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레디 Apr 13. 2024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교직이라는 지옥 1

 오늘 적어볼 내용은 나의 교직생활 첫, 그리고 가장 큰 트라우마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 1년은 떠올리면 괴로웠고 그 다음 1년은 떠올리기 조차 싫었다. 그때의 끔찍한 기억들을 떠올리면 턱에 힘이 들어갔고 이는 강하게 다물렸다. 격한 스트레스 반응이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괴로워졌다. 그렇게 생각하기도 싫었던 기억들을 다시 꺼내 글로 적는 이유는 이제는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내가 희망한 학년과는 전혀 달랐다. 나보다도 학교 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내가 희망한 5학년에 배치되었다. 아직 경력도 짧고 뭐를 잘 몰랐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어 교감을 찾아갔다. 교감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가라고 했다. 용기를 내서 찾아간 걸음이었지만 별 답도 얻지 못하고 축 처진채로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처음 맡게 딘 6학년 아이들이었지만 그래도 잘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은근히 낙천적인 면모가 있기에 어차피 1년, 조금 힘들어도 추억 한번 쌓아보자 싶었다.


아이들을 맡은 지 1주일이 지나고, 그 중 가장 주의하라고 했던 아이에게 몇 번이고 밀쳐져 교실 바닥에 내팽겨쳐지고 면전에 “씨발년” 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점심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a군과 b군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고 a군은 b군의 목을 조르겠다며 쫒아갔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였지만, a군의 키는 175cm 몸무게는 80kg이 넘었다. a군을 말려보려고 해봤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동학년의 중년 여선생님들은 아이를 말리느라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나를 보고도 눈을 피했다. 그때 나를 도와준 건 옆반 언니가 유일했다. 학교 남자선생님들이 와 a군을 말리고 나는 멍해진 상태로 5교시, 6교시 수업을 진행했다. a군도 수업시간은 들어와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지 내 수업을 들었다. 십분전에 나를 바닥에 밀치고, 내팽개치고, 이러지 말라는 나의 말에 “씨발년아! 네가 안 말리면 되잖아!” 라고 했던 아이를 상대로 수업을 해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내려갔다. 교감에게 말했다.

교감은 놀란 듯 나를 보며 말했다. “정말 네 얼굴을 보면서 씨발년 이라고 했다고?”

“네…”


교감에게 보고를 하고 퇴근을 했다. 축 처진 나를 위해 동학년 선생님들은 모여서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고 나는 다시 출근을 했다. 내가 겪은 일이 명백한 교권침해이고, 교권침해를 당한 교원은 학교장의 판단 아래 7일간의 교권보호휴가를 쓸 수 있고, 교권침해를 당한 교원은 학교장에게 교권보호위원회를 열 수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a군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데 공포가 느껴졌다. 그 일이 있은 후로도 그 아이는 내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아이들은 수업시간 떼로 스마트폰을 하러 화장실로 갔다. 내 교실이 무너진 것 같았다. 고통받는 내게 옆 반 중년 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이 그 아이를 막으려고 옷깃을 잡았지? 선생님이 그 애 상대로 뭘 연다고 하면 그것도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부모들이 있어… 수렁이었다. 입직한 지 3년이었는데 교직이 지옥처럼 느껴졌다.




  

작가의 이전글 5년차 초등교사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