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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여자이며 남자인 노비의 간통 - 사방지

★ 금삿갓의 은밀한 여성사 ★(250317)

by 금운사 Mar 23. 2025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남자 아니면 여자일까?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렇지 않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남자이면서 여자, 여자이면서 남자인 양성(兩性)을 가진 존재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 세조(世祖) 시절에 조정과 사대부 집안들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바로 이 양성인간(兩性人間)의 간통사건이다. 이런 특이한 신체구조를 가진 사람을 우리말로는 어지자지 또는 남녀추니, 반음양(半陰陽), 양성구유(兩性具有), 고녀(睾女), 자웅동체(雌雄同體) 등으로 부른다. 영어로는 Intersex 또는 Hermaphrodite라고 부른다. 조선왕조실록에 여인의 사통(私通) 사건은 숱하지만 이런 양성인간과의 사통 사건도 둘이나 있었다. 하나가 바로 세조의 치세에 일어난 그 유명한 사방지(舍方知) 사건이다. 사방지(舍方知)는 세종의 부마인 연창위(延昌尉) 안맹담(安孟聃) 집안의 사노비였다. 안맹담은 관찰사(觀察使) 안망지(安望之)의 아들이다. 세종이 아끼던 둘째 딸 정의공주(貞懿公主)와 혼인한 뒤 장인 세종의 사랑을 받았지만 평소 술을 너무 좋아한 탓에 1462년(세조 8년) 술병으로 죽었다. 일설에 따르면 정의공주는 어렸을 때부터 매우 총명해서 아버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러 대신들이 풀지 못한 사투리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불경을 언해하고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기도 하고, 문수사(文殊寺)를 중창하였다. 이런 막강한 가문의 사노비로 태어난 사방지는 기이하게도 음양인이었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사방지는 유전적으로 특이한 신체였는데, 남성과 여성의 외부생식기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남성생식기와 항문 사이에 여성생식기를 갖추고 있었다. 당시는 인간 염색체 구분을 할 수 없던 시절이고, 외과적 수술 또한 불가능하던 시절이라 사방지의 어머니는 이런 사방지를 딸로 키우기로 결심했나 보다. 자식의 본색을 숨기기고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 옷을 입히고, 얼굴에 연지와 분을 발라주었다. 또한 바느질을 가르치고, 부엌 일도 가르쳐서 완벽한 여자로 키웠다. 더구나 사방지는 자라면서 얼굴에 수염도 나지 않고 가슴도 여성처럼 발육이 되고, 남성의 생기기 또한 같이 장대하게 발육되었나 보다. 사방지는 얼굴도 예쁘고 바느질 솜씨도 아주 훌륭하여 남자들의 출입이 제한된 양가의 규방을 거리낌 없이 드나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홀몸이 된 과부들을 유혹해 무수히 통정했지만 겉모습과 행실이 완전한 여자였으므로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았다. 양가집 여성들의 바깥나들이가 제한되고 특히 과부들의 개가(改嫁)는 점차 불가능하게 되던 시절이었으므로 어쩌면 사방지의 신분과 외모는 그들과 밀통(密通) 하기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사방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사대부 집안의 홀로 된 여인이나 여자 노비랑 은밀한 향락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나이를 먹어 가면 상전(上典)이 혼기가 찼다는 이유로 남자노비와 결혼을 시키면 큰일이었다. 그러면 첫날밤에 당장 자신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고, 이제까지 드나들던 양갓집의 여인들과의 관계가 들통이 나서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궁리 끝에 불교에 독실했던 상전 정의공주의 허락을 받아 동대문 밖에 있는 비구니 절인 정업원(淨業院)에 들어가 비구니 행세를 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부뚜막을 그냥 지나칠까.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남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여색을 탐닉하던 그녀(女) 아니 그남(男)이 아무리 머리를 깎고 비구니인 척하더라고 그 본심은 어쩌지 못한다. 더구나 비구니들과 함께 같은 방에서 기거를 하니 일이 안 생길 수 없었다. 그는 그 절에서 비구니 중비(仲非)와 지원(智遠), 소녀(小女) 등과 통정하기에 이른다. 완전히 물을 만난 고기 신세다. 비구니 신분인 중비가 임신이 두려워 걱정하자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안심시켰다. “내가 일찍부터 양갓집 규방을 넘나들면 여종이나 과부들과 간통을 많이 했는데, 임신한 사람은 없었다. 특히 내수(內竪 : 내시內侍) 김연(金衍)의 처와 간통한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는데 잉태하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그런데, 그가 말한 김연의 처는 중비의 고모였다. 고모와 상당기간 정을 통했다는 말을 들은 중비는 양심의 가책으로 사방지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평소 이 절을 드나들던 선비 김구석(金龜石)의 미망인 이씨(李氏)에게 그를 소개했다. 