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청객>

by 스타맨


<불청객>


한 시간 전.

곤약 냉면으로 저녁식사를 한 나는 ,영혼없이 유투브 숏츠를 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참이었다. 유투브 세상 속에서는 긴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바싹 마른 여자들이 화사한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살집이라곤 전혀 없는 매끈한 몸을 과시하고 저체중을 인증하며 마침내 흔해빠진 ‘여신’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한 그녀들은,값싼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예외없이 새하얀 치아를 드러낸채 웃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핸드폰 알고리즘이 이끄는 블랙홀 속에서 빠져나와 책상 구석에 무늬처럼 들러붙어있던 보라색 다이어리를 펼쳐 지난해에 적은 새해 첫날의 일기를 확인했다.


‘37kg이 되면 하고 싶은 일.’


사진 찍히기

원피스 사기

초딩 때 담임선생님 찾아뵙기



남들에겐 별거 아닌 일이지만 나에게는 수년간 유예된 버킷리스트였다.앞의 몇장을 넘겨보니 ‘먹킷 리스트’도 있었다.



짜장면

떡볶이

치킨

햄버거

(딸기) 생크림 케익


사실은 다 피어푸드(fear food)였다.먹고싶지만 살찔까봐 두려운 음식.햄.버.거 ..? 나는 그야말로 웃퍼서 ‘훗’하고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 때,깊은 밤을 깨우듯 전화기가 기습적으로 울렸다.

지잉지잉지잉 -.지잉지잉지잉- 떼쓰듯 울려대는 진동소리에 난 이미 감지했는지도 모른다.역시.. 도돌이표다.


전화의 전원을 껐다. 십여분쯤 지났을까.이번엔 초인종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띵-똥.띵-똥.띵-똥.내 심장은 요동쳤다.곧이어 벨 대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쾅,쾅 - 쾅,쾅,쾅! 소리가 점점 커졌다.


“ 딸~ 딸래미 안에 있어?”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문 열어 은수야~아빠야!”

쾅쾅쾅쾅.쾅쾅쾅쾅.“너 안에 있으면서 뭐해! 문 안열고!”


한참동안 심정적 수세에 몰렸던 나는 어쩔수없이 문을 열었다.그대로 놔뒀다간 난동을 부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아빠를 본 건 집을 나온 후 6년만에 처음이었다.몸을 휘청거리며 좁은 현관에서 간신히 신발을 벗는 아빠를 어쩔수없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호흡이 가빠왔다.아빠는 못 본사이 더 왜소해졌고 머리는 하얗게 새었다.


“야,내가 니 집 알아내느라 아주 혼구녕이 났다.내가 뭐 끝까지 모를 줄 알았냐? 너는 내 손바닥 안에 있다 이기야~”,하며 손바닥을 눈앞에서 휙,휙 뒤집는데,훅,땀에 절은 술냄새가 났다.

나는 가쁜 호흡을 간신히 고르며 코로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입술 사이로 천천히 내뱉었다.아빤 곧장 냉장고로 향하더니,

“너 아직도 굶고 댕기니? 어째 냉장고가 텅 비었어?”“다 큰 기집애가 술도 안먹어? 술 한병이 냉장고에 없냐?”“내 이럴 줄 알았지!”라며 방바닥에 퍼질르고 앉아 들고 있던 검은 봉지에서 소주 두병을 꺼낸 후,일회용 포장용기에 담긴 빨간 떡볶이를 주섬주섬 펼쳐놓았다.

“왜 그러고 귀신처럼 섰어?야야 너 먹으라고 안주까지 사왔다야.같이 소주 한잔 해!”

종이컵에 소주를 콸콸 따르는 아빠를 바라보며 나는 문 앞에서 벽처럼 얼어붙어 있었다.저 인간 앞에선 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익숙한 무기력,드러내 화조차 낼 수 없는 불순물처럼 가라앉은 분노.그건 온전히 피해자다운 덕목이었다.


