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Dec 06. 2024

또 한번 고개를 넘었네

'우리 아이는 수줍음이 많으니까 내가 가서 있어줘야지'라는 생각이 문제였다. 이미 나는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고,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에는 이 마음이 은근히 섞여 있었을 게 분명했다. 숨기려고 하면 할수록 어색해지는 게 마음이니까. 불안을 감추려니, 너무 강해지거나 무뎌지거나..   


엄마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지켜보는 수업을 앞둔 아이가 내 눈에는 이렇게 보였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교실을 가득 채우는 엄마들, 하필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어라는 과목, 몇 명씩 앞에 나가서 퀴즈도 맞추고 영어로도 말해야 하는 과제 등등'은 아이가 넘기에는 너무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까짓 거, 같은 마음은 나에게 없었다.  





엄마가 미리부터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모든 것을 '엄마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수업에 참여를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기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를 보며, 내 마음도 쪼그라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위해 얼굴에 미소를 띠느라 나는 꽤나 마음이 부대꼈다. 이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끝이라면, 나는 너무 속상했을 텐데 그건 아니니 얘기를 끝까지 읽어보자.


그날 수업이 끝나고, 아이는 다음날에도 또 예정되어 있는 부모참여수업은 빠지고 싶어 했다. 나도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마음의 부대낌을 줄이기 위해 아이를 수업에서 빼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답은 아니니까.. 우리는 (아니, 나는) 목표를 낮추기로 했다. "우리 힘들지만, 도망치진 말자. 내일 수업시간은 우리가 그 자리에 있는 연습 시간인거야. 우리는 그것만 해내보는 거야"


이렇게 아이에게 말하는 순간에 우리 어깨에 (아니, 내 어깨에) 얹어져 있던 수많은 짐들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내 아이가 엄마들 앞에서 당당해야 한다'라던가, '내 아이가 영어 수업을 즐거워해야 한다'라던가, '앞에 나가서 자유롭게, 심지어 자신감 있게 발표해야 한다'라는 수많은 시험 과목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그냥 눈을 보자. 다른 엄마들을 보게 되어서 네 마음이 움츠려 들더라도, 다시 엄마 얼굴을 보는 거야" 아이와 나는 이렇게 약속하고 다음날 유치원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모참여수업을 위해 교실에서 다시 만났다.  






우리가 나눈 대화 덕분이었을 수도 있고, 두 번째라 더 익숙해져여서 일 수도 있고. 아이는 이전보다 훨씬 편안해진 모습으로 엄마들이 교실에 들어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네가 편하니 나도 편하네?"라는 말을 눈으로 아이에게 보내주었다. 아이는 씩 웃었다.


아이가 수업 내내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음악'시간으로 다 같이 혹은 그룹을 지어서 율동도 하고 악기도 연주해야 했다. 아이는 그런 것들을 해내며, 어느 순간에는 눈물이 얼굴에 차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의 목표는 '울지 않기'가 아니었다.


설령 눈물이 흘러나오더라도 그곳에 있기가 우리의 목표였으니, 나는 괜찮았다. 나에게 '아이는 잘 해내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과 '아이는 잘 해낼 거야'라는 믿음이 채워져 있었고, 고맙게도,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수업을 즐겼다.






어제와 다른 아이의 모습에 주변 엄마들도 지나가며 응원을 해주었다. 어제는 아이가 힘들어하더니, 오늘은 제법 수업을 즐기는 것 같다는 말에 내 입꼬리는 귀에까지 가서 걸렸다. 엄마와 아들이 얼마나 신나 했으면,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동안 원감 선생님이며 보조 선생님들에게도 잘했다는 인사를 줄줄이 받았다.


"엄마, 음악 수업 정말 재밌었어. 엄마들이 무섭지 않았어"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가 나에게 한 말이었다. 이 문장은 나에게 정말 최고였다. 이 말을 하는 아이의 얼굴과 두 눈이 반짝였다. 기특한 녀석. 처음 수업에서는 엄마 눈에도 그렇게 주변 것들이 많이 보이더니, 두 번째 수업에서는 나에게도 네 얼굴밖에 보이지 않더구나.





*오늘의 감정 [성취감]

(두려움을 이겨내고)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는 느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