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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Aug 24. 2022

초보 텃밭러의 가을을 준비하는 자세

배추와 무 심기

봄, 여름 텃밭은 가고


장맛비가 끝나고 어느덧 선선해져 가는 날씨를 보니 머지않아 이 여름도 끝나고 가을이 오겠구나 싶던 때, 마침 부모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은 가을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 타이밍입니다. 일손이 필요한 이때 등장 해주신 엄마, 아빠가 얼마나 반갑던지요. 오랜만에 부모님을 모시고 텃밭에 다녀왔습니다.


가을 하면 빼먹을 수 없는 김장을 위해서, 배추와 무를 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텃밭은 이미 정글처럼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히 자란 농작물로 가득했죠.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무언가를 버리고 비워야 하는 순간이 왔습니다. 추가로 농작물을 심고는 싶지만 정글 텃밭에 손도 못 대고 고민만 하고 있는 저와는 반대로, 부모님께서는 순식간에 결단을 하시고 실행으로 옮기셨습니다. 아빠는 이제 수확량이 얼마 없겠다 싶은 참외와, 고추, 토마토, 옥수수를 뽑아내기 시작하셨죠. 딸아이가 노래로 부르던 불도저가 딱 저희 아빠 같더군요. 마음을 먹자마자, 낫을 들고 밭 여기저기를 다 뽑고 정리하시는 모습이 불도저처럼 추진력 있어 보였습니다. 힘도 딸리고, 자신 없어서 시작도 못하던 제게는 그저 하늘에서 내려온 구세주 같았습니다. 그동안 정글처럼 무성해져 가는 텃밭을 보면 숨이 턱턱 막혔는데, 아빠 불도저 덕분에 묵은 체증이 한 번에 쑥 내려가는 걸 느꼈습니다.


가을 농사 자리를 만들기 위해 뽑고, 정리 중인 봄과 여름 농작물



가을 텃밭은 옵니다


아빠가 비워낸 텃밭 자리에 엄마는 배추 모종과, 무 씨앗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무는 뭇국을 끓여먹고, 동치미를 담가먹을 수 있는 일반 무였죠. 총각김치을 담그기 위한 알타리 무는 조금 더 있다가 추석 즈음 심으면 된다는 농약사 주인분 말에 따라, 일단은 하얀 무를 심었습니다. 추석 즈음 알타리 무와 가을 상추를 후속 작업으로 해볼 생각입니다.


배추 모종과 모종을 심는 모습


마침 밭일을 하고 있던 친구 어머니의 넉넉한 인심 덕분에 대파 종자 한 줌을 선물 받았습니다. 저희 텃밭 한쪽 구석에도 대파를 심게 되었죠. 친구 어머니께서 맛있는 대파라고 주신 알차게 여문 종자를 보니, 올여름에 망했던 대파 농사가 이번 가을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더군요.


선물 받은 대파 종자와 심는 모습



봄, 여름, 이제 가을


텃밭을 가꾸기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봄과 여름이라는 두 계절을 텃밭과 함께 보냈습니다. 텃밭 가꾸기라는 새로운 취미가 있어서, 올 상반기는 그래도 허송세월 보내지 않고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텃밭을 가꾸며 자연 속에서 공부하고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텃밭 농작물들과 함께 제 자존감도 무럭무럭 자란 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엑셀, 일러스트, 파이썬과 같은 그동안 쌓았던 제 스펙에 아주 색다른 스펙 한 줄을 채운 기분이라고 할까요? 누군가에게 보여줄 이력서에 한 줄 넣고자 시작한 농사는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제 지식이 넓어지고, 제가 경험해 본 분야가 확장하는 굉장한 경험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엊그제 텃밭 주인이신 친구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 아버님과 한 대화가 생각나네요.


"아버님, 저 이제 어디 가서 농사 좀 지어봤다고 명함 내밀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이력서에 한 줄 넣어도 되겠어 이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주고받은 대화이지만, 제가 텃밭 농작물과 함께 한 뼘 성장한 건 확실합니다. 가을 농사를 끝으로 아마도 겨울은 쉬어가는 시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올겨울은 허전한 겨울이 될 것 같아 벌써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우선은 올가을까지 제 텃밭 꾸준히 돌보는데 집중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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