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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Feb 23. 2024

임금님이 안 계시는 세상을 꿈꾸며

시험감독을 하러 갔다.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나이 제한이 없이 누구나 응시 가능해서 시험장에 가 보면 어린 학생들에서 70대 이상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1교시 시작. 문제 발생. 60대로 보이는 남성 응시자 한 분이 거북이처럼 목을 내밀어 주변 응시생들의 답안지를 훔쳐보시는, 아니 그냥 대놓고 빤히 보시는 상황. 누가 봐도 부정행위였고 나와 같이 그 교실에 들어간 부감독관도 같은 의견이었다. 1교시 후 쉬는 시간. 시험본부에 이 상황을 보고했다.


"그분께 경고를 하세요."

"또 그러면 사진이나 동영상 찍을까요?"

"그러면 다른 응시생들 방해돼요. 경고만 하시고, 또 그러면 답안지 회수하고 본부에 인계하세요."

2교시. 시작 전 그분께 구두로 경고를 했다. 목디스크가 있어서 스트레칭을 해 줘야 한다는 게 그분이 말씀하신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게 감독관이 인지하고 있음을 알면 더는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2교시에도 그분은 똑같은 행동을 계속하셨고, 주변 자리의 응시자들도 모두 그분의 행동을 인지하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그대로 두면 나중에 감독관이 시험관리에 소홀했다는 말이 나올 게 뻔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답안지를 회수하고 그분을 시험본부로 모시고 내려갔다. 조금 전의 그 시험본부 직원을 찾았다.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5분 정도 후에 나타나서 말한다.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물적증거가 없어서 조치를 할 수가 없어요."


아까는 다른 응시자들 지장 받으니 찍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시험본부에서는 이슈를 만들기 싫어서 조용히 묻어 버리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나는 뭐가 되는가?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후다. 고사장을 나오는데 아까 그 응시자분께서 학교 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자신이 뭘 잘못한 거냐고 내게 따져 물으신다. 그리고는 뭔가를 꺼내서 내민다. 자신은 요리사라 한다. 자신의 나이가 62살이라고 한다. 그분이 내 눈앞에 흔들어대는 쪽지를 보지 않았다.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만 이렇게만 말씀드렸다.


"선생님, 시험 결과는 기다리시면 됩니다(실제로 부정행위자로 처리되진 않을 것을 암시). 그리고 그건 선생님께서 요리사가 아니라 대통령이셨어도 달라질 일이 아니었습니다."


갈 길을 가려했는데, 여기서 나는 귀를 냇물에 씻고 싶은 말을 듣고 말았다. 아주 긴 호통이었는데 기억나는 것만 더듬어서 나름 순화해서 의역하면, 이놈이 어디서 말대답이냐는 말씀, 네놈은 어미 아비도 없냐는 말씀, 청와대와 국민신문고 투서 넣어 파면시켜 버리겠다는 말씀, 공무원은 국민의 종인데 주인을 우습게 아는 게 어디의 법이냐는 말씀, 이러니까 사회가 이 모양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내고는 이런 상황의 결말이 늘 그렇듯 마무리는 '내세먹새 공같새'다(내세먹새 공같새란 '내 세금 먹고사는 ♡끼, 공무원 같지도 않은 ♡끼'의 줄임말).


내세먹새 공같새...

내세먹새 공같새...


언제부터 공무원이 법과 규정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집행하는 존재가 아닌, 개인이 저마다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원대로 부리는 존재가 됐을까. 공무원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존재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 마인드 없이 이 직업을 가질 수 없음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민간에서도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이 이젠 통하지 않듯, 봉사와 서비스 정신만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각자 저마다 자신을 초법적 존재로 인식하고 공직자를 임의로 부려도 되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도 잘못이긴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게 하루이틀 일도 아니니, 이런 분들이 두렵진 않다. 다만 이런 식의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사람 자체를 방어적으로 대하도록 바뀔지도 모르는, 업무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사람이란 존재를 꺼리고 반사적으로 움츠러드는, 오직 두려운 건 어쩌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그렇게 변해 갈지도 모르는 나 자신이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말도 서비스 제공자가 고객의 입장과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뜻 아니었을까. 그건 분명 고객이 '나는 왕이라고 왕' 이런 생각을 품고 자기 마음대로 부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을 것이다. 격언들이 흔히 그렇듯 이것 역시 구전되다 맥락은 사라지고 워딩만 남아 이렇게 되어 있다. 그나마 예전에 비하면 조금은 나은 것도 같지만.

소상공인/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 카페에 올라온 사진

한 초밥뷔페 운영자가 매장에 붙인 안내문 사진이 화제가 되자 누리꾼들의 논쟁이 있었다. 대개 사장님의 생각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댓글이었지만, 장사하는 사람의 서비스 마인드로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취지의 댓글도 제법 있었다.


이것이 왜 논쟁씩이나 되는지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내가 보고 들은 모든 외국의 서비스 방식에서는(물론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이라는 가정이 필요하겠지만)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을 내는 손님과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사람 사이의 ‘갑을 관계'보다 우선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전에 우리나라에서 영업하는 미국계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는 서빙 직원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보다 아래가 되려고 땅에 무릎을 꿇고 테이블 위로 고개만 내밀고 주문을 받는 행동을 매뉴얼화한 적이 있다. 이게 한국에서 '모범사례'가 되어 국내의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도 따라 하고 심지어 미국 본사로 역수출됐다는 자랑까지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미국에서 이게 통했을 것 같진 않다.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걱정하기 전에, 먼저 손님들부터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프랑스 한 카페의 가격표. '커피 한잔' 7유로, '커피 한잔 부탁해요'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부탁해요' 1.4유로. 여기서 '손님은 왕이다'가 씨알이라도 먹힐까

누군가는 말한다. "고객이 왕이 아니면 누가 왕이란 말이냐? 그럼 사장이나 공무원이 왕이란 거냐?" 아니. '철수는 늘 거짓말만 한다'의 반대말이 '철수는 늘 진실만을 말한다'가 아니듯, 고객이 왕이 아니라고 다른 누군가 왕이 되진 않는다.


왕은, 없다. 없어야 한다. 비록 현실에서 완전한 동등관계는 있기 어렵고 한쪽이 조금이라도 힘을 더 가진 게 보통이더라도, 한쪽을 대놓고 왕이라 인정해 버려서 다른 쪽을 노비화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자신을 어떤 상황에서도 왕으로 착각해선 안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왕처럼 보이는 포지션이 있다면, 그 포지션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있으면 좋겠다.


좋은 세상이란 어떤 걸까. 세상에는 정의할 순 없고 다만 묘사할 수만 있는 것들이 몇 있다. 좋은 세상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특징 하나를 '묘사'할 수 있다면, 그건 서로가 돈이라는 권력 앞에서 인간적인 완충지대를 남겨놓는 세상이다. 누구도 왕이 되지 못하는 세상, 누구도 왕이라 불리지 않는 세상, 누구도 자신을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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