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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닮다 Oct 17. 2022

19. 그럴 수 있다.

누구에게 조언을 해 줄만큼 올곧게 살아온 사람도 아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부끼고 흔들리며 살아온 인생이다. 옆에서 누가 붙들면 붙드는 대로 서 있다가, 때론 그마저 지겨워 나를 필요로 한 누군가에게서 훌쩍 떠나버린 이기적인 삶이기도 했다.

 때론 내가 어른인 것 같아 근본 없는 충고를 할 때도 있었고 거울에 나를 비춰보기보단 그 거울 뒤를 받치고 서서 상대를 비추었다. 누군가를 비춰주는, 그림자 같은 거울이었다기보단 나 자신도 바로 보지 못하면서 '너 자신을 똑바로 보라'는 건방진 자만의 거울이었다.  

 나는 나를 바로 보는 데까지 정확히 32년 8개월이 걸렸다. 한국 나이로 따지면 34세이나 정확히 따지자면 나는 서른셋이고 내 생애는 이제 33년 9개월째이다. 내가 나를 똑바로 본 지 고작 1년 1개월이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3년의 생애 중 내가 나를 알게 된 게 고작 1년 1개월, 훗날 마흔셋이 된 내가 알게 된 나도 고작 11년이 조금 넘을 것이다. 내가 살아온 생애 중 절반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알게 된 나는 그럼 지난 세월 나의 몸을 하고 누구를 끌어안고 산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부질없는 생각.


 '내가 이걸 잘하면 예뻐해 주겠지.'

 '내가 이렇게 하면 나를 사랑해주겠지.'

 '나를 어떻게 해야 안아줄까.'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동안에도 나는 내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비록 사랑이라는 대가를 바라고 행한 행동들이었고, 그래서 진짜 나다운 행동보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이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내가 아닌 것은 아니다. 그때의 나는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던 아이였고 그 사랑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행동을 선택한 것도 그때의 내가 판단한 일이었다. 아이였기에 어설펐지만, 아이라서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일들, 나는 그때 그 아이를 끌어안았다.


 "이제 그만, 그만해도 돼 아가."


 아이가 천천히 뒤를 돌았다. 일곱 살의 나였고, 열여섯의 나였고, 열여덟, 스물한 살의 나였다. 그 앳된 얼굴이 고개를 내게로 돌리는 1초마다의 장면 하나하나가 파노라마처럼, 일곱 살의 얼굴에서 스물한 살의 얼굴로 천천히 시간을 삼키고 있었다. 눈을 깜빡거릴 때마다 반짝이던 일곱 살의 눈망울에 서서히 눈물이 들어찼다. 아홉 살이 된 내 아이의 눈에서 이십 년 전 나의 눈빛을 보는 것만 같아서 너무 괴로웠고 그 괴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나를 통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들쑤셔 헤집어 놓았던 모든 시간을 이제야 보내려고 한다고 이야기했다.


 '이제 너를 보내. 내 안에 가장 깊은 상처로 남은 너를, 이제야.. 보내려고 해.'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조손가정, 한부모가정, 재혼가정, 무당의 손녀, 내가 겪은 나의 유년과 내 아이의 유년은 어느 것 하나 닮은 점이 없음에도 내 아이가 나의 눈빛을 닮은 이유는 하나뿐이다. 나.

 무미건조한 말투, 그에 반해 예민한 성격, 모든 것이 무의미한 눈빛, 얼마의 시간 차를 두고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은 내 아이마저 극도로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결정을 해야 했다. 그간의 소란스러웠던 나의 불안에 여과 없이 노출된 내 큰 아이를 위해 조용히 나의 상처를 봉합해야 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꿰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 살이 나지 않은 상처를 억지로 꿰매면 어차피 다시 벌어질 것이다. 그땐 이 불안의 소란이 얼마나 장기전으로 이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우울의 앞에서 절주는 무의미했다. 술을 완전히 끊겠다 마음먹은 뒤 한 달여가 지났을 때쯤,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 블로그에 '나의 아저씨' 리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어른이 된 지금의 나를 '동훈'으로, 열다섯의 나를 '지안'으로 여기기로 했다.

 나는 완벽한 동훈이 될 수도, 완벽한 지안일 수도 없었지만 삶에 지친 어른과 아이라는 것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밤마다 헤드폰을 쓰고 대사를 완벽하게 옮기기 위해, 감정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묘사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나는 어쩌면 이 블로그에 찾아와 리뷰를 읽어줄 사람들보다 내 안의 '동훈'과 '지안'을 위로하기 위해 그 리뷰를 썼는지도 모른다. 내게는 위로가 절실히 필요했고 상처를 봉합해 줄 마땅한 도구가 필요했다. 내 속을 모두 까뒤집고 펑펑 울며 위로받을 어른이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동훈처럼 위로해 줄 사람이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내가 나를 위로하는 수밖에.

 사실 이건 나 아니면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기 연민'은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아주 어렵고도 간단한 위로.


 "미주야, 애썼어.. 네가 왜 그렇게나 애썼는지 알아. 이제 그만 슬퍼해도 돼, 이제 그만 자책해도 돼."


