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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각 Nov 10. 2023

진짜 '빵 맛'을 아세요?

    한국에 살 적 제게 '빵'은 간식이었습니다. 식사와 식사 사이에 먹는 달콤하고 풍미 가득한 간식. 별로 간식을 먹는 입맛이 아니었던지라 빵은 누가 사 오면 하나쯤 먹는 그런 음식이었습니다. 이후 영국에 와 식사로 빵을 먹는 걸 보고는 새삼 신기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놀라웠던 건, 바로 '빵의 맛'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달달하고 화려한 우리나라식, 더 정확히는 일본식 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기서는 어떤 빵을 먹나. 기교가 들어가지 않은 전통적인 '빵'을 먹습니다. 호밀 빵, 잡곡 빵, 사우어 도우, 바게트, 플랏 브레드 등등 우리에게는 어쩌면 이름도 맛도 생소할 그리고 처음 먹는다면 '뭐 이런 걸 돈 주고 사 먹나'싶은 그런 빵을 먹습니다. 처음 이런 빵을 먹었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래서 영국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하는구나. 정말 지루하고 밋밋한 맛이다.' 하지만 이런 빵을 계속 먹고 또 다양한 종류와 퀄리티의 유럽식 빵을 맛보면서 이상한 건 유럽 빵들이 아니라 제 자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상한 맛에 절여져 '진짜 빵'의 가치를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진짜 빵의 맛, 그게 뭔가. 저는 그걸 (이제는 저도 느낄 수 있는) 빵 본연의 맛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설탕을 넣어 단 맛이 나는 게 아니라 곡물을 씹음으로써 나는 단 맛. 향을 첨가해서 나는 좋은 냄새가 아니라 빵이 구워지면서 나는 고소한 향. 기교가 아니라 기술로써 만들어진 다양한 텍스쳐. 그런 걸 품은 게 진짜 빵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빵이나 일본식 빵은 뭐랄까, 이제 제겐 빵과 케익 어디 중간쯤 되는 그런 독특하고 강렬한 무엇처럼 느껴집니다. 이런 참된 빵 맛을 느끼기까지 꽤 오랜 디톡스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각종 화려한 첨가물에 마비되어 있던 제 혀와 뇌가 그런 자극을 잊음으로써 그제야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시아 음식은 양념이 참 많이 들어갑니다. 인도, 태국, 중국, 한국 및 일본에서 쓰는 다양한 소스와 강렬한 향신료들을 생각해 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반면 유럽에서는 지루하고 밋밋하기에, 소금과 후추 정도나 뿌리기에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닭도 종류와 원산지 등급에 따라 맛이 다른지 여기 와서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뭐 여기 빵은 진짜 빵이고 한국 빵은 가짜 빵에 허접한 거냐. 아닙니다. 저는 둘이 전혀 다른 음식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여전히 한국 빵도 정말 좋아합니다. 단팥빵 크림빵 소보로 피자빵 등등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저 이제는 밋밋하다고만 생각했던 유럽식 빵의 맛과 가치 역시 알게 되어 좋습니다. 참, 여기 유럽에도 달달한 간식 같은 빵류가 있긴 합니다. 페이스츄리라고 부르는데, 이런 페이스츄리 마저도 한국 및 일본식 빵에 비하면 단순합니다.

    유럽 빵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맛난 빵이 바로 프랑스 빵입니다. 특히 이 맛은 프랑스 베이커리에서만 맛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파는 프랑스 빵은 '프랑스식' 빵이지 그 맛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프랑스 제빵사가 영국에 와서 만드는 빵도 프랑스에서 먹는 그 맛이 안 납니다. 이쯤 되면 프랑스 물에 뭐가 들었다 싶습니다. 프랑스에 가보면 곳곳에 베이커리들이 우리나라 편의점만큼이나 즐비합니다. 그런데 어느 베이커리를 들어가서 어떤 빵을 사던, 프랑스이기에 확연히 급이 다른 맛이 납니다. 아니 어떻게 된 게 동네 허름한 슈퍼마켓에서 계산대 옆에 파는 바게트마저도 영국에 부자들만 가는 슈퍼마켓 Waitrose의 베이커리 섹션에서 파는 빵보다 백배 천배 더 맛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프랑스에 가게 될 일이 있다면, 꼭 이른 아침에 일어나 고요한 거리를 걸으며 맛난 빵 내음이 나는 곳에 들어가 보길 바랍니다. 빵을 사고 나서 먹을 때는, 꼭꼭 씹으며 그 맛에 집중해 보세요. 그렇게 그 맛을 음미해 보면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진짜 빵 맛을. 스마트폰 보면서 대충 먹지 말고, 집중해서 정성껏 한 번 먹어봤으면 좋겠습니다.



< 빵과 관련된 불어 표현들 >

La boulangerie [라 불랑져히] - 베이커리

Le pain [르 팡] - 빵

La baguette [라 바겟ㅌ] - 바게트 빵

Le croissant [르 크롸쌍] - 크로와상

Et [에] - 그리고

Avec [아벡] - ~와 같이

Combien [콤비앙] - 얼마나

Combien ça coute [콤비앙 사 쿠트] - 얼마예요?

Comment [꺼멍] - 어떻게

Prend [프헝] - 가져가다

Voudrais [부드에] - 좋겠어요

S'il vous plaît [실 부 플레] - 부탁합니다

Pas de problème [파 드 프허블램] - 문제없습니다. 물론이죠.

C'est tout [쎄 투] - 그게 전부입니다.


* 위에 실제 단어 앞에 붙는 'le' 나 'la'는 해당 단어와 늘 붙어 다니는 '관사'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프랑스의 모든 단어들에는 남성 혹은 여성으로 성별이 있는데 (아니 진짜 굳이 왜...), 이 성별에 따라 단어 앞에 붙는 관사가 다릅니다. 이 관사를 아는 것이 중요해서 보통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단어를 말할 때 앞에 꼭 저 성별을 붙여서 말합니다. 이 성별이 불어를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진짜 정말 윽수로 싫은 개념이지 존재들입니다. 근데 어쩌겠습니까... 외워야지...

Le -> 남성 관사

La -> 여성 관사



< 프랑스 베이커리에 들어가서 하게 되는 흔한 대화 >

손님: Bonjour

직원: Bonjour monsieur, comment ça va?

손님: Ça va bien, merci. Je voudrais deux baguettes et trois croissants, s'il vous plaît.

직원: Pas de problème. Et avec ça?

손님: Non, merci, c'est tout. Combien ça coute?

직원: Six euro, s'il vous plaît.

손님: Merci, bonne journée.

직원: Au revoir, bonne journ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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