이씨는 중비로부터 사방지에 대한 소상한 이야기를 듣고 반색하며 그를 집안의 침모(針母)로 받아들였다. 당시 그녀는 두 자녀를 출가시킨 뒤였지만 당시 조혼(早婚) 관습 탓에 아직 여자로서의 본능은 꺼지지 않은 활화산(活火山)이었나 보다. 당시 이씨는 경복궁 약간 남서쪽인 여경방(餘慶坊)에 살았는데, 집안이 그야말로 빵빵하였다. 세종대(世宗代)에 과학자로서 장영실(蔣英實), 이천(李蕆)과 함께 명성을 날린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의 딸이었다. 그는 세종 때 문과 친시(親試)에 을과 1위로 등과 하여 관직은 종1품 판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천문과 역법(曆法)에 뛰어나서 한양의 위도를 알아냈다. 세종의 신임을 받아 명나라 역법의 문제점에서 벗어나는 조선 고유의 역법인 《칠정산내외편》을 편찬했고, 이에 따라 조선 지리에 맞는 천체의 운행을 계산했다. 세종의 신임이 두터워서 세조 또한 그를 무척 존중해 주었다. 친정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시집도 남편 김구석이 일찍 타계를 하였지만 아들인 김유악(金由岳)은 당시 재상인 하동군(河東君) 정인지(鄭麟趾)의 딸과 혼인하여 재상의 사위였다. 정인지는 아들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가 임금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혼인하여 사돈 간이다. 그러니 이씨는 정인지와 사돈이고, 그를 통하여 임금과도 사돈의 사돈이다. 이런 공신반열의 대신(大臣)의 딸이 오늘의 주인공 사방지와 이리저리 다리가 얽히고 몸이 설키게 된 것이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이씨는 절에서 환속한 사방지를 침모로 철저히 위장한 채 10여 년 동안 밤마다 행복한 부부로 살았다.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드러나고, 비밀은 내부에서부터 새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세간에는 두 사람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던 것이다. 김 대감 댁 큰마님이 침모를 남편처럼 지극하게 떠받든다는 소문도 있고, 늘 한 방에서 지내며 식사도 늘 겸상을 해서 같이 하고, 비싼 패물도 갖추어 주고, 똑같은 옷을 지어 입는 다는 소문이 난 것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이씨와 사방지의 추문(醜聞)이 급기야 포도청에까지 알려졌다. 반가(班家)의 미망인이 여종과 다정하게 지낸다는 것은 과거 문종이 세자 시절에 세자빈 순빈(純嬪) 봉씨(奉氏)의 경우처럼 여자 동성애인 대식(大食)의 혐의가 되는 것이다. 암암리에 두 사람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던 포교는 용의자 이씨가 판중추원사 이순지의 딸인 데다 하동부원군 정인지의 사돈마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기겁하며 사건을 감찰기관인 사헌부에 이첩해 버렸다. 그래서 이 사건이 조선왕조실록을 열대여섯 번 장식하게 되는 것이다. 1462년 세조 8년 사헌부 장령(掌令) 신송주(申松舟 : 신숙주의 동생)에게 고변(告變)이 접수되었다. 고변 내용은 여경방(餘慶坊)에 사는 선비 김석구의 집에서 부리는 노비 사방지(舍方知)가 여복을 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또한 듣기로는 사방지는 서서 소변을 보고 음경(陰莖)과 음낭(陰囊)이 있는 남자인데 여장을 하고 다니니 그 행적이 괴이하여 사헌부에서 잡아다가 내막을 밝히라는 것이었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사헌부 감찰은 은밀히 사방지의 전력을 탐문한 끝에 그와 간통했던 비구니 중비를 잡아들여 사방지에 대하여 물었다. 장대한 양물(陽物)을 가졌다는 중비의 증언을 들었지만 증거를 완벽하게 하려고 사방지를 잡아들였다. 신송주가 추가 고신(拷訊 : 심문)을 하려고 세조에게 보고하니, 세조가 사헌부는 손을 떼고 승정원(承政院)에게 맡기면서 사위인 정인지의 아들 정현조에게 조사를 시켰다. 아마 이씨 집안 혼인관계가 공신들과 엮여있었기 때문에 적당히 처리하려는 심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사건을 맡은 정현조 입장에서도 누이의 시어머니인 사돈댁이 연관된 일이라서 곤혹스러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조사를 하는데, 여인의 복색을 한 그가 겉보기에 대단한 미녀이라서 여의 반덕(班德)에게 검사(檢査)를 맡겼다. 머리의 장식과 복색은 여자였으나 형상과 음경(陰莖) 음낭(陰囊)은 갖추었는데, 다만 정도(精道 : 정자가 나오는 길)가 경두(莖頭) 아래에 있어서 반음양(半陰陽) 즉 이의(二儀)였다. 말하자면 정상인이 아닌 환자라는 보고를 임금에게 한 것이다. 그러자 세조는 괜한 일을 함부로 조사하여 공신 가문과 임금인 본인과도 전혀 무관하지 않은 집안 문제를 들추어냈다고 조사에 가담한 사헌부 관리들을 파직해 버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이 당대표인 자기를 수사한다고 검찰을 탄핵한 것이나 비슷하다. 조사를 담당한 영순군(永順君) 이부(李溥)와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 등이 조사한 결과 물건이 그리도 장대하다고 보고하니 임금도 웃고, 공신인 이순지의 가문을 더럽힐 염려도 있고, 쿠데타 정권의 추문으로 번질까 우려되어 서둘러 덮는다. 정상인이 아닌 병자인 사방지를 주인인 이순지에게 넘겨주어 처리토록 한 것이다. 이순지는 다만 사방지에게 곤장 10여 대만을 치고 기내(畿內 : 경기도 내)에 있는 외거 노비의 집으로 보냈다. 이순지도 파직하고 사헌부 관리들도 파직했지만 사건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사방지의 국문을 청하는 상소를 올리는 신하들이 있었으나 세조는 계속 뭉개고 있었다.

