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마치 유리 같다.
투명하리만큼 속이 다 보이고 아직도 아기 같이 순수하다.
그래서 자기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밖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양날의 검처럼 이런 투명함은 잘 깨어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는 자기의 감정을 숨기고 속일 줄도 아는 불투명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우리는 눈치라고도 하고 사회성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투명한 유리 같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늘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금이라도 가서 깨져버릴까 봐 늘 두렵다.
첫 반모임이 있고 난 며칠 후, 어린이날이 있기 이틀 전이었다.
8시부터 학교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있다고 해서 같은 라인 엄마가 아이들을 일찍 같이 보내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평소보다 10분이나 일찍이었기에 헐레벌떡 챙겨서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렸다.
곧 엄마들과 아이들이 오고 남자아이 엄마와 같이 아이들 셋을 데리고 학교로 향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뭔가 불길했다.
우리 아이보다 신체 능력이 좋은 두 아이는 느린 우리 아이와 엄마들을 남겨둔 채 앞으로 내달렸다. 그때부터 우리 아이는 불편해졌던 걸까.
아이들이 저만 두고 가버렸다고 한껏 심술이 난 것이다.
나도 그 아이들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내리막길 아래에서 다시 만났지만 남자아이의 엄마는 자기 아이를 혼냈고 분위기는 냉랭해졌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에 참여하기 싫다는 아이를 그 아이들과 함께 학교로 떠밀어 보냈다. 교문 입구에서 탈을 쓴 선생님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아이들을 뒤로한 채 개운치 않은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학교 상담실이다.
최근에 학교에서 정서검사를 했는데 관심군에 들어 상담 선생님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저장해 둔 번호가 뜬 것이다.
다시 심장이 쿵 떨어진다.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지금 상담실에 와있다고 한다.
"아이가 교실에서 드러눕고 계속 울어서 제가 데리고 왔어요."
"...."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언제까지 죄인이 되어야 할까.
한창 어린이날 행사로 어수선한 상황에 우리 아이는 교실에서 혼자 큐브를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오케스트라 등 시끄럽고 어수선한 상황이 아이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큐브가 문제였다.
선생님이 만지지 말라고 한 거였고 다른 아이들도 같이 합세해서 만들게 된 것이다.
결국 선생님께 혼이 났고 큐브도 부서지고 아이는 그때부터 떼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아이의 어려움에 대해 다 얘기를 했고 위센터에 연결도 부탁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우선 학교에서 상담이 이루어진 후에 알아봐 주시겠다고 하고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텅 비어버린 가슴에 금이 좌악 그어진다.
나도 유리로 된 가슴을 지녔다.
꾸역꾸역 쑤셔 넣듯 숨겨왔던 것들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다.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 아이의 본모습이 학교라는 그 작은 사회에 결국 드러나 버린 것이다.
제발 제발 조금만 버텨달라고 두 손과 두 발로 그렇게 악착같이 막아냈는데 결국엔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왔고 둑이 터져버렸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되돌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내 아이마저 깨어지게 둘 수 없었다.
깨진 유리조각이라도 맨손으로 집어 들어 맞춰야 한다.
아이가 돌아왔다.
나는 다시 아이를 내 앞에 앉히고 눈을 바라보고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계속해왔던 이야기이지만 깨진 유리조각을 다시 이어 붙이듯 다시 또다시 반복한다.
몇백 번이고 몇천 번이고 붙이고 또 붙이다 보면 그 위태롭던 유리도 돌처럼 단단해질 거라고...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