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입시컨설팅 No.1 강남의 ㈜ 영 잘 국의 전대근 대표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런던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부산 현광학원의 현광식 대표가 부산의 사옥이 있으니 한 층을 다 써보라는 제안에 선뜻 수락하고 부산으로 오게 된다. 원래 부산 사람이니 뭐 놀라울 일도 아닌 일. 현광식 대표에게 그가 처음 건넨 말, ‘부산에서 제일 공부 잘하는 학교는 어디인가요? 그 학교의 학부모 대표를 만나게 해 주세요.’ 그렇게 만난 그날, 아이들을 보내주면 한 달 반 만에 영어 성적을 올려 카이스트, 서울대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는 그 아이들을 원하는 대학에 보냈다. 그게 서른 살, 2010년의 일이었다.
(주) 영 잘 국 전대근 대표
(주) 영 잘 국 사내 풍경
그의 소문을 들은 경혜여고의 송금조 경암교육문화재단은 그에게 아이들의 영어 교육을 맡겼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줘 입시 컨설팅의 눈부신 결과를 내었다. 그러던 그는 부산 센텀시티에 사무실을 차렸고 입시 컨설팅의 포문을 열었다. 그의 소문을 들은 서울 강남에서도 유명한 최선어학원이 연락을 해왔다. 최선어학원 원장의 첫째 딸의 입시 컨설팅을 해달라는 거였다. 당시 최선어학원의 강사만 800명이 넘는 상황에서 이런 의뢰는 너무나 의아한 상황. 원장은 만나지도 못했고 어쨌거나 컨설팅, 케어 끝에 그 아이는 서울대를 가게 되었다고 한다. 합격 후 최선어학원 원장은 그를 만나게 되었고, 직접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워낙 학원계의 네임드인 최선어학원 원장의 바이럴 때문일까, 서울도 모자라 중국 상해에서 입시 컨설팅을 받기 위해 부산으로 그를 찾기 시작했다. 입시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한 부모들의 뜨거운 열기 가득.
그 무렵 그는 본거지였던 부산에서 벗어나 서울 강남으로 베이스캠프를 옮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서울, 강남에서도 알아주는 ㈜ 영 잘 국이라는 회사로 입시 컨설팅의 No. 1이 되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입소문은 금세 퍼졌다. 오직 결과로 승부하고, 성적으로 인정받았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를 뛰어넘어 그야말로 남다른 결과를 눈앞에 보여주었다. 그런 그에게 물었다. 11세인 딸에게 어떤 교육을 하고 있는지.
어릴 때부터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으레 영어유치원을 시작으로 사교육의 모든 허들을 부지런히 넘고 있을 거라 예상하겠지만 사교육을 하지 않고 오직 아이와 대화를 하며 글짓기로 아이의 재능을 발현해가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출신의 아이 엄마 역시, 사교육보다는 아이의 재능을 기다리며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왔다고 한다. 문득 부산 사직동에서 학교 수업이 마치면 밤까지 사교육 학원 스텝을 고스란히 밟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의 내 아이가 생각났다.
3살 때부터 다녔던 미술학원을 11살인 지금도 다니기 싫어하는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체 왜 거길 아직도 보내고 있냐는 전 대표. 아이가 싫어하면 굳이 보낼 필요 없이 더 잘하는 일을 찾고, 찾아주어야 한다는 그의 전언이다. 8년을 얼마나 고통 속에서 그 즐거운 미술을 힘겹게 다녀야 했겠냐는 그. 더불어 대부분의 사교육 시장의 영어학원은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알고 싶어 다니는 게 아니라 오직 부모의 만족감을 위한 루틴과도 같은 등원이 아니겠냐는 그. 이제는 부모를 위한 영어 공부가 아니라 아이를 위한, 아이가 원하는 영어 공부를 기다렸다, 알려주어야 한단다. 그는 아내와 늘 아이에게 하는 말이, ‘꼴찌를 해도 괜찮다. 네가 원하는 삶을 살면 된다.’라고. 실제로 그는 실천하고 있고, 그렇게 살고 있다.
앞으로 교육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물었다. 너무나 흔한 아들바보 학부모의 입장에서. 결국 내 아이가 입사를 마주하는 시기가 되면 수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글짓기가 분별력의 대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텝스에서 IB로 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논술마저 정답이 생겨버린 프로세스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한, 진짜 생각을 담은 글, 그런 글을 짓는 힘에 대한 능력 말이다.
내 아이가 작년 부산 사직동에서 알아주는 논술 수업을 들었다. 틀에 맞춰진 수업이 싫었던 아이를 그 수업에서 빼게 되었고, 글을 쓰는 아빠이니 당연히 아이와 글 쓰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넉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나도, 아이도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소통 자체를 진행하지 못했다. 전 대표와의 대화 속에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되었고 아이와 함께 글을 쓰는 시간, 대화를 하는 시간을 늘려 가야겠다는 큰 다짐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부산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아내가 주입시켜야 하는 과학이 아니라, 영재 학교를 가는 루틴의 과학 수업이 아니라, 재미있게, 즐겁게 만나는 과학이라는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 줘야겠다.
교과 과정만을 위한 학원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해에 주말마다 캐주얼 한 역사 수업을 듣게 하고 있다. 아이가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기 때문이다. 결국 교육은 부모의 만족감이 아닌 아이의 행복을 위한 과정이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어쩔 수 없는 교과에 대한 방어는 하되 내 아이가 하고 싶고, 원하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 그런 길로 아이와 함께 가야겠다. 전 대표와 두 시간의 막걸리를 마시는 동안 번뜩번뜩 떠오른 인사이트가 너무 많고 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보수동 북테온 갤러리 내부
전대근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부산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고 있다. 그의 입시, 사교육 등에 대한 소신을 가득 담은 문화 사업 이야기는 다음 편에 소개해야겠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는 책과 문화, 예술의 이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