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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바라기 May 17. 2022

야나할머니와 고사리

할머니 방 입구에 있는 신발장엔 항상 하얀 코 고무신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신발의 위치에 따라 할머니의 부재를 파악하며 장에 가신 할머니를 기대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장날이 아닌 날, 플라스틱으로 된 낮은 굽에 앞이 막힌 파란 슬리퍼가 있으면 할머니는 오늘도 산에 가셨단 뜻이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보며 동서남북 사방으로 뻗어있는 어딘가의 산에서 내려오고 계실 할머니를 기다렸다.    


산골의 저녁은 어둠이 금방 찾아온다. 해가 지는 것 같다가 금방 깜깜해져 버려 해가 지기 시작하면 집구석 구석에 불을 켜놔야 한다. 지금이야 LED 등에 가로등에 너무 밝아서 탈이나 그 당시엔 작은 백열등이 전부였다. 외양간 앞, 대문간, 수돗가, 할머니 방, 내가 효손이라 할머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제치고서라도 오늘 목표하신 분량을 해결하셔야 밭에서 오실 것이고 할머니까지 늦게 오시면 오늘 쇠죽도, 할머니 방에 군불을 때는 일도 또 내 몫이 되니 나는 잔뜩 짜증이 났다.     


하굣길 동네에 들어서 우리 집 언저리를 쳐다보면 나는 제일 먼저 굴뚝에서 흰 연기가 퐁퐁 솟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우선 연기가 있으면 집에 사람이 있다는 증거였고, 연기가 솟고 있으면 할머니가 나물을 데치고 계시거나 벌써 쇠죽을 주셨다는 증거여서 나는 안도감과 함께 집으로 갔다. 하지만 연기도 보이지 않고 마당까지 들어서도 솔가지 타는 냄새도 없고 타닥타닥 불 폭죽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어둡고 썰렁한 외양간 앞을 보면 집채만 한 큰 짜증이 나를 집어삼켰다. 나는 어젯밤 타고 남은 아궁이 안에 재를 퍼다가 변소 안에 있는 잿더미에 냅다 뿌리고 솔가지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제 먹을 밥을 준비하고 있는지 아는 엄마 소는 목에 달린 방울을 딸랑거리며 나를 재촉한다. 그러나 어른이 아닌 아이가 앞에서 계속 알짱거리고 있으니 어린 새끼를 데리고 심기가 불편하여 불을 지피는 내 등 뒤에서 자꾸만 킁킁거리며 콧바람을 불어 대고 가끔 나의 움직임을 따라 뿔을 휘젓기도 하고 간격이 좁아지면 옳다구나 하며 긴 혀로 내 머리카락을 쓱 핥으면 나는 부지깽이로 소 미간을 때려주었다. 그 혀의 감촉이란 얼마나 거칠고 센지. 머리카락이 샴푸로 감은 것처럼 질청거렸다. 그렇게 엄마 소랑 싸우며 나는 뜨거워지는 가마솥에 물을 부지런히 보충하면서 할머니를 기다렸다. 가마솥에 물이 없으면 쩍 하고 두 동강이 난다는 할머니 엄포가 그 당시에는 너무도 무서웠었다.    


드디어 할머니가 어스름한 어둠을 뚫고 산에서 오셨다. 체구도 작으신 분이 배낭을 메고 다래끼를 메고 오늘은 비료 포대까지 끌고 오셨다. 그러니 이렇게 더디게 오셨지. 아마 오늘도 산에서 진통제를 몇 알은 드셨을 것이다.


갑바천 위로 쏟아진 나물들은 봄날 기온을 머금고 왔는지 손이 닿자 따듯했다. 고사리와 잔대 싹, 개두릅 그리고 민들레까지 할머니는 오늘도 꽤 많은 나물을 뜯어 오셨다. 나는 잽싸게 나물들을 분류하고 고사리를 소쿠리에 담아 할머니께 갖다 드리자 금세 데쳐내셨고, 꼬불꼬불한 파마머리를 한 고사리들은 채반 위에 올려져 내일 예약해 둔 일광욕을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아침 부스스한 눈으로 세수하러 나오니 할머니가 장에 가시려는지 갑바천 위에 그간 말리고 손질해 두신 나물들을 분류해 놓으셨다. 새벽부터 일어나시어 뒤꼍에 부추를 베시고 다듬고 깔끔하게도 묶어 두셨다. 오늘 할머니는 단골집을 기준으로 몇 개의 상회를 순회하신 다음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집에다 물건을 넘기고 장에서 메밀 적도 사드시고 쉬시고 돌아오실 것이다. 나는 똬리를 틀어 끈으로 고정해 둔 고사리를 보면서 허무함이란 감정을 배웠던 것 같다. 비료 포대에서 나올 땐 분명 무거웠는데 며칠 새 이렇게 쪼그라들고 가벼워졌다니 이 정도면 배신이다. 배신.    


2022년 봄에 만난 고사리

2022년의 봄. 고사리를 삶으려고 꺼냈다가 고사리에서 할머니를 보았다.

키도 작고 손발도 원체 작은 분이셨지만 그래도 곡괭이를 쥐고 약초를 캐며 산을 타시던 경력자 셨기에 손목에 기운은 있으셔서 내가 할머니랑 팔씨름해서 이겨본 적이 없었는데 그랬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땐 더 쪼그라지고 가벼워져 계셨었다. 그 할머니를 이 봄에 고사리를 삶으려다 떠올릴 줄 나는 그 어린 시절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어른이 된 지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할머닌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계절에 순응하며 사셨고, 자연에 감사하며 사신 분이셨다. 손주들에게 가겟방에 있는 맛있는 과자들은 맘껏 사 주시진 못하셨을지 몰라도 그 어린 손주들을 위해 깨금을 따다 주시고 칡잎에 보리뚝과 머루와 다래를 따셔서 고이고이 담아 오셨던 그 따뜻했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고사리가 통통하게 다시금 살이 오르며 익어가고 있다. 고사리의 비릿한 향을 맡고 있으니 그 시절 할머니 곁에서 종종거리며 할머니를 거들던 그 시절의 냄새가 난다. 지금은 예전에 살던 집도 사라지고 외양간은 커다란 축사로 변해서 내가 쇠죽을 해주는 대신 주문해서 받아먹는 짚단과 사료를 먹는 소들로 변해버렸지만, 코가 기억하고 가슴이 기억하는 고사리 냄새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나는 이 할머니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할머니 냄새를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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