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의 참맛, 땅콩 조림
텃밭 인심
오늘도 일찌감치 밭에 나와서 밭일을 하고 계시는 친구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오늘 운이 좋긴 한가 봅니다. 마침 밭에서 무언가를 수확하고 계시더군요. 이를 알고 간 건 아니지만, 역시나 친구 부모님께서는 오늘의 수확물인 방금 캔 땅콩을 잎과 뿌리째로 한 무더기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거 땅콩인데, 쪄 먹으면 아주 맛있어. 가져가 먹어요."
땅 위를 가득 매우던 시퍼런 잎들을 캐보니 땅 아래에서 땅콩이 나오는 것도 신기했지만, 땅콩을 쪄서 먹으라는 말에 더 놀랐습니다. 땅콩을 쪄 먹을 수도 있다고요?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여쭤봐도, 역시나 쪄 먹는 게 정답이라네요. 친구 부모님께서 그동안 제게 나눠주신 선물은 감자, 옥수수, 대파, 땅콩까지 상당합니다. 덕분에 저희 밭과 저희 집 식탁도 풍족해지고요. 텃밭 인심 한번 참 후하죠.
땅콩의 참모습
갓 캐낸 땅콩은 뿌리에 옹기종기 모여 무슨 비밀회의라도 하듯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모든 땅콩이 땅콩 알을 두 개씩 담고 있는 생김새는 아니더군요. 생각 외로 땅콩 알을 한 개만 담고 있는 땅콩도 많았습니다. 하나뿐이지만 이 역시 땅콩을 속 안에 잘 품고 있기에, 버리지 않고 잘 모았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았지만, 그동안 먹어온 땅콩이 이렇게 뿌리에 열린다는 게 새삼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나무를 그늘 삼아 텃밭에 털썩 주저 않아 땅콩을 떼며, 농부님들이 틀어주신 라디오 속 뉴스와, 트로트를 들으며 밭일을 하니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던지요. 이 맛에 농사짓나 싶더군요. 오늘만은 저도 참 농사꾼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땅콩의 참맛, 땅콩 조림
그동안 살면서 먹은 땅콩의 대부분은 단연 볶음땅콩입니다. 아무리 머리를 짜내며 생각해봐도, 볶음땅콩 외에는 땅콩을 다른 조리법으로 먹은 추억이 없습니다. 편의점이든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수한 볶음 땅콩. 맥주 안주의 대명사 땅콩. 그게 땅콩의 모든 것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오늘 보니 아니더군요. 땅콩을 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 말씀에 따라 땅콩을 껍질째 씻어서 찜솥에 쪄보았습니다. 찜솥에 찐 후, 한 김 식혀 땅콩 껍질을 하나하나 까면서 잠시 인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단순히 찜솥에 찌기만 한 땅콩은 솔직히 단짠에 길들여진 제 입맛에는 약간 싱거운 맛이더군요. 이대로는 우리 애들도 안 먹겠다 싶어, 고민을 하던 끝에 땅콩 조림으로 작전을 변경했습니다. 조림의 달고 짠맛이 가미되면, 우리 아이들도 저도 잘 먹겠다 확신이 들었죠. 그리하여 처음 만들어보는 땅콩 조림 레시피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습니다. 기존에 만들어보던 다른 조림들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땅콩이라는 식재료가 반찬으로는 조금 어색한 제 입맛 때문일까요? 이렇게 쉬운 반찬을 그동안 한 번도 안 만들어봤네요.
껍질을 깐 땅콩에 간장, 설탕, 맛술, 그리고 청을 넣고 자글자글 졸여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물엿을 후루룩 넣고, 참기름 살짝 더해주니 끝. 순식간엔 찐 땅콩에서 단짠 땅콩조림으로 환골탈태했습니다. 달달한 게 이젠 저희 집 가족들의 입맛에 딱이더군요. 텃밭 인심과 함께 저희 냉장고 속도 풍족해져 갑니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냉장고 속보다 제 마음이 더 풍족해져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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