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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Feb 26. 2024

주제 : 자연에서 얻은 평화

미션 : 중요하지 않은 세부사항 지우기



"사춘기가 무슨 벼슬이야?"

 입 밖으로 나오기 전, 급하게 꾹 참아본다.


입술은 뾰족하게 모으고 내 눈길은 피한다. 그게 요즘 우리 첫째가 나를 보는 표정이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을 보던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내 나이 마흔 중반을 넘고 보니 가끔은 확인해 보고 싶긴 했다. 갱년기와 사춘기가 격돌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직은 내 이성이 살아남아 있어 큰 전쟁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소소한 다툼은 언제 시작될지 모를 시한폭탄 같다. 어떤 날은 무사히 넘어가던 말이 또 다른 날은 폭발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럴 땐, 더 이상 말을 이으면 큰일 난다.

"마음에 안 든다고 예의 없게 행동해도 되는 건 아니야."

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나는 유유히 밖으로 나간다.

엄청 있어 보이는 행동 같지만, 속으론 바들바들 떨면서 한마디 한 거다.

'이 말마저 받아치면 이 녀석을 어쩌지.' 하는 걱정되는 마음을 숨긴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 나.

사춘기를 수월하게 지났다는 아기 엄마들에게 진심 묻고 싶다. 그 노하우를!!


호기롭게 나왔지만 딱히 갈 곳이 없었다. 커피숍으로 가기엔 기분이 별로다. 누구처럼 차가 있으면 차에서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었다.

마음껏 고함지를 수 있는 곳을 찾다 우연히 가게 된 곳이 아파트 뒷산이었다.

시멘트를 부어 길을 닦은 초입부에 도착하자마자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흙냄새와 풀냄새를 담은 바람이 슬쩍 불어왔다. 눈을 감고 잠시 멈춰 섰다. 음~~


바람이 온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랐고, 금세 숨이 차올랐다. 얼마나 안 움직였으면 벌써 숨차냐며 다이어트 생각을 시작했다.

오르다 보니 땀이 났다. 하필 면티가 아니라 니트티를 입고 온 나. 손빨래할 생각에 염좌 있는 내 손가락들이 걱정이었다.

오르다 보니 엄청 두껍고 큰 훌라후프가 있었다.

"아니, 이렇게 큰 훌라후프를 누가 해??"

혼잣말을 너무 크게 해 버렸던 모양이다. 등산복을 풀 장착한 할머니가 "내가 하지." 하는 통에 웃음이 빵 터졌다.

할머니도 덩달아 웃으셨고 두 팔을 번쩍 들고 휙휙 돌리는 훌라후프를 보니 내 몸도 휘청이는 기분이었다.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벌써 정산에 도착했던 나.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눈앞에 펼쳐진 크고 작은 건물들이 가득한 동네 풍경, 그 뒤로 보이는 파란 바다.

걸으며 했던 모든 걱정과 고민들이 싹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고함지를 곳을 찾다 올라온 뒷산.

"야호" 한 번 외치면서 화났던 마음도 싹 털고 오려했던 생각까지 싹 잊게 됐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산. 난 그저 오르기만 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그런 산이 되어주어야겠다고.

아이가 자라느라 힘들 때 든든하게 버텨주는 산이 되겠다고.

큰 애가 미워죽을 거 같아 오른 산이었다. 그 산에서 나는 스승을 만났다.



자연에서 얻은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사춘기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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