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시작은 어떤 징조일까?
2월 중순 출국을 앞두고 1월 말
한국의 짐들을 해외이사로 보냈습니다.
짐이 도착하기까지 2~3개월이 걸린다니 칠레에 가서도 당분간은 짐 없이 살아야 했지요.
해외이사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음식물은 철저히 제한되었고 두꺼운 상자 포장지로 모든 가구를 싸서 넣다 보니
짐을 마음껏 넣을 수도 없었습니다.
대부분 20톤 컨테이너로 싣고 가는데 편도만 천만 원에 가까운 매우 큰 비용이 듭니다.
칠레가 먼 나라라는 것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지요.
칠레와 전압이 달라 한 가정은 변압기(도란스)를 가지고 왔다가
세관에 걸려 벌금을 물어야 했던 일을 옆에서 지켜 보았습니다.
물론 어떤 가정은 음식을 넣어 와도 걸리지 않았던 운 좋은 케이스도 있었지만
이사업체에서 안된다고 하는 물건은 실지 않기를 권해봅니다.
시간이 지나 보니 김치냉장고를 가지고 가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웠어요. 해외에 나가서 살아야 한다면 김치냉장고는 꼭 사가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해외에 나가면 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김치 부심 있는 우리의 엄마들 심정이 이해가 가고, 김치를 보관할 냉장고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리고 온수매트랑 난방텐트도 있으면 온돌이 아닌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습니다. 수건이나 양말도 우리나라가 질이 좋으니 충분히 챙겨가고 문구들도 미리 사가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기본적으로 칠레는 물가가 높아서 한국보다 비싸게 사야하기에 사갈 수 있는 물건은 사가면 유용합니다. 아이가 어리다면 책도 많이 가져가고 학년에 맞는 문제집도 미리 챙겨가면 한국에 돌아와서 조금은 덜 고생할 수 있습니다. 많이 가져갔으나 못 풀고 온 문제집들이 생길 수 있으니 꼭 필요한 만큼만 챙겨가시길 바랍니다.
드디어 출국날.
70이 다 된 시아버님은 며느리가 올망졸망한 두 아들 데리고 그 먼 나라를
간다니 걱정이 되셨는지 함께 동행해 주셨습니다.
칠레는 직항이 없어서 주로 미국에서 한 번 경유해서 들어가는데, 비행시간이 최소 24시간에서 30시간을 육박합니다. 정말 고된 여정이지요. 경유지는 미국, 프랑스, 호주 등 다양하니 원하는 구간으로 계획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유일하게 미국 경유로
델타에어라인-델타에어라인을 이용하면
짐을 안 찾아도 되서 결정한 루트였습니다.
하지만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국적기)에 비해 서비스나 음식이 덜 만족스러운 것은
감수해야 한답니다. 미국으로 가는 첫 비행기에서 좌석표는 어찌 그렇게 나왔는지
아버님은 혼자 조금 떨어져 앉으시고 두 아들을 제가 데리고 타는데 맨 뒷좌석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사진에서와 같이 의자가 뒤로 젖혀지지가 앉았습니다. 크헉
잘 시간이 되자 앞사람은 당연히 의자를 뒤로 젖혔고 좁아터진 공간에 우리 두 아들은 제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앉아서 자는 것이 어렵기에 좁은 좌석에 구겨 누워 겨우 잠이 든 아이들이 깰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무던한 저도 그 순간은 두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습니다.
'아. 이 또한 지나가겠지? 너무 힘들다. 엄마가 보고 싶다. 어무이~'
미국에 도착해서 잠시 쉬고 칠레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갈아탔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는 둘씩 자리가 배정되어 훨씬 수월했지요. 못 잤던 잠도 자고 드디어 칠레에 도착하였습니다. 정말 먼 나라입니다.
도착 후 미리 남편이 준비한 집으로 향했습니다.
일주일간 헤롱헤롱 시차적응을 해나가며 올라(안녕)와 그라시아스(고마워)를 멋쩍게 써보면서 낯선 나라에 조금씩 적응해 나갔습니다.
3월이 입학이라 2주간의 시간이 남아 우리는 동네 탐방도 하고 아버님을 위한 근교지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때
감사하게도 먼저 칠레에서 살고 있는 주변 주재원 분들의 도움이 이어졌습니다.
마트도 데려가서 어떤 물건이 좋은지, 어떤 빵이 맛있고 소고기, 돼지고기의 부위들도 가르쳐 주셔서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지요.
스페인어로 물건을 사고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하는 그 분들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던지요. 칠레 쭈구리가 된 것 같아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하였답니다.
칠레에는 아파트마다 수영장이 꼭 있습니다.
많이 더운 사막 기후여서 칠레 사람들은 차디찬 물을 좋아하고 강한 태양아래 썬텐도 열심히 합니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저희 집 문 앞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영어로 쓰인 그 쪽지에는 수영장에서 저희 두 아들이 놀 때 너무 시끄럽다며 여기 사람들은 매우 나이스하며 좋은 사람들이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오자마자 신고식을 제대로 한 저희는 아이들에게 관대하다는 칠레의 문화가 맞는지 의아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물을 좋아하고 뛰어들면서 꺄!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저는 워낙 민폐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아이들을 단속하는 편인데 이런 편지를 받으니 참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외국인이며 동양인이라 무시한 건 아닐까?' 하는 자격지심도 가져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그런 편지를 받지 못했지만 집에서도 아이들을 단속하게 되었지요.
"얘들아, 여기는 아파트니 뛰면 안되고 소리질러도 안 돼. 특히 외국이라 우리가 더 조심해야 해. 민원 전화가 올 수 있어."
아직 만 4살인 둘째는 "엄마, 마녀는 무서워요?" 민원이라는 말을 몰라 마녀로 오해하고 질문을 하는데 '이 천방지축 두 아들 데리고 외국살이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소나기가 한 바탕 쏟아져 내립니다. 그런데 칠레사람들은 금요일부터 주말에는 파티를 베란다(테라스)에서 합니다.
새벽 2시가 넘어도 노래 부르고 놀던데 그것은 괜찮은 모양입니다. 어느 날은 햇볕이 좋아 베란다에 이불 널었다가 얼른 치우라고 경비아저씨께 전화를 받으며
무식한 동양아줌마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듯이 각 집의 베란다가 다 보이는 아파트에서 빨래를 너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아흑. 문화차이가 이런 것이구나. 더욱 조심해야겠다.' 하며 다짐하던 날들을 보냈습니다. 한국 음식 냄새 싫다고 민원 받은 주변 지인들의 말 따라 주방 문 닫고 후드를 강으로 틀고 김치찌개 끓여 먹던 시간도 있었으니 이방인으로써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음이 느껴지지요? 그러나 살다보니 사는 것이 다 비슷하더라구요. 처음이라 모든게 낯설고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동양인이라
쳐다보는건가?'하는 어리석은 열등감도 생기고,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는 외국에서 식은 땀 흘릴 일도 겪어가며 "휴~ 오늘 하루도 갔다. 얼른 6개월이 쑥 지나가버리길.."하며 잠자리에 들던 그 때가 지금 생각해보니 웃으며 떠오릴 수 있는 애틋한 추억이 되었네요.
다음 편에는 학교이야기를 공유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