<당시 이순지의 혼맥도><당시 이순지의 혼맥도>

세월이 흐르면서 국문을 주장하던 측들도 약간 수그러 들고, 이씨의 아비인 이순지도 사망하게 된다. 그러자 드디어 딸 이씨의 행각이 다시 발동되었다. 원래 여자의 사랑보다 육정(肉情)이 더 질긴 것이다. 한번 맛 들인 육정을 끊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닌가 보다. 김귀남의 처 이씨(李氏)는 친척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온천(溫泉)에 목욕하러 간다하고는 몰래 사방지를 만나러 가기도 했다. 마침내 아비 이순지가 죽자 뭐라 그럴 사람도 없으니 다시 사방지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아무리 몰래 불러와도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한양에 소문이 짜하게 나자, 신숙주와 훙윤성(洪允成), 서거정(徐居正) 등 세조의 신임을 받던 신하들이 사방지를 죽이던가 멀리 외방(外方)의 공노비로 보내자고 건의하였다. 세조도 어쩔 수 없이 사방지를 충청도 신창현(新昌縣)의 공노비로 보내고, 수령으로 하여금 잘 감시하여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조치했다. 사노비를 빼앗아 공노비로 만들었으니 주인인 이씨에게는 노비 한 명을 보충해 주는 조건이었다. 이씨의 몰래한 사랑은 이것으로 끝이 났지만, 훗날 이씨의 아들 김유악(金由岳)이 경상도 도사(慶尙道都事)의 벼슬을 받는데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어미가 간통한 사람을 도사(都事)로 제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신하들이 반발하여 결국 부임하지 못했고, 음탕하고 방탕했던 연산군(燕山君) 조차도 부마를 고를 때 김유악의 아들을 명단에서 제외했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이러한 사방지의 이야기에 대하여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두 수의 시를 지어 남겼다. 그 첫 수(首)가 이렇다.

