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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럽마셀 Jan 12. 2022

8. 내 찌찌 값 도라! - 엄마의 갱년기

어서 와. 갱년기는 처음이지?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 엄마가 노래처럼 하던 말이다.

내가 갱년기를 겪고서야 ‘엄마의 갱년기는 어땠을까? 엄마도 많이 힘드셨을 텐데...’ 라는 생각이 났다. 엄마는 지병으로 많이 아프셨다. 넘어지면서 고관절이 부서져 병원 치료를 받다 일찍 돌아가셨다. 갱년기를 겪는 내 나이 40대 중반에 딸아이는 이제 겨우 대학생이다. 엄마도 갱년기를 겪으셨을 텐데,  엄마의 갱년기는 어땠는지 여쭤보고 싶지만 엄마는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아빠에게 전화를 드려 여쭤보았다.

“아빠 혹시 엄마는 언제 폐경을 겪으셨어요? 갱년기 때문에 힘들어 하진 않으셨어요? ”

아빠는 엄마의 폐경이 50살쯤 왔다고 했다.  내가 한참 아이 키운다고 정신이 없을 때 였다.


 요즘은 초경이 빠르기 때문에 폐경도 빠르다.  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난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 초경이 빠르거나, 생리 주기가 빠른 경우는 그만큼 월경 횟수가 많아지기 때문에 폐경을 빨리 겪는다. 엄마 세대는 지금처럼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 였기에 지금보다 초경과 폐경하는 시기가 이르다.


 엄마는 열 여덟 살에 아빠를 만나 일찍 시집을 오셨다. 그리고 스무 살에 큰언니를 낳으셨다. 비슷한 시기에 할머니가 막내 고모를 낳으시는 바람에 엄마가 막내 고모랑 큰언니를 같이 키우셨다고 한다. 외동딸로 귀하게 자란 엄마는 외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집살이 독하디 독한 윤 씨 가문 시월드에 입성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우리 5남매를 키우시고, 고모 삼촌들까지 엄마가 뒷바라지하며 정말 혹독한 시집살이를 하셨다. ‘음주가무’를 좋아하시는 아빠에게 반해 선택한 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갱년기를 알리는 첫 신호탄은 ‘화병’이셨던 것 같다.

어느 날 항상 지고지순하고, 우리에게 소리 한번 지른 적이 없으셨던 엄마가 아빠와의 이혼을 요구하셨다. 우리에겐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엄마는 더 이상은 참고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얼굴에는 열이 오르고 속에서는 '천불이 난다’고 하셨다. 

“이렇게 살다 간 화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라고. 그때는 어린 마음에 ‘지금까지 잘 참고 사셔 놓고 지금 와서 꼭 이혼을 하셔야 하나?’ 남편이랑 시댁 식구 보기 창피한 일이란 생각만 했다. 엄마의 갱년기 첫 신호탄은 결국 자식들 생각에 피지도 못하고 꺼져 버렸다.  


엄마의 갱년기 두 번째 신호탄은 ‘불면증’ 이셨던 것 같다.

 엄마가 “와이리 잠이 안오노? 잠이 안 와 미치겠다! 미치겠어!”하소연을 하실 때면 

“엄마 나이 들면 잠이 없어진데 엄마도 나이가 들어서 그래, 낮에 낮잠 많이 주무시지 마시고 운동 좀 해요!”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 참 성의 없고 못되게 말하는 딸이었다. 두 살 난 딸아이 키운다고 나 아쉬울 때만 찾아가 애 봐달라는 부탁은 다 해놓고, 막상 엄마가 힘들다고 하소연할 때는 성의 있게 공감 한번 해 드리지 못했다. 엄마 나이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엄마의 갱년기에 남편도 자식도 알아주지 않는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공허하고 억울하게 느껴졌을지...  

   

 주위에 엄마 연세의 어르신들께 여쭤보면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 때는 먹고살기 바빠서 갱년 기고 뭐고 느낄 겨를도 없었지, 폐경이 되면 그런 갑다 하고, 몸이 아플 겨를이 어딨어? 갱년기 그게 다 먹고살기 편해서 하는 소리야!”라고.그러나  나는 엄마의 갱년기를 생각하면 힘들었을 엄마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친구는 엄마의 갱년기를 생각하면 ‘내 찌찌 값 도라’가 생각난다고 한다. 친구 엄마의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친구는 생일 전날 밤 엄마에게 한통의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 내일은 정아 생일 엄마부라자 사도라 씨씨갑 주라 옛날 생가하니 가매 새로구나”

“ 먼 말이야? 엄마 브래지어 필요해?

” 응 “

 올해 78세인 친구의 어머니께서는 친구의 생일을 맞아 '내가 너를 낳는다고 힘들었고, 모유 수유를 하며 키웠으니 내 찌찌 값으로 예쁜 속옷을 사달라'는 카톡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리곤 다음날 백화점에 가서 찌찌 값을 받으셨다. 걸려있는 신상 속옷 세트 한 벌에 이자로 누워있는(세일 상품) 속옷 세트 한 벌 까지.  항상 자신을 먼저 사랑하고, 자식들에게 당당히 선물을 요구하는 삶을 사신 어머니여서 친구는 엄마의 갱년기가 그렇게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진 않다고 했다.


 자식 입장에서는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기를 먼저 사랑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다. 문득 딸아이가 나중에 커서 갱년기를 겪을 때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안쓰럽고 맘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내 찌찌 값 도라!"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귀여운 엄마의 모습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갱년기를 겪는 엄마들의 모습이 좀 달라졌으면 한다.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라는 말로 자기의 삶을 억울해하고 힘들어하기보단, ‘나 참 열심히 잘 살았네! 고생했어!’라는 말로 오히려 인생 전반의 수고를 칭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럽마셀의 오늘의 Tip. 엄마의 갱년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참을 인(忍) 자를 가슴에 품고 사셨던 우리 어머니 시대 갱년기는 ‘화병’을 만들어 냈다.

갱년기를 겪으면서 알게 되었다. 자식에게 희생하고 헌신하는 엄마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엄마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자식 사랑이라는 것을. 엄마가 살아 계신다면 백화점에 가서 예쁜 옷 한 벌을 사드리고 싶다. 소녀 같은 모습의 엄마를 모시고 분위기 좋은 곳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으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그리고 엄마를 꼭 안고 말하고 싶다.

“엄마 감사하고, 사랑해요!  엄마 딸이어서 참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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