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연민과 용기를 갖춘 사람

영화 <조 블랙의 사랑>, 딸바보 아빠가 전하는 삶, 죽음, 사랑과 이별

by 루이보스J


나이 들면서 부러움의 감정이 희미해졌다.


나보다 똑똑하고, 잘나고, 예쁘고, 부자인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고 그들의 화려한 삶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어떻든, 각자가 안고 있는 삶의 무게가 있기에.


그런데 주체할 수 없이 부러운 것이 하나 있다.


다정한 아빠를 둔 딸들


여전히 아빠와 가끔씩 데이트를 한다는 내 또래 친구들 뿐이 아니다. 딸을 공주 모시듯 하는 지인 얘기는 물론이요, 딸에게 유독 살가운 남편을 보면 흐뭇하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서러움에 가까운 부러움이 마구 솟아난다.


‘좋겠다. 다정한 아빠가 있어서’


아빠는 십 년 전쯤에 뇌졸중으로 돌아가셨다.

내가 성인이 되고 난 후에 돌아가셨지만 따지고 보면 아빠와 보낸 시간은 고작해야 십 년 남짓에 불과하다. 부모님이 맞벌이로 바쁘셨던지라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시골 할아버지 집에서 자랐고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올라온 이후부터는 일 년에 두세 번 본 것이 전부였다.

안부 전화도 거의 엄마랑 했고 아빠는 그때마다 고정 배경음처럼 “뭐래? 잘 있대?”를 반복했다.


아빠에 대한 기억은 듬성듬성 섬광처럼 떠오르는 꿈처럼 몇 가지 장면으로만 남아있다.


할아버지 뒤로 몸을 숨기던 대여섯 살 딸내미를 향해 손을 뻗던 젊은 아빠,

<동물의 왕국>을 즐겨보시던 모습,

아직 핏물이 선연한 살짝 익힌 꼬막을

게걸스럽게 드시던 모습,

엄마랑 한바탕 다투고 분위기가 싸늘한데도 “짜파게티 좀 끓여줄래?”라고 묻던 얄미운 천연덕스러움,

썰매는 물론 책상까지 뚝딱 만들어내던 야무진 솜씨,

머리칼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시던 모습,

가끔 혹시 혼혈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흰 피부와 갈색빛 눈동자,

소년처럼 순수해 보이면서도 날카롭고 고집스러운 눈매


그리고 병원에서의 마지막 순간…

내 손을 부여잡았던 아빠의 손은 퉁퉁 부어있었고 아직 따뜻했다.


“사랑해요 아빠..”


대답을 할 수 없는 아빠는 눈가에 고인 눈물로 응답했다.


우리를 끔찍하게 예뻐했다던 아빠와의 기억은 거기에서 멈춰있다.


그래서일까?

잊을만하면 나는 <조 블랙의 사랑 (Meet Joe Black)> (1998)을 다시 찾아본다.

영화는 성공한 사업가이자 다정한 아버지 윌리엄과 그를 찾아온 저승사자 조를 통해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을 이야기한다. 설명이 필요 없는 명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멋진 아빠, 브래드 피트가 죽음의 사자 역할로 분한다. 브래트 피트의 최전성기 꽃미모(?)와 우아함이 넘치는 여주인공 클레어 포라니의 아름다운 자태도 빼놓을 수 없는 감상포인트다.

<조 블랙의 사랑>(Meet Joe Black)(1998) 마틴 브레스트 감독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여운이 오래 남는 명대사들이다. 죽음을 앞둔 윌리엄이 딸 수잔(클레어 포라니)과 저승사자 조에게 전하는 사랑과 인생에 대한 메시지는 두고두고 음미하게 된다.


#약혼자와 맹숭맹숭한 것 같은 딸에게

There's not an ounce of excitement.

Not a whisper of a thrill.

This relationship has all the passion of a pair of titmice.

너희 둘 사이엔 아무런 감흥이나 떨림도 없잖니.

어째 열정도 없고 뜨뜻미지근해.

I want you to get swept away out there.

I want you to levitate.

I want you to sing with rapture and dance like a Dervish.

마음껏 사랑해 봐라. 몸이 붕 뜨는 기분일 거야.

