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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등을 만나다

흐름에 어우러지고 싶다

by 글꽃향기 Mar 0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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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유 있는 평일 아침, 7시 30분쯤 출근을 합니다. 일터는 서울 서남부에 위치해 있어요. 아주 가끔, 아주 운이 좋으면 25분 정도 후 일터에 도착합니다. 서울로 진입하려는 차들은 꽤나 많기에 대개는 40분 정도 걸립니다. 일 년에 두세 번, 황금연휴나 명절을 앞두고 있는 평일에는 1시간 이상도 걸리지요. 그때의 초조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서해안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서울로 진입합니다. 그 와중에 8차선, 4차선,  2차선, 다양한 종류의 도로를 달리게 됩니다. 게다가 일터 근처는 일방통행의 좁은 길이라 저속으로 조심조심 운전해야 합니다.




 내가 만나는 신호등은 꽤 많습니다. 때로는 좌회전 신호를, 때로는 직진 신호를 기다립니다. 우회전 타이밍엔 전후좌우뿐 아니라 사돈에 팔촌의 땅까지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횡단보도 초록 신호의 깜빡임을 보고도 저 멀리서 전력질주해 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긴장이 최고조인 상황입니다.




 그날은 여느 날보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섰습니다. 혹시나 며칠 안 되는 운 있는 날이 그날이  되길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온 신경을 신호등에 집중했습니다. 멈추지 않고 앞차를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바람은 바람일 뿐이었지요. 교차로를 통과하려는 찰나에만 주황색으로 바뀌는 신호등 마법이 이어집니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 이어집니다. 내 앞에서 펼쳐지는 마법에 거슬러 보고자 무리를 해서 가속 페달을 밟아도 보지만  교차로를 매번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주황빛에서 빨간빛으로 색을 바꾸어 버린 신호등을 앞에 두고 한숨을 푹 쉬어 봅니다.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단톡방에 쌓여 있는 메시지나 확인해 보자' 하며  휴대전화를 열어 봅니다. 이런, 만 5세가 넘은 나의 11 이폰이는 이제 나의 얼굴을 인식조차 못 합니다. 잠금 열기도 한 번에 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를 눌러도 보지만 때때로 나의 터치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걸립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단톡방까지 이르자, 갑자기 뒤차가 빵빵댑니다. 세상에, 어느새 초록빛 신호가 내 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뒤에 있는 친구의 마음을 비상등 몇 번으로 달래 줍니다. 지금은 쉬어가자 싶었는데, 그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초록빛 신호등 퍼레이드가 내 앞에 연달아 펼쳐질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만은 음악과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빨간 신호 앞에서  음악을 틀고팠는데, 초록 신호가 이어지고 있으니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 번쯤 여유를 갖고 싶은데 숨 가쁘게 연달아 달려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유턴을 해야 할 때가 떠오릅니다.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유턴이 필수 관문인 경우도 있습니다만, 길을 한 번에 찾지 못해 되돌아가야 할 때가 많습니다. 우선 유턴이 가능한 곳을 찾아야 합니다. 간혹 목전에서 유턴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최소한 교차로 두어 곳은 지나야 합니다. 한적한 길이나 외곽 도로라면 기약 없이 한참을 달려야 합니다. 자칭 '유턴 전문'이라 부르고 있기에 초행길은 여유를 갖고 움직이는 편이라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경우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래서  마냥 앞으로만 나아가고 싶은데, 주변 환경이 나를 가로막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가족들이 나를 말릴 때도 있었고, 예상치 못했던 긴급한 일이 생겨 내 계획이 틀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빨간 신호등이 내 앞에 펼쳐질 때와 비슷합니다. 내 능력과 힘에 부쳐서 턱걸이로 겨우겨우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주황 신호등이 모습을 드러낼 때와 닮았습니다.  때로는 쉬어 가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내 몸과 마음은 지쳐 있는데 그래서 잠시 동안만이라도 한 박자 숨을 크게 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습니다. 앞에서는 서두르라 손짓하고 뒤에서는 나를 바짝 쫓아옵니다. 초록 신호등이 연달아 펼쳐질 때가 그렇습니다.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이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초록 신호등만을 간절히 원했지만 내 앞에 보이는 빨간 신호등은 누군가가 나에게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여유를 갖고 한 번 돌아봐!'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해 볼까?'



 주황 신호등은 어떤 의미일까요?

 '조금 급했지만 무사히 넘겼어!'

 '아직은 아니니까 잠깐 기다려!'



  빨간 신호등을 원했지만 초록 신호등이 펼쳐질 때, 이렇게 생각해도 되겠습니다.

 '힘들지만 이 흐름을 잘 타면 나는 어딘가 새로운 곳에 다다라 있을 거야!'라고요.




 얼마 전부터  내 앞에 초록색 신호등이 연달아 펼쳐져 있습니다. 숨이 가쁩니다. 잠시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싶습니다. 힘에 부쳐서 감당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흐름에 잘 묻어가야겠지요. 그러다 보면  빨간 신호에서 숨을 한 번 크게 쉴 수 있겠지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로운 순간이 오겠지요. 그리고 어느새 새로운 곳에 도착해 있겠지요!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저에게 대선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흐름을 타야 한다."

 "앞의 앞 차의 상황까지 보아라!"

 "차선을 바꾸려면 옆의 옆 차선까지 살펴라!"




 신호등 빛깔에 맞추어 가다 서다를 반복했지만 불만이 가득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조금 달라지고 싶습니다. 앞과 뒤 그리고 옆의 차들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싶습니다.  때로는 숨 가쁘더라도 조금 더 힘을 내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흐름에 어우러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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