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보이면 생각하기도 전에 집어야 하는 치열한 눈치싸움
Aloha,
안녕하세요, 이번 한 주만 잘 지내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긴 설 연휴가 시작됩니다. 한국은 설 연휴가 시작돼도 웬만한 식당이나 마트는 정상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 미리 연휴 기간 내내 필요한 식료품이나 생필품을 챙겨둘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긴 연휴가 시작되면 문을 열지 않는 식당이나 마트가 많이 있어 필히 긴 연휴 시작 전에 꼭 미리 필요한 것들을 사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몇 년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은 또 분위기가 바뀌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미국의 연휴는 어떤 분위기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하와이는 미국 연휴때와는 조금 삶의 모습이 다릅니다. 하와이는 태풍이 태어나 지나다니는 길목에 있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할 정도로 생각보다 태풍이 정말 자주 옵니다. 혹 하와이 방문 기간에 태풍(허리케인)이 온다는 소식을 들으셨다면 꼭 재난문자 알림은 켜 두시고 Hawaii News Now 뉴스는 수시로 체크해 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래도 작은 섬 특성상 변수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시 마트 이야기로 돌아가봅니다. 큰 허리케인이 온다고 하면 며칠 전부터 섬이 허리케인 이야기로 들썩입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물을 사기 시작하고, 컵라면 같은 간편식, 그리고 그 이외에도 필요한 음식들이나 생필품들을 미리 사 두기 시작합니다. 물건을 사가는 품목에 쏠림이 생기거나 재고가 별로 없을 때는 마트에 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개수를 적어두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때쯤에는 '어느 지역의 어떤 마트에는 재고가 더 있다'라는 카더라 통신이 돌기 시작합니다. 평균적으로 부촌 지역이 항상 더 여분의 재고가 있다는 풍문이 들려오기 때문에 삼삼오오 모여 섬 안의 빈부 격차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도 합니다.
독감이나 인플루엔자가 돌기 시작하면 허리케인이 올 때만큼 온 섬이 난리법석이진 않지만 조용히 하지만 빠르게 마트의 재고가 빠져나가는 것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주 보다 감기약의 재고가 빨리 빠져나가는 '느낌'이거나 생강 같이 목감기에 좋은 재료도 의외로 눈에 잘 안 띄기도 하고 클로락스에서 나온 물티슈 (Clorox Disinfecting Wipes)도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재고가 비어있는 느낌이 듭니다. 매주 장을 보러 가다 보면 자연스레 몸에 축적되는 데이터로 섬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예측(이라고 하지만 '본능적'이란 단어가 더 맞는 표현 같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코로나 초창기 때는 쌀도 살 수 있는 개수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마스크 끼고 부지런히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름 식료품들을 미리 사둔다고 부지런히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미국 본토에서는 마트마다 화장지 찾기가 어려운 화장지 대란이 났었지만 같은 시각 오아후 섬에서는 화장지뿐만이 아니라 식료품도 전쟁이었습니다. 섬까지 물건이 들어오는 시간은 최소 2주 정도 걸린다는 말이 있어 더 사람들이 식료품까지 이것저것 샀던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장 보러 갈 때마다 어딘가 텅 비어있던 마트를 보면 '오늘은 이 정도 샀다'라는 안도감과 '재고가 섬에 들어오기 전에 음식이 떨어지면 어떡하는지'란 더 깊은 고민이 공존하던 시간이었습니다.
하와이살이를 끝낸 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은 더 이상 여분의 음식과 생필품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버스 타고 다니며 여분의 식료품까지 항상 장 보는 것이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당시에만 경험할 수 있었던 장보기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장보기 같습니다. 종종 그땐 그랬지~라며 추억에 잠기다 보면 또다시 하와이도 가보고 싶고, 미국 본토도 가보고 싶어 집니다.
추억에 머물지 않고 현재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제가 다시 가볼 수 있는 그날이 오겠지요. 그날이 올 때까지 오늘도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가보려 합니다.
Maha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