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엄마가 있는 별로 갈 것이라고.
단편소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놀라운 속도로 치솟아 오르는 아키를 느꼈다. 나는 힘껏 외쳤다.
아키! 아키이이이이!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남자가 뒤로 엉거주춤 물러섰다. 나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이모! 아키, 아키! 아키가 왔어! 빵집에서 아빠가 달려 나왔다. 쓰러져 있던 현아 이모가 일어섰다. 동네 사람들이 몰려와 나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현아 이모가 내 어깨를 잡고 말했다.
다, 다연아. 네, 네가 말을 했어! 말을!
나는 이모! 하고 외치며 현아 이모에게 안겼다.
그 사이에 지진은 사라졌다. 그래도 아키가 여전히 내 곁에 있다고 느꼈다.
남자는 놀란 눈으로 현아 이모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이, 이모라고? 이런 미안해, 현아야, 미안해. 남자는 그렇게 내뱉더니 서둘러 달아나 버렸다. 현아 이모는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다연아! 네가 말을 했어! 아빠가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았다. 나는 울면서 외쳤다. 아빠, 아키야. 아키가 나타났어! 아키! 아키가 우리를 구해주려고 땅 속에서 올라왔어!
세월이 흘러 나는 물리학자가 되었다. 나는 수식과 논리, 실험을 통해 아주 작은 입자에서부터 수수께끼가 가득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물리학 이론을 탐구한다. 중력과 대칭성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하고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과 입자를 가속하는 국제 실험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아키를 잊지 않았다. 내 마음속 깊은 곳 어디에서 여전히 아키가 살고 있다. 아키는 사랑이다. 사랑은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아키를 만난 그 사건은, 물리적으로 말하자면, 지진(earthquake)이었다. 지진이란 지구적인 힘에 의하여 땅속의 거대한 암반(巖盤)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그 충격으로 땅이 흔들리는 현상이었다. 지진은 지구 내부 어딘가에서 급격한 지각변동이 생겨 그 충격으로 생긴 파동, 즉 지진파가 지표면까지 전해져서 땅을 진동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사전적인 의미였다. 그 시절 내게는 ‘지진’이란 개념이 없었다. 많은 사람이 죽을 수 있는 무서운 현상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내게 그것은 아키가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나를 구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아키가 뛰어나오면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나는 믿었다.
내 연구실에는 작은 유리 상자가 하나 있다. 거기에는 현아 이모가 선물로 준 타로 카드가 한 벌 담겨 있다. 유리 상자의 표면에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반사되기도 한다. 나는 가끔 유리 상자를 열고 나의 과거와 미래를 점쳐 보기도 한다. 잠시 머리를 식히는 일이지만, 종종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나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유리 위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리고 현아 이모를 떠올린다. 이모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뒤에 호주로 이민하였다. 일 년에 한 번은 나를 만나러 온다. 현아 이모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다. 나의 사촌 동생들이다. 나는 현아 이모가 호주로 이사 가기 전에 어린 사촌 동생들에게 소리를 내어 재미있는 책들을 읽어주곤 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지니고 있을 것이다. 아이는 어느 순간에 걸음마를 배우고 조금씩 걷기 시작한다. 아이는 걷다가 문득 멈춘다. 그리고 두리번거리며, 하늘과 나무, 구름, 혹은 빌딩을 본다. 세상을 올려다본다. 그 순간은 소중한 보물이다.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불가사의한 마법이다. 그래서 나는 지구 위의 모든 아이에게 아키를 소개해 주고 싶다.
아버지는 힘든 날을 보냈다. 재혼을 하지 않고 나와 함께 살았다. 그것이 꼭 잘한 일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선택이기에 딱히 뭐라고 할 말은 없다. 어쨌든 아버지가 엄마를 평생 잊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하게 되고 몇 년이 지난 뒤,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병실에 있을 때, 나는 밤마다 아키에게 부탁했었다. 아빠를 절대 놓아주면 안 된다고.
하지만 아버지는 행복한 표정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병실에 누워서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자신이 아키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고. 자신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제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고. 아키는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아빠가 너무 정중하게 부탁했기에 아빠를 놓아주기로 결심한 것이라고. 아빠는, 아키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하고, 별들이 반짝이는 먼 우주로 떠난다고. 아빠는 엄마가 있는 별로 갈 것이라고. 엄마와 함께 지내며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라고.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우주가 한없이 넓고 아무리 어두워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만나게 된다고. 그러니까, 사랑하는 이들은 상대를 끌어당긴다고. 그래서 지금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있을 것이라고. 사랑, 그것이 나의 중력 이론이고 아키의 임무라고.
(끝)
읽어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조만간 좋은 소설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