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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열매 Jun 13. 2024

"밥이 나와, 떡이 나와 왜 써?"

나에게 글은 초록색 비상구이다

@father7576 열매 그림일기


술이 좋았다.

20대 그 시절

시원한 맥주가 너무 맛났.

노는 건 더 좋았다.

얼마나 술 먹고 노는 게 좋았는지 나는 처음 만드는 아이디에

꼭 술 글자를 넣고 싶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은 듯 sul은 이미 사용 중이었고 나는 sul에 l을 하나 더 넣고

숫자 3을 붙였다.


sull3


술자리는 3차는 기본이니까.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첫 다음 주소는

sull3@hanmail.net이다.

그렇게 20대을 보내고 20대 후반에도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성당을 가끔 다녔고 정신세계는 불교에 가까웠고 교회는 싫었다.

편협하고 세속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를 따라간 교회에서 설교를

듣다가 말할 수 없는 위로와 평안을 느꼈다.

달랐다.

그동안 듣고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달라졌다 술은 계속 먹었으나

나는 달라졌다.

인생의 가장 큰 변화가 20대 후반에 나에게 찾아왔다.

나에게 든든한 분이 생겼다.

나는 아이디를 새로 만들었다.


father7576


나의 아빠

지금 나의 아이디는 father7576이다.


머스터드소스


그 노란색이 맘에 들었다.

어디쯤에 있는 노랑일까....

조금은 섞인 듯 여유가 느껴지는 30대의 노랑

그 맛도 좋았다.

적당히 새콤하고 코를 콩 치는 그 맛

그래서 나는 별칭을 머스터드소스로 정했다.


열매


32살 나는 결혼을 했고 딸이 생겼다.

큰 딸이 5살이 된 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며 나는 별칭을 새로 만들었다.

짧은 인생 어찌 살아야 할까....

첫째 딸을 낳고 두 번의 유산을 겪으며,

둘째 아이도 갖고 싶었고 성경에 나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살고 싶었다.

별칭을 열매라 지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아리고 신 쓰디쓴 열매가 맺히는 때가 많았다.


그 시간들을 잘 지나게 해 준  그림일기였다.

그림을 그리고 짧게 끄적인 글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나에게 건네는 위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글로 쓰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은

그림으로 그렸다.

그렇게 18년이 지나갔고

 나는 비록 짧은 글이지만  계속 썼다.

그 덕분에 2021년 생애 첫 창작 그림책을 낼 수 있었다.

제목은 [구멍]

필명은 열매

2년 동안 파고 또 파고

그리고 또 그렸다.

45살 나의 생일날

그림책 향에서  출간했다.



호두 열매


가끔 달고

대부분 시고 아린 열매를 보며

나는  나를 지키고 싶었다.

잘하는 것 하며 ,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며

글을 통해 나를 보며

단단한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단단함 하면 떠오르는 호두

브런치작가명은

호두 열매로 했다.



나는 왜 글을 쓰며 살고자 하는가?

나에게 글은 초록색 비상구이다.

답답하고 막막할 때 원망 대신 짧은 글이라도 끄적이다 보면

어느새 답 없는 늪에서 빠져나와 있는 나를 본다.


그래서 글을 쓴다.

엉망진창에

되지 않는 말이라도

나는 쓴다.

우선은 써 본다.

나의 마음속 아우성을 글로 써 본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본다.


그러면 글은 나에게 말을 건네고 손을 내민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쓴다.




토닥 한 줄

이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세 가지를
할 수 있어야만 하지.
유한한 생명을 사랑하기,
자신의 삶이 그것에 달려 있음을
알고 그걸 끌어안기,
그리고 놓아줄 때가 되면  놓아주기.

                                    -메리 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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