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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븐클라우드 May 14. 2022

밤의 카페테라스 13

13. 어디선가 밤의 카페테라스

  가을이 다 지나도록 카페에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겨울이 되어서도, 눈이 내리고 내린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될 때까지도, 새해가 되어서도 가지 못했다. 조금씩 눈이 녹아 땅이 질척거릴 즈음에야 개학하기 전에 카페에 한 번 가볼까 결심하게 되었다. 알람을 맞춰 놓고 5분 간격으로 울리게 다시 설정해두고, 겨우겨우 4시 반에 일어났다. 옷을 겹겹이 껴입었지만 새벽의 냉기가 목덜미에 파고들어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큰 도로를 따라 걷다가 길을 건너 골목 사이로 접어들었다. 오른쪽으로 다시 왼쪽으로 꺾고 마지막 모퉁이를 돌았는데…… 카페가 없었다.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들어서 있었다. 유리창 가득 신제품 치킨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문 앞에는 여배우가 맥주잔을 들고 윙크하는 대형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다. 가게는 캄캄했고 골목도 어두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왠지 이럴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내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나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카페가 없어진 걸까. 어쩌면 내가 카페에 들르지 않았던 지난 가을에 이미 치킨집으로 바뀌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이 가게도 영훈이 형수가 하는 걸까. 그럼 영훈이는 이제 형수랑 집에서 마주치게 된 건가, 아님 따로 나가 살게 된 걸까. 설마 치킨을 시키면 영훈이가 배달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영훈이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 알았어도 새삼스럽게 전화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조금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매일 카페에서 밤을 보내는 대학생과 노숙자 여자는 이제 어디에서 밤을 보낼까. 아침마다 카페에 들르던 경찰관은 이제 신기하다는 듯 가게 안을 둘러볼 일은 없겠네. 한참 치킨집 앞에 서성거리다가 발길을 돌렸다.      


  한동안 매일 같이 들르던 카페였지만 생각만큼 아쉽거나 쓸쓸하지는 않았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덤덤했다. 이제 더 이상 새벽에 잠을 깨는 일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또다시 어느 날, 새벽 4시에 잠이 깨고 어떻게 해도 다시 잠들 수 없는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또다시 우주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막막하고, 끝없는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하는 것 같은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마치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가슴을 쥐어뜯으며 비통해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쉽게 낙관할 수는 없다. 섣불리 안심할 수도 없다. 다만 막연한 기대랄까, 믿음이 생겼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그렇다고 카페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는 생각.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있어서 단지 지금 눈에 띄지 않을 뿐이다. 다시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와서 밤거리를 무작정 헤매다 보면 어디에선가 밤의 카페가 나타날 거다. 캄캄한 어둠 속 얼어붙은 골목길을 걷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노란 색 불을 밝힌 밤의 카페테라스를 발견하게 될 거다. 이 구석에 한 사람, 벽 그늘 아래 또 한 사람, 문간 테이블에 한 사람, 따뜻한 온기 속에서 아침을 기다리는 장면을 마주하게 될 거다. 어쩌면 밤의 카페테라스는 깊은 바다 속 노란 잠수함처럼, 필요한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밤새도록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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