네가 기쁨에 겨워 노래하고 춤췄으면 좋겠다.

Be deliriously happy or at least leave yourself open to be.

더없이 행복해야지 아니면 마음이라도 열어두렴.

I know it's a cornball thing,

but love is passion. Obsession.

Someone you can't live without.

고리타분한 소리지만 사랑은 열정이고,

집착이란다.

그 사람 없이는 못 사는 거 그게 사랑이야

I say fall head over heels.

Find someone you can love like crazy,

and who'll love you the same way back.

사랑에 푹 빠지렴. 서로 죽도록 사랑할 그런 사람을 만나렴.

How do you you find 'em?

Well, you forget your head and you listen to your heart.

I'm not hearing any heart.

어떻게 그런 사람을 만나냐고? 머릿속 생각은 잊고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돼.

지금 네 가슴은 두근거리지 않잖니.

Because the truth is, honey,

there's no sense living your life without this.

사실 인생은 사랑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단다.

To make the journey and not fall deeply in love,

well, you haven't lived a life at all.

살면서 깊게 사랑에 빠져본 적 없다면,

제대로 산 것이 아니지.


But you have to try, because if you haven't tried,

you haven't lived.

그러니 노력하렴. 노력해 보지 않았다면,

제대로 살아본 게 아니야.

#딸 수잔을 사랑하게 된 죽음의 사자에게

Susan’s my daughter.She has a wonderful life ahead of her.

You’re gonna deprive her of it,

and you’re telling me you’re sorry? I’m sorry. Apology not accepted.

수잔은 내 딸이고 앞날이 창창해.

그걸 빼앗을 참이니 나한테 미안하다고?

안 됐지만 그 사과는 못 받아주네.


How perfect for you to take whatever you want because it pleases you.

That’s not love.

참 대단하군. 자네가 좋아하니까 원하는 건 다 가지겠다니

그건 사랑이 아니야.


Some aimless infatuation which, for the moment,

you feel like indulging.It’s missing everything that matters.

목적 없는 열병이지. 당장에야 욕구를 채우고 싶겠지만 중요한 건 다 빠졌어.


Trust, responsibility, taking the weight for your choices and feelings,

and spending the rest of your lifeliving up to them,

and, above all, not hurting the object of your love.

믿음, 책임, 선택과 감정을 중시하고 기대에 부응하며 여생을 보내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상처 주지 않는 것


Multiply it by infinity and take it to the depth of forever,

and you will still have barelya glimpse of what I’m talking about.

무한대를 곱하고 영원의 깊이로 가져가봐. 그렇게 해도 내가 한 말이 잘 이해가 안 될 거야.


I loved Susan from the moment she was born,

and love her now and every minute in between.

난 수잔이 태어났던 순간부터한순간도 빠짐없이 그 애를 사랑하고 있어.


And what I dream of is a man who will discover her and

that she will discover a manwho will love her, who is worthy of her,

who is of this world, of this time,


난 수잔한테 진정한 사랑이 나타나길 바라네.

그 애를 사랑해 주고 귀한 사람이란 걸 알아주는 이 세상 사람 말이야.

and has the grace and compassion and fortitude

to walk beside heras she makes her way through

this beautiful thing called life.


그 애가 삶을 헤쳐 나가도록 버팀목이 되어줄 품위, 연민과 용기를 갖춘 사람말이지


#조와 떠나기로 약속한 날, 65세 성대한 생일 파티에서


And I'm going to break precedent and tell you my one candle wish

: that you would have a life as lucky as mine,

where you can wake up one morning and say, "I don't want anything more."

Sixty-five years. Don't they go by in a blink?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는 바랄 게 없다“


65년이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지 않나요?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윌리엄과 수잔과 사랑에 빠졌지만 저승사자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그녀를 떠나보내는 조,


It’s hard to let go, isn’t it?

Yes it is, Bill.

And that’s life…what can I tell you.


떠내보내기 힘들지 않은가?

그래요. 빌.

그게 인생일 걸,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아빠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내게 남겨진 일이라면

누군가에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라도

품위, 연민, 용기를 갖춘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


커버사진: 사진: UnsplashPhilip Myrtorp

#조블랙의사랑#영화명대사#딸바보#사랑#죽음#이별#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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