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문장을 준비하는 계절
계절은 예고 없이 다가와 내 마음의 결을 흔들었다. 봄은 설렘으로, 여름은 열정으로, 가을은 성찰로, 겨울은 기다림으로 나를 물들이며 지나갔다. 그렇게 네 계절을 건너며 나는 흔들리고 지치고, 다시 일어섰다. 돌이켜보면 달라진 것은 세상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낸 나 자신이었다. 글을 써온 시간 또한 계절의 흐름과 닮아 있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봄은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다가왔다. 비 온 뒤 운동장은 물기를 머금고 반짝였고, 그 위를 뛰어다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공기마저 환하게 물들였다. 우산 끝에서 떨어진 빗방울은 햇빛을 받아 작은 무지개로 번졌고, 창가에서 스며들던 바람은 먼지까지 따스하게 바꾸어 놓았다.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벚꽃은 매년 같은 자리에 피었지만, 그 앞에 선 내 마음은 늘 다른 색이었다.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 모를 설렘은 꽃잎 사이로 스며들어 오래 닫혀 있던 문을 열고 희망을 불러냈다.
봄의 저녁노을은 특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붉게 물든 하늘은 발걸음을 저절로 늦추게 했다. 교실 창문으로 들어오던 분필 가루 냄새와 새 학기를 알리는 교가 소리도 봄의 풍경을 가득 채웠다. 꽃향기 속에서 나는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잠기곤 했다. 봄은 늘 새로운 나를 준비시키는 계절이었다.
여름은 정열과 번아웃이 맞물린 계절이었다. 태양은 그림자를 짧게 만들며 세상을 내리누르고, 아스팔트는 발바닥까지 달궜다. 그러나 저녁 무렵 소나기가 쏟아지면 세상은 단숨에 식었다. 젖은 흙냄새와 함께 하늘에 무지개가 걸리던 순간, 나는 다시 숨을 고르며 활기를 찾았다. 바닷가에 서서 발목을 스친 파도의 차가움은 선명했다. 모래알이 발가락 사이로 스며들던 감각은 여름의 기억으로 남았다.
여름밤의 풍경은 깊었다. 선풍기 날개가 만들어내는 일정한 리듬, 모깃소리에 뒤척이던 순간, 수박을 쪼개던 청량한 소리와 얼음을 띄운 음료의 시원함까지. 장마철 창문을 두드리던 빗방울은 작은 강물처럼 흘러내렸고, 그 소리는 자장가처럼 이어졌다. 별빛이 쏟아지던 캠핑장에서 바라본 은하수는 세상의 넓음을 일깨워 주었다. 여름은 삶을 뜨겁게 달구고 다시 식혀 주며 쉼의 가치를 알게 했다.
가을은 고요와 풍요가 교차하는 계절이었다. 황금빛 들판은 수확의 기쁨을 전했고, 붉게 물든 단풍은 지나온 시간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서늘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자, 나는 따뜻한 차를 손에 쥔 채 호흡을 고르곤 했다. 발밑에 쌓인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거림은 내 안의 무거운 짐이 흩어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 속에서 나는 내려놓음이 곧 충만임을 배웠다.
가을의 풍경은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도서관 창가에서 마신 커피 한 모금,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던 빗방울, 골목 책방에서 풍겨 나오던 낡은 책 냄새는 쓸쓸하면서도 따뜻했다. 장터에서 풍겨오던 군밤 냄새는 오래된 추억을 깨웠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허전함에 울림을 더했다.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려 길 위에 노란 카펫을 만들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함께 걷던 이의 발자국이 낙엽 위에 나란히 남아 있던 기억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겨울은 멈춤 속에서 시작을 준비하게 했다. 창문에는 성에가 내려앉고, 하얀 입김은 새벽 공기 속에서 피어올랐다.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걸을 때마다 발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손끝은 얼어붙을 듯 시렸지만, 장갑 속 작은 온기가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겨울의 차가움은 결국 따뜻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겨울의 장면은 오래 남았다. 난로 위에서 주전자가 끓어오르는 소리, 창가 김 위에 그리던 작은 그림 하나는 잊고 있던 동심을 깨워 주었다. 골목마다 아이들이 세워 놓은 눈사람은 차가운 계절에도 웃음을 남겼다. 회색빛 하늘 아래에서 마신 뜨거운 국물 한 모금은 몸과 마음을 함께 데워 주었다. 성탄절 거리의 불빛과 캐럴은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따뜻함을 불러냈다. 새벽녘 멀리서 들려온 까마귀 울음은 고독을 짙게 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시작의 기운이 숨어 있었다.
