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벗어나니 철학이 보였다
학생 때는 막연히 철학을 우아한 시간낭비라고 생각했다. 교복, 급식, 단체 활동 등 효율로 가득 찬 사회에서 남들만큼 혹은 남들보다 잘 살아가기에 철학을 관철하고 탐구할 여유는 없었다. 그저 사회적 관념정도의 적당한 도덕심과 멍청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착함을 갖고 살아왔다. 조금 더 자유가 허락된 대학에서도 이 관성은 이어졌다.
지난 2023년 7월,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둔 여름에 한 과학학원의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학생 수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는 비율제로 제 또래 직장인에 비해 많은 돈을 벌었다. 겸사겸사 그동안 과외로 모아 둔 돈을 털어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이 자그마한 월세방과 매달 통장에 꼬박꼬박 찍히는 월급만으로 안정적인 느낌을 넘어서 여유를 갖게 되었다. 학교에는 취업계를 내어 마지막 학기를 다니지 않고 학원 일에만 집중하며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직을 준비하며 잠시 일을 쉬었다. 한주에 두세 번 운동하러 나가는 걸 빼고는 집에서 살림만 했다. 한 끼니만 챙겨 먹어도 나오는 게 설거지거리와 쓰레기고, 며칠만 방치해도 방바닥은 머리카락에 화장실은 물때가 끼니 몸은 여전히 바빴다. 하지만 어떤 날은 끝없는 지루함이 내게 찾아오곤 했다. 불안과는 다른 텅 빈 느낌이었다. 이게 사는 건가? 나는 그때 처음으로 철학자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