縫羅深處幾潛身(봉라심처기잠신) / 비단옷 깊숙한 곳에 몸 숨긴 지 몇 해인가

脫却裙釵便露眞(탈각군채편로진) / 치마 비녀 벗기니 바로 참모습 드러났네.

造物從來容變幻(조물종래용변환) / 예로부터 조물주는 얼굴을 어지럽게 변하니

世間還有二儀人(세간환유이의인) / 세상에 도리어 음양인도 있구나.

다음 수는 이렇다.

男女何煩問産婆(남녀하번문산파) / 아들딸 어찌 번거로이 산파에게 물을까

妖狐穴地敗人家(요호혈지패인가) / 요망한 여우굴이 남의 집을 망쳤다오.

街頭喧誦河間傳(가두훤송하간전) / 길가에서는 하간전을 시끄러이 외워대고

閨裏悲歌楊白華(규리비가양백화) / 규방 안에서는 양백화를 슬피 노래하네.

☆ 하간전(河間傳) : 하간의 지역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정악(正樂)을 말한다.

☆ 양백화(楊白華) : 위(魏) 나라 양화(楊華)는 명장인 대안(大眼)의 아들로 용감하고 모습이 헌걸차서 호태후(胡太后)가 그와 밀통을 했다. 처벌이 두려워 그가 양(梁) 나라로 달아나자 태후가 그를 그리워 양백화가를 지어서 궁녀들에게 부르게 했다고 하는데, 남녀의 정을 노래한 것이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또 다른 양성 인간이 있다. 명종(明宗) 3년[1548, 무신. 명 가정(明嘉靖) 27년] 11월 18일 기록에 따르면, 함경 감사의 장계에 따라 양성(兩性) 인간 임성구지를 외진 곳에 살게 하였다. 함경 감사의 장계에는 “길주(吉州) 사람 임성구지(林性仇之)는 양의(兩儀)가 모두 갖추어져 지아비에게 시집도 가고, 아내에게 장가도 들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하였다. 전교하기를, “임성구지의 일은 율문(律文)에도 그러한 조문은 없으니 대신에게 의논하라. 성종조(成宗朝)에 사방지(舍方知)를 어떻게 처리하였는지 아울러 문의하라.”하였다. 영의정 홍언필이 의논드리기를, “임성구지의 이의(二儀)가 다 갖추어짐은 물괴(物怪)의 심한 것이니, 사방지의 예에 의하여 그윽하고 외진 곳에 따로 두고 왕래를 금지하여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하니, 임금이 따랐다. 며칠 후 사간원에서 또 임성구지를 죽이라고 했으나 불허했다. 간원이 아뢰기를, “길주(吉州) 수인(囚人) 임성구지는 아내를 거느리며 지아비에게 출가도 하여 인도(人道)를 양용(兩用) 하였으니, 실지로 천지 간에 요사하고 음예(淫穢)한 요물입니다. 《강호기문(江湖記聞)》을 상고하니, 이와 같은 사람은 인도(人道)의 올바름을 문란하게 한다고 하여 죽였으니, 진실로 하루라도 인류에 섞어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임성구지는 무격(巫覡)을 핑계하여 남자 의복, 여자 의복으로 변환(變幻)하며 남의 가정에 드나들면서 몰래 독란(瀆亂)함을 행하여 성스러운 교화를 더럽혔으니 죄악이 이미 지극합니다. 사형으로 단죄하소서.”하니, 답하기를, “임성구지는 괴이한 물건이지마는 다만 인간의 목숨이 지중하니 그윽하고 외진 곳에 두어 인류에 섞이지 못하게 하고 구태여 중전(重典)을 쓸 것까지는 없다.”하였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1545년 스페인 안달루시아에서 남녀양성인 엘레노가 태어났고, 부모님은 그에게 '엘레나'라고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페로 에르난데스라는 유럽 기독교인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프란시스카 데 메디나라는 유색인종 노예 무슬림 여성이었다. 그녀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가혹한 대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노예로 태어났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뺨에 낙인을 찍혔다. 15세에 엘레노는 남자와 결혼했고, 그 해에 아이를 낳았다. 이것만으로는 그녀는 분명 여성이었다. 출산이 엘레노의 신체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출산하는 동안 그녀에게 남성의 성기인 페니스가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후, 엘레노는 여성과 사귀기 시작했고, 스페인을 여행하며 재단사, 농장 노동자, 양치기로 일했다. 