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자연과 정치 (13)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헌법광장과 모네다 궁전부터 찾았다. 확실히 멕시코시티의 소칼로나 페루 리마·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과 다르다. 멕시코 페루가 바로크풍이라면, 산티아고는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근처의 구 의사당 건물과 시립 극장 건물도 질서정연하고 좌우대칭이 완벽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있다.
모데나궁 한 쪽에는 73년 쿠데타로 인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서있다.
아옌데는 1970년 사회당 후보로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가 추진한 사회주의 정책은 미국의 눈에 가시가 되기 충분하였다. 결국 1973년 미국 CIA를 등에 업은 군부의 피노체트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불바다가 된 모네다궁에서 아옌데 대통령은 자결을 선택한다. 자살 직전 그의 결연한 마지막 연설은 전설처럼 회자된다.
쿠데타의 작전개시 암호 ‘오늘 산티아고에는 비가 내립니다’는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어 전세계에 이 사건을 각인시긴 바 있다.
이후 집권한 피노체트는 1990년까지 폭압적인 독재를 펼치는데, 이는 근시대 우파 독재를 통틀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만큼 잔혹한 것이었다. 수천 명이 국가폭력으로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었고, 반대파는 해외로 망명했더라도 유괴해서 살해했다.
민심 이반과 국제 사회의 비판을 이기지 못해 사임하고도, 피노체트는 1998년까지 군 통수권을 쥐고 있었고, 이후에도 종신 상원의원과 과거 행적에 대한 사면권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군 통수권 상실 이후 독재자의 말년은 추레하였다.
스페인이 칠레 거주 자국 국민에 대한 국가 폭력을 사유로 그를 기소하였고, 치료차 영국에 있던 피노체트가 체포된 것이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한 영국은 고심 끝에 피노체트를 결국 칠레에 송환하긴 하였으나, 칠레 법원은 가택연금 및 유죄 확정 판결을 내린다.
칠레에는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우파 피노체트주의자가 상당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그의 집권기 치안이 안정되고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이다. 페루 국민 절반이 후지모리를 지지하는 이유와 같다.
남미의 뿌리 깊은 반미 정서에도 신자유주의 우파세력이 종종 집권할 수 있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던 권위주의 정부 시기의 국가 경제 성장과 치안 안정이라는 성과가 있다. 이 성과는 반신자유주의 정권 집권기 경제가 어려울 때, 더 크게 부각이 된다.
오늘날 칠레는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용서’로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정당 연합이 행정부를 구성해 운영하는 다당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이는 민주주의가 성숙한 독일, 네덜란드 등 정치 선진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정치적 안정이 경제적 번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칠레는 남미의 유럽으로 불린다.
철저한 진상조사와 재판에 기반을 둔‘기억과 용서’가 ‘망각과 어설픈 타협’을 선택한 다른 남미 국가(*여전히 정치적 혼돈과 빈곤을 겪고 있는)와 칠레를 구분 짓는 시사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