 '나의 아저씨' 리뷰를 쓰며 티브이로 보고 들었던 대사들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듣게 됐고, 나는 자연스레 그 모든 대사들을 나에게 대입시켰다. 열여섯의 나에겐,


 [모른 척해줄게. 너에 대해서 무슨 얘길 들어도 모른 척해줄게. 아무도 모르면 돼. 그럼 아무 일도 아니야.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나의 아저씨' 6화 중 동훈의 대사]


 아무도 모르게 하고 싶었던 재혼가정, 무당의 손녀라는 사실이 모두 까발려져 버렸던 나의 열여섯에게 이 대사를 던져 넣었고, 나와 아빠에게 남아있는 모든 돈을 다 가져가 버리고 십 수년간 내 자존감을 자근자근 밟고 떠난 그 여자의 그림자를 쫓던 스물다섯의 나에겐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 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 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게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나의 아저씨 8화 중 동훈의 대사]


 모든 것을 믿고 맡겼고 자존감 따위 짓밟혀도 겨우 그까짓 단 한 번의 관심이 좋았던 내게, 내 인생의 내력이 되었던 당신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떠난 뒤 길거리에 주저앉아 온 몸이 부서져라 가슴 치며 울었던 스물다섯의 나에게 던져 넣었다.

 와 재밌다 정도였던 드라마를 한 번 다시 볼 땐, 이런 장면이 있었구나 싶고 또다시 볼 땐 또 다른 새로운 장면이 마음을 울리고 그다음부턴 재생되는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모든 순간이 다 인상 깊게 남는다.

 마음에 한 번 새겨 넣은 문장들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상처를 주고 간 사람은 그 사람대로, 내게 위로가 되어준 사람은 위로가 되어준 대로. 가만히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사람은 그날 내 곁에 앉아있던 자세조차 잊히지가 않는다. 그날의 풍경, 시간, 날씨, 심지어 향기까지도.

 과거의 나에게 몇 가지 위로들을 던져 넣고 나는 잠시 눈을 는다. 늘 흐릿하던 기억들이 그때만큼은 아주 또렷한 그림체로 나타나곤 했다. 그러면 어른이 된 지금의 내가 어느 날은 울고 있고, 어느 날은 분노하고 있는 어린 나에게 다가가 슬며시 곁에 앉았다.

 

 "..."


 분명 인기척이 들렸을 텐데 어린 나는 무릎에 고개를 파묻은 채 고개를 들지 않거나 분을 참지 못해 결국 또 눈물을 터트리곤 했다. 분노도 결국엔 서러움이 되어 눈물로 터져 나왔다.

 

 "괜찮아, 다 괜찮아. 네가 필요했던 사랑, 내가 다 줄게. 너 다 줄게. 너한테 나눠도 나는 아직 충분해."


 내가 지금 나의 가족들에게 받고 있는 사랑을 내 안의 아이에게 나눈다고 해서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란 걸, 나는 알고 있다. 어느 영화처럼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줄줄 새어 나오는 밑 빠진 항아리가 아니라 우물 안에 항아리를 집어넣고 분 넘치게 차오르는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고 넘어지기 전에 일으켜 주고 외로워하기 전에 곁을 내주는 사랑하는 내 남편과 아이들 덕에 나는 다시 쓰러져도 잠시 아파하다 금세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믿게 해 주었다.

 그들은 단지 휘청이는 나를 받치고 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 스스로 설 수 있다, 너는 강한 사람이다,라고 나 스스로를 믿게 해 주었다.


 "엄마는 대단한 사람이야."

 "미주야, 너는 강한 사람이야.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어."

 

 그래, 나는 그럴 수 있어.

 '할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보다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꾸준히 불어넣어 주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랑을 받았고, 내 아이와 내 남편에게도 그런 믿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너는 그럴 수 있어.

 너는 쓰러질 수도 있고, 넘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까 너는 다시 일어설 수도 있어. 그럴 수 있어.

 '그럴 수'라는 미지수의 말이 너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그것이 설령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도 너는 그렇기에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너는 그럴 수 있으니까.

 당신의 삶에 기준이 되어주는 좋은 글귀와 당신 주위에 단 한 사람만으로도, 그 사람의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두 가지만으로도 당신은 일어설 수 있다.

 나도 해낸 것을 당신이 못할 리 없으니까. 당신은 그럴 수 있다.



 



 저는 이제 이 길고 긴 제 이야기를 끝내려고 합니다.

 대신 저와 제 아이의 이야기, 그러니까 제 육아 이야기를 조금 공유해볼까 합니다. 여전히 저와 제 아이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으며 언제 끝날 런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아이는 현재 충동조절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약물이고 늘 아침 일찍 복용을 합니다. 학교와 병원, 미술심리치료센터와 꾸준히 상의를 하며 학교에서의 행동을 관찰하고 경과를 지켜보며 아이를 보살피는 중입니다. 여전히 규칙 지키는 것을 조금 어려워합니다만 이젠 수업시간에 돌아다니거나 다른 아이들을 방해하는 일은 90% 이상 줄었다고 합니다. 단, 아이의 심리상태는 규율을 지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이기에 심리상담도 함께 병행 중입니다. 충동적 욕구를 가라앉히고 나면 소심하고 '나는 못해'라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기에 이 부분은 따로 심리치료 중에 있습니다.

 곧 육아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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