그는 남자로서 군대에 입대하여 마드리드에서 외과의가 되었다. 만약 엘레노가 실제로 여성이었다고 가정한다면, 유럽 역사상 최초의 여성 전문 외과의가 되었을 것이다. 엘레노가 30대 후반이었을 때, 그는 20대 초반의 여성인 마리아 델 카뇨를 만났다. 엘레노가 청혼했을 때 마리아는 수락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목사는 엘레노의 얼굴에 털이 없는 것이 의심스러웠고, 엘레노가 환관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엘레노를 네 명의 남자(그중 한 명은 의사)에게 검사받아 성별을 확인하라고 했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정확하지는 않지만 엘레노는 검사를 할 때 다리를 오므리고, 그렇게 해서 음경과 고환 뒤에 있는 여성의 성기인 질을 숨겼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네 명의 남자가 모두 엘레노가 환관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라고 증언했고, 두 사람은 결혼을 허락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교회에서 그들의 결혼 예고가 발표되었을 때, 몇몇 교구민들은 엘레노가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둘 다라는 이유로 결혼에 반대했다. 목사는 첫 번째와 같은 의사인 프란시스코 디아스 박사가 실시하는 두 번째, 더 철저한 검사를 명령했다. 의사에 따르면 엘레노는 음경, 고환, 고환과 항문 사이에 질 구멍이라고 믿었던 주름이 있었다. 그들은 결혼 내내 주변인들이나 교회로부터 시달렸고, 수차례의 검사를 받는 경험도 했다. 엘레노는 간헐적으로 월경을 하기도 하면서 여자와 결혼 생활을 이어 가면서 그 월경혈의 흔적을 승마를 하면서 치질로 인하여 피가 흐른다고 둘러댔다고 한다. 종교 재판으로 마녀판정을 ㅎ받기도 했지만 양성인간으로 판정되면서 채찍 200대를 맞고 10년간 구금되기도 했다. 그 기간 중에도 그는 외과의사로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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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인간 즉 자웅동체(雌雄同體)를 허마프로다이트(Hermaphrodite)라고도 한다. 양성인간의 원조는 고대 그리스 로마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미의 여신으로 꼽히는 아프로디테가 역시 잘 생긴 미남인 헤르메스와 바람을 피워 낳은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최고로 잘 생긴 완벽한 여자와 남자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바로 헤르마프로디토스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인간 모델이다. 그는 원래 남자로 태어났다. 그러나 열다섯 살이 되던 어느 날 호수의 요정 살마키스의 유혹을 받는다. 그는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쳤다. 그러나 뒤쫓아온 살마키스에 결국 이끌려 호수로 들어가게 된다. 헤르마프로디토스를 움직이지 못하게 꼭 껴안은 살마키스는 둘을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잠시 후 둘의 육체가 정말로 하나가 되어 버린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미소년이 여성에게 강간을 당해 낳은 사람이 바로 헤르마프로디토스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남녀양성을 타고나는 사람은 의학적 확률적으로 1.7% 정도란다. 호주, 뉴질랜드, 네팔, 인도, 캐나다,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남녀가 아닌 제3의 성으로 여권이나 주민등록에 표시하는 제도가 열려있는 경우도 있다.

<영화 사방지 한 장면><영화 사방지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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