공항에 오면 묘하게 긴장되는 무언가는 아마도 탑승시간이라는 타임리미트 때문이려나.
아이는 의연하게 본인의 티켓과 여권을 챙겨서 공항 직원들에게 씩씩하게 인사도 하고 출국 수속도 척척 해낸다. 아직 키가 닿지 않아 출입국 심사 시에는 안아서 얼굴을 보여줘야 했지만 그마저도 웃는 얼굴로 잘 해내고, 마스크도 알아서 척척 내렸다 올렸다 잘 해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병에 걸린 나는 도와줄까? 해줄까? 어찌나 잔소리를 했던지. 다음여행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조금 더 느긋하게 기다려 줘 봐야지 다짐하면서..
면세품을 픽업하고 라운지로 간다. 아이와 나는 모닝캄 라운지로, 남편은 마티나로.
아이와 나는 각자 자리를 잡고 먹고 싶은 음식들을 가져온다. 혹시 떨어뜨릴까 노심초사하는 엄마는 졸졸 따라다니며 아이 음식을 담아주고 자리로 가니 "내 건 다 가져왔으니까 엄마 거 가지고 와. 여기 있을게."
그래. 많이 컸다. 내 새끼.
그래도 혹시나 불안할까 봐 최대한 아이의 눈에 가려지지 않는 동선으로 움직여 주었다. 혹시 아이가 괜한 불안을 가지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것까지는 포기 못하겠고ㅎㅎ
시간에 맞춰 줄을 서고 비행기를 탄다.
승무원에게 인사도 잘하고 본인 자리도 척척 찾아서는 알려준 대로 벨트를 매고 "테이블은 출발할 땐 접어야된뎄지?" 하고 물어보는 여유로움까지.
불편하면 알려달라고, 비말마스크도 있다고 했으나 긴 시간 덤덤하게 마스크도 잘 참아냈고, 좁은 화장실도 잘 이용하더란 이야기.
다만, 기내식은 잘 맞지 않았는지 먹다 말다 했고, 내 기내식에 있던 빵도 생각보단 잘 안 먹어서..
이번엔 방법이 있다면 잘 먹던 우유라던지 빵이라던지. 아이가 요기할 만한 것을 챙길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
비행기에서 볼 책과 색칠놀이, 패드와 헤드셋등을 백팩에 넣어왔더니 정리가 잘 되지 않았고 남편과 나는 계속 분주하고 정신 사나웠던 기억이 남았다. 이번 여행 준비에는 놀이용 파우치를 준비해 볼 예정이다. 지퍼로 주욱~ 닫아서 정리하고 주욱~ 열어서 놀 수 있도록.
이렇게 한 단계 한 단계에서 우리는 더 나은 여행을 하기 위한 시행착오들을 겪는다.
일찍 함께하기 시작한 여행인 만큼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온전하게 여행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11시간이 넘는 긴 비행에서도 씩씩한 내 여행동반자를 보며 우리 부부의 여행유전자가 잘 전달되었나 보다, 뿌듯했던 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