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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Sep 29. 2022

텃밭 전쟁, 진격의 달팽이 군단

달팽이 퇴치 작전

텃밭 전쟁, 진격의 달팽이 군단


여름의 끝자락 저희 텃밭에 들인 새 식구는 바로 배추입니다. 가을 김장철에 유용하겠다 싶어서 가뜩이나 좁은 텃밭에 빼곡히 심었습니다. 배추는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생장합니다. 문제는 배추잎의 크기는 쑥쑥 잘 크고 있지만, 무언가가 우리 배추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갉아먹혀가며 시름시름 아파하는 배추를 보니, 배추들의 아픔이 제게까지 전해지더군요. 나중에 내가 김장을 해서 먹을 배추잎인데, 내 식량을 먼저 먹어치워 버리는 이 존재는 무엇인가 고민에 빠졌죠. 모종을 갓 심었을 때는 텃밭으로 이사한 모종들이 적응하느라 힘들어서 그런 것이려니, 가볍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지는 이 상황을 속수무책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더군요.


달팽이한테 먹혀버린 배추잎


역시 사람의 경험과 연륜은 무시할 수 없더군요. 마침 텃밭에서 만난 친구 부모님은 배추잎 모양만 보고서도, 범인이 달팽이임을 한눈에 알아보셨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배추잎은 달팽이들이 좋아하는 먹잇감으로 유명한 듯했습니다. 제가 키우고 있는 배추잎이 얼마나 맛있는지, 달팽이들이 성한 잎이 거의 없을 정도로 모조리 갉아먹어버렸죠. 농약사에 가서 달팽이 약을 사다가 배추에 약을 좀 주면 해결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무농약으로 키우겠다는 욕심은 일단 재껴두고 달팽이 약을 쳐서 배추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휩싸였습니다.

 


달팽이 퇴치 작전


최대한 약은 안 쓰며 친환경으로 농사를 지어보고 싶었지만, 이 강력한 달팽이 군단은 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약을 치지 않으면 배추 모종을 사다가 달팽이 먹이로 바치는 셈이니까요. 올해 배추값도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가을 김장 때 드는 돈도 만만치 않을 텐데, 이번 배추 농사만큼은 잘 지어서 올해 농사 마무리를 잘하고 싶었죠. 그래서 이번 달팽이 군단의 공격은 제게 정말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습니다.


흙 위에 있던 달팽이들은 본 적은 있었지만, 달팽이가 저희 배추잎을 먹는 것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리송했지요. 배추잎을 이렇게 다 갉아먹었는데, 제 눈에 한 번도 안 띈다니요? 달팽이가 배추잎을 먹는다는 사실을 모를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이렇게 알게 된 이상 그냥 넘어가기에는 배추들이 억울할 것 같더군요. 그래서 배추잎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세상에! 이 엉큼한 달팽이 군단은 배추잎 앞이 아닌, 뒤에 딱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배추잎을 갉아먹고 있던 게 아니겠어요. 그동안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달팽이한테요.


배추잎 뒤에 숨어서 맛있게 배추잎을 먹고 있는 달팽이


약을 쳐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어릴 적 농사 경험이 있으신 부모님과 함께하면 달팽이쯤이야 단숨에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부모님이 내려오시기 하루 전날, 친구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여기 배추들 달팽이 약이랑, 영양제랑 내가 다 줬어요."


생일에 완벽히 속아 넘어간 서프라이즈 파티가 이보다 서프라이즈 할까요? 친구 부모님께서는 같은 농지에 있는 본인 배추에 약을 주시면서, 저희 배추에도 약과 영양제를 함께 뿌려주셨죠. 아무래도 이 새내기 농사꾼의 배추 농사가 망해가는 게 아버님께서도 보기 안쓰러우셨나 봅니다. 감사하게도 제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달팽이 퇴치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배추야, 아프지 마


비록 아픈 배추에게 약은 제가 직접 못 주었지만, 그동안 달팽이의 공격을 몰라줬던 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슴 한쪽에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약을 주는 대신에 아픈 배추잎들을 골라가며, 하나하나 제거해 주는 작업을 했습니다. 더는 필요 없어진 잎들을 제거하면, 그만큼의 영양소가 더 싱싱한 잎들에게 전해질 것 같았죠. 아픈 과거는 털어버리고 싶은 제 마음도 물론 컸고요. 잎에 남아있는 달팽이들도 직접 털어주며, 배추잎과 교감하며 잎을 골라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배추잎을 다 떼고 보니, 우리 배추들 그동안 고생 참 많았구나 싶네요.


갉아 먹혀 떼어내 버린 배추잎들


배추는 완전히 상처를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심하게 아파 보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부디 친구 아버님께서 대신 쳐주신 약이 효과가 좋아, 앞으로는 달팽이 군단의 공격이 더는 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고작 달팽이와 치른 전쟁인데 이렇게 진이 빠지고, 마음이 아픈데. 진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지구 한쪽은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클까 싶습니다.


제가 이번 가을에 이루고 싶은 꿈 중 하나는 직접 키운 배추로 친정 엄마와 함께 김장입니다. 올해에는 엄마의 김장 솜씨를 좀 더 자세히 배우고, 익히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엄마 손맛의 김장 방법을 잘 배워두고, 제 평생 그 맛을 잊지 않고 싶어서요. 매년 미뤄왔던 일인데, 달팽이도 퇴치했으니 이번에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네요.


아픈 배추잎을 떼어내고, 한결 싱싱해 보이는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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