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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번 고개를 넘었네

by 나날








'우리 아이는 수줍음이 많으니까 내가 가서 있어줘야지'라는 생각이 문제였다. 이미 나는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에는 이 마음이 섞여 있었을 게 분명했다. 숨기려고 하면 할 수록 어색해지는 게 마음이라더니, 외면하고 싶던 내 불안은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너무 강해져만 갔다. 아이의 유치원에서 한학기에 한번씩 진행하는 '부모참여 수업'을 앞둔 내 마음에 대한 이야기다.


'교실을 가득 채우는 엄마들, 하필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어라는 과목, 몇 명씩 앞에 나가서 퀴즈도 맞추고 영어로도 말해야 하는 과제 등등'은 아이가 넘기에는 너무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까짓 거!' 같은 마음은 나에게 없었다. 이쯤 되면, 긴장하고 있는 사람이 아이인지, 나인지 구분이 모호하다. 나는 지금 아이를 걱정하는 것인지, 엄마들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아이를 둔 나를 걱정하는 것인지..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임에도, 당시 나는 그것까지 인정할 '용기'는 없었다.



엄마가 미리부터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엄마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행사 당일 아이가 수업에 참여를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타들어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위해 얼굴에 미소를 띠느라 나는 꽤나 마음이 부대꼈다.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이라면, 나는 너무 속상했을 텐데 그건 아니니 얘기를 끝까지 읽어보자.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이는 다음날에도 예정되어 있는 두번째 부모참여 수업은 빠지고 싶어 했다. 나도 마음의 부대낌을 줄이기 위해 아이를 수업에서 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답은 아니니까.. 우리는 (아니, 나는) 목표를 낮추기로 했다. 기존의 목표가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심지어 당당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우리 힘들지만, 도망치진 말자. 내일 수업은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연습 시간인거야. 우리는 그것만 해내보는 거야" 정도로 말이다.


아이에게 내가 이렇게 말하던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순간 우리 어깨에 (아니, 내 어깨에) 얹어져 있던 수많은 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 아이가 다른 엄마들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라던가, '내 아이가 영어 수업을 즐거워해야 한다'라던가, '앞에 나가서 자유롭게, 심지어 자신감 있게 발표해야 한다'라는 수많은 시험 과목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그냥 서로의 눈을 보자. 다른 엄마들을 보게 되어서 네 마음이 움츠려 들더라도, 다시 엄마 얼굴을 보는 거야" 아이와 나는 이렇게 약속하고 다음날 유치원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나눈 대화 덕분이었을 수도 있고, 두 번째라 더 익숙해져서 일 수도 있고, 아이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모습으로 엄마들이 교실에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네가 편하니 나도 편하네?"라는 말을 눈으로 아이에게 보내주었다.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니 씩 웃었다.


아이가 수업 내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에는 눈물이 얼굴에 차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울지 않기'가 아니었다. 설령 눈물이 흘러나오더라도 그곳에 있기가 우리의 목표였으니, 나는 괜찮았다. 나에게 '아이는 잘 해내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과 '아이는 잘 해낼 거야'라는 믿음이 채워져 있었고, 고맙게도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수업을 즐겼다.


어제와 다른 아이의 모습에 주변 엄마들도 지나가며 응원을 해주었다. 어제는 아이가 힘들어하더니, 오늘은 제법 수업을 즐기는 것 같다는 말에 내 입꼬리는 귀에까지 가서 걸렸다. "엄마, 정말 재밌었어. 엄마들이 무섭지 않았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이 문장은 나에게 정말 최고였다. 이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과 두 눈이 반짝였다. 아이가 참 기특해 보였다. 처음 수업에서는 내 눈에도 그렇게 주변 것들이 많이 보이더니, 두 번째 수업에서는 아이 얼굴이 나를 꽉채웠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한뼘 나아갔다.



*오늘의 감정 [성취감]

(두려움을 이겨내고)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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