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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제 Jun 20. 2022

6 day : 날씨 탓, 기분 탓, 컨디션 탓.

쉼을 위해 걷습니다

전날부터 예보된 비가 새벽 내 내렸다. 가끔은 갑작스러운 소식으로 당황하는 순간이 더 나을 때가 있다.

미리 알고 있던 사실에 다음날 아침 운동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옷차림이 나을지 고민하며 괜스레 밤잠을 설쳤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한 일은 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를 살피는 것이었다.

조금 흐리긴 했지만 빗소리가 들리지 않았기에 따뜻하게 입고 나가면 될 것 같았다.

두터운 후드티를 챙겨 입고 나가자마자 '아뿔싸'를 외쳤다.

습도가 높았고, 하늘의 비는 내린다는 표현보단 미스트처럼 주변을 감싸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우산을 가지러 다시 들어갈까 했지만 이런 날씨에는 우산도 답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집에 다시 들어가 한 시간 더 잠을 청하고 싶지도 않았다.

습도가 높아지면 불쾌지수도 높아진다. 비단 여름철 더운 오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른 아침 약간 쌀쌀한 공기에도 나의 불쾌지수는 한 칸 UP 되었다.
게다가 새벽에 비가 오며 바람소리에 잠을 설쳤기 때문에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얼굴은 잔뜩 부어있는 상태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이 상태로 걸어도 되나?'라고 생각이 들며 돌아갈까 생각하던 도중,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과 기분을 탓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하루 전까지만 해도 걷는 것이 상쾌하고 세상의 모든 새로운 것들을 흡수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탓하며 불평할 이유를 찾고 있는 듯했다.

주변의 사소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찾겠다며 건강해져 보겠다던 마음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처음 좋은 의도로, 상쾌한 기분으로 마음먹었던 일들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뒤죽박죽 되어서 엉망인 것 같은 날.

그럴 때마다 나는 '탓'을 하곤 했다. 탓할 상대가 없을 땐 주변 상황이나 나를 탓하기도 한다. 

날씨가 안 좋아서, 기분이 안 좋아서, 혹은 잠을 못 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탓을 하지 말 란말도, 하지 않겠단 말도 나는 할 수 없다.

항상 이유를 찾고 그곳에 기대야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비가 오고, 기분이 좋지 않고, 잠을 설쳤던 것들이 순리대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주어졌기 때문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억지로 생각을 멈추기도 감정을 조절할 필요도 없다.
그냥 이대로 흘러가다 또 어느 순간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나를 알고 있으니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저 회피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처음 이 말을 듣고 나서 몇 년 후가 지났을까?
삶의 지혜와 경험들이 쌓이니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자연스러워지면 인정하게 된다.

흘러두게 두면 지나가게 된다.

그곳을 걷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노력하고 애쓴다 한들 변하는 것은 없다는 사실에 기죽고 힘들어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비가 오고 해가 뜨고 또 계절이 지나면 겨울이 오고 여름이 오듯이, 

삶의 절기마다의 변화를 조금 더 가볍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중요해진 요즘이다.


그래서 '탓'은 하되 '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모든 것 들을 인내하는 척, 괜찮은 척하지 않겠다는 말인 것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짜증 나는 감정들에 솔직해지며 그냥 걷는다.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눅눅한 후드티와 젖은 머리로도 아무렇지 않게 걷고 집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씻고 아침을 준비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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