“야!너 아직도 거 뭐 살뺀다고 안먹구 그러냐?참 나 이해 할 수가 없네.아님 말어”아빠는 이쑤시개로 떡볶이를 찍어 후루룩 자기 입에 쑤셔 넣고 질겅질겅 씹더니 충혈된 눈으로 날 흘깃 올려다보았다.그리곤 결심한 듯 말했다.

“나도 뭐 니 그러구 섰는데 긴 말 할 건 없고 용건만 간단히 하자면 말이지.”

“니 외할매 있잖아.니 알지?기억나지?마산 할매.그 할매가 2주전인가?돌아가셨는데 .. 켁켁 ”하며,컵에 따른 소주를 들이켰다.사레가 걸렸는지 켁켁거리며 얼굴이 뻘개진 아빨 쏘아보며 생각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다니 ..’난 친할머니는 좋아하지 않았지만 외할머니는 좋아했다.엄마와 닮은 고요한 얼굴과 성격.어릴 때 집 이사할때마다 도와주신다고 기차 타고 먼 길 올라와 이삿짐을 싹 다 정리해주시곤 쉴 틈도 없이 집으로 돌아가셨던 외할머니.중학생이 된 후엔 뵌적이 없지만 가끔 엄마가 외할머니와 통화하며 애써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었다.그런데 외가친척 누구도 나에게 연락하지 않다니.아니다,분명 아빠한테 연락을 하면 나에게도 전달될거라고들 생각했을거다.아빤 방바닥에 고갤 쳐박고 남아있는 소주를 연거푸 홀짝였다.


“아무튼 뭐 니 할매야 죽어서 좋은데 갔으니 그건 돼꼬.니 할매가 죽긴 죽었는데 그냥 죽지 않았거든?그게 중요한 거야” 또 한 잔.“아 오늘 또 술이 다네 달어 끄윽”하며 히죽거리는 꼴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그 때 아빠가 말을 이어갔다.

“니 할매가 살던 집이 있거든? 코딱지만한 마당딸린 집이 하나 있단 말이야.근데 니 할매가 그 집을 너한테 남겼네.그 뭐시기냐 상속.그래 상속.그거 팔아봐야 얼마 되지도 않지만.몇푼 안되니깐 세금도 없더라꼬” “어때?관심이 좀 생기냐?”아빠는 내 눈치를 살폈다.난 물론 놀랐다.할머니가 나에게 사시던 집을 남겨주셨다는 것에 놀랐고 아빠가 이렇게 투명하게 뻔뻔한 데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근데 내가 바쁜 너 대신 좀 알아보니깐 말이야.꺼억...그 집을 살 사람이 그새 나타났다네.너 그 집 당장 못팔면 그거 관리도 못하고 집 다 버리기 십상이야 .사람 안사는 집은 빨리 망가지는 거 알지?”

“그래서 ... 인감 내놔봐.아빠가 팔아줄테니까.아 참 그리구 위임장인가 그거 어디 멋지게 한 장 써봐!” 아빠는 다시 한번 내 눈치를 살피더니 소주를 채워 다시 홀짝였다.

“야야 이 떡볶이 좀 먹어라.너는 옛날부터 니 엄마가 먹으라고 먹으라고 그렇게 애걸해도 안먹구 속을 썩이더니.무슨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나.그러니 저렇게 말라 비틀어져가꼬 말이야.니 엄마가 너만 애 안먹였어도 일찍 죽진 않았을거다 쯧쯧”


나는 순간,마치 심장에 불이 붙는 것 같은 뜨거움을 가슴 언저리에서 느꼈다.그리고 그 뜨거운 불을 토하듯 떡볶이가 담긴 플라스틱 용기를 발로 차버렸다.순간,아빠의 옷과 바닥에 빨간 국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아니 저 년이 미쳤나!!!!!!!! 야! 너 미쳤어???”


난 악몽을 꿀 때처럼 뻣뻣하게 굳은 몸을 간신히 움직여 문을 박차고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조용한 불행’ 시즌 2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고래고래 고함치는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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