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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디 Mar 31. 2024

구멍난 이불, 100만원

 올 해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새학기가 시작되는 3월 말, 교사들에게는 선물이 하나씩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작년 근무에 대한 보상인 성과금이다. 공무원으로 학교에서 똑같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교사들 사이에도 맡은 업무에 따라 일의 가볍고 중함이 정해진다. 한 해간 학교에 굵직한 업무를 맡아 머리를 쥐어싸맨 사람들은 s등급, 적당한 업무에 담임을 맡았으면 a등급, 담임을 맡지 않았다하면 거의 b를 받는다. s등급은 근 500만원, a등급은 410만원, b등급은 380만원 정도이다.


 가난하고 저경력인 나지만, 성과급을 5년정도 받아보니 400만원이 넘는 돈이 들어와도 기쁘기만 하지 풍차 옆돌기를 할 만큼 특별하게 기쁘지는 않다. 물론 많이 기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성과금은 보통 3월 말 정도에 들어오는데 3월 월급날이 지날 때부터 매일 생각한다. 성과금 들어오면 뭐하지? 뭐 사지? 매일 은행 어플을 들락거리고 인디스쿨에 이번 성과금 언제 들어오나요? 라는 글을 올리는 것도 물론이다. 이렇게 돈을 번다는 것은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어엿한 직장인 5년차로써 처음 성과금을 받았을 때의 짜릿함보다는 조금 떨어지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돈을 받고도 딱히 쓸 데가 없어 남자친구의 선물을 하나 사고 비싼 회를 한번 사먹은 후 잔액을 모두 증권 계좌로 옮겼다. 환율이 떨어지면 달러로 모두 바꿔 우량주를 살 것이다. 매일 조금씩 상승하는 거대하고 단단한 우량주… 주식 능력이 없는 나로써는 그게 제일 낫지 않나 싶다.


 요 며칠 전부터 우리반 아이 어머님의 요청이 들어왔다. 다문화 장학 재단에 장학금 신청서를 작성하고 싶은데 절차가 까다롭고 어려워 도움을 줬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알고보니 아이는 어머님이 베트남 분인 다문화 가정의 아이였다. 작년 담임에게 인계받은 자료에는 아무 기록이 없어 나는 그 아이가 다문화 가정인 줄도 몰랐다. 관련 공문을 찾아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발급받아야 하는 서류가 한가득이었다. 개인서류 이므로 어머님이 발급받아야 하는 자료인데, 장학금 신청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면 어머님의 언어가 얼마나 가능할 지도 몰랐다. 어머님이 이해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류는 받아야 하므로 하이클래스를 켜 메신저로 필요한 서류들을 쭉 불렀다. 우리 엄마는 한국 사람이지만 기계치인 우리 엄마가 발급받으려 해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할 자료량이었다.


어머님 신청건으로 필요한 서류가 더 있어 연락드립니다.

재학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다문화 가족 입증서류(결혼 이민자 출신 국적이 표시되어야 합니다.)

법적 저소득 가족 입증서류

건강보험자격증

건강보험 납부확인서 가 필요합니다~ 학교장 추천서는 제가 준비해보겠습니다.


 어머님의 대응은 빨랐다. 서류를 확인해보니 어머님은 우리 언니와 나이가 같았다. 내 나이가 29이니, 젊은 나이였다. 나보다도 능숙하게 민원24에서 모바일로 조회한 문서를 캡처해서 내게 보내주셨다. 서류를 제출하려고 보니 학생의 자기소개서가 필요했다. 아이들을 모두 하교시킨 후 아이와 둘이 앉아 서로 머리를 쥐어짜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a야, 혹시 지금 누구누구랑 같이 살아?

엄마, 저, 동생이요.


혹시… 아버지랑 어머니는 언제 이혼하셨어?

재작년 겨울에 했어요.


어머니는 매일 일을 가셔?

매일 가요. 주말에도 가요. 너무 힘들어보여요.


 그렇구나. 베트남에서 온, 우리 언니와 나이가 같은, 초등학교 아이를 둘 가진 이 젊은 엄마는 혼자서 일을 하며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어머니의 건강보험 납부확인서에는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일을 다닌 흔적들이 가득했다. 대단한 사람이었다. 우리 엄마같이. 우리 엄마는 어려서 아이 넷을 혼자서 먹여 살렸다.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을 주변 사람에게 들킨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알기에 아이에게 위로도 되지 않을 위로를 했다.


a야, 이런 일은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네가 잘 성장해서 멋진 사람이 되면 돼. 절대 부끄러워 하지마.

저 부끄러운 일 아닌거 알아요.


a의 글짓기 실력은 별로 좋지 않았다. a의 담임 교사로, 보호자의 역할로 대필 수준으로 자기소개서를 모두 작성했다. 그리고 서류를 제출하려는데 장학금 지원 금액이 나왔다.

100만원. 어느덧 밥벌이 5년차인 내겐 코에 붙이기 어렵게 느껴지는 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난하고 속도 좁은 나로써는 아이에게 “내가 줄게! 걱정하지마” 하기도 어려운 금액이었다. 나는 그저 아이가 장학금을 받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구멍난 이불도 새로 사고 힘들게 일하는 엄마를 한순간 기쁘게 할 수 있도록, 자기소개서라도 한 줄 더 추가하는 것이다.


이번 달부터는 나도 소액이라도 후원을 시작해봐야겠다. 변변한 차도, 집도 없지만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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