네 계절은 내 마음의 결을 고스란히 비췄다.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마음, 옳고 그름을 가르고자 했던 날카로운 눈빛, 쉽게 사라지지 않는 바람, 놓아야 했던 미련까지.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 사랑과 미움은 계절의 색처럼 번졌다가 사라졌다. 흔적들은 내 마음을 다지고, 또 다른 내가 되어가게 했다. 결국 계절은 변했지만, 진정으로 달라진 것은 그 안에서 자란 나였다.
돌이켜보면 글을 써온 시간도 계절의 흐름과 닮았다. 처음의 문장은 봄처럼 설레는 시작이었고, 몰두한 시간은 여름처럼 뜨거웠다. 완성에 다다르며 되돌아본 순간은 가을의 고요와 같았고, 마지막에 멈추어 숨 고른 지금은 겨울의 침묵과 닮았다. 글쓰기는 초고를 여는 봄, 몰입의 여름, 퇴고의 가을, 마무리의 겨울을 지나 다시 또 다른 봄을 맞는다. 그래서 끝은 언제나 시작을 품고 있었다.
오늘, 나는 이 글을 마지막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마지막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문턱이다. 겨울의 눈 속에 봄의 씨앗이 숨어 있듯, 오늘의 쉼표는 내일의 문장을 준비하고 있다. 계절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마음 또한 흐름 속에서 또 다른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나는 담담히 펜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안다, 눈부신 내일의 문장은 이미 이 순간, 조용히 자라나고 있음을.
이 글의 끝자락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 쉼은 멈춤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또 다른 길을 걷기 위한 준비다. 책장을 덮는 순간에도 이미 새 노트를 펼치고 싶은 설렘이 밀려온다. 계절이 돌고 도는 것처럼, 글 또한 이어져야 할 몫이 있다. 나는 이 마무리를 점이 아니라 쉼표로 남겨 둔다. 다음 계절이 불러올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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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1을 마치며, 사계절의 끝자락에서>
서른 편의 글이 모여 하나의 사계절을 만들었다. 처음 펜을 들던 날,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텅 빈 화면 앞에서 커서가 깜빡이던 첫날, 손끝이 떨려 몇 번이나 문장을 지웠다. 내 안의 목소리를 꺼내는 일이 낯설었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이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줄의 문장이 쌓이고, 또 한 줄이 이어지며, 나는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치 첫 봄날, 아직 서늘한 공기 속에서도 연둣빛 싹이 고개를 드는 순간처럼.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책상 위 노트를 환히 적셨던 기억이 있다. 그 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마음을 깨우는 언어가 되어 내 안에 내려앉았다. 카페 한쪽 자리에서 흘러나온 낯선 대화,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치듯 마주친 미소, 버스 창밖으로 흘러가던 풍경은 내 하루를 흔드는 파문이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 따스함과 쓸쓸함이 글로 옮겨지는 순간,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관계에 대한 글을 적을 때는 늘 호흡이 깊어졌다. 잡았던 손의 온기, 놓쳐야 했던 손의 차가움, 말 한마디가 남긴 울림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눈빛이 있었고, 침묵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가기도 했다. 친구라는 이름이 다 설명하지 못한 거리, 잊힌 줄 알았던 인연이 불현듯 찾아와 문을 두드리던 순간. 글을 쓰며 나는 관계가 계절처럼 다가오고 물러가며, 다시 이어지는 흐름임을 배웠다.
여행에 대한 글은 늘 낯선 공기를 데리고 왔다. 공항의 웅성거림, 길을 헤매던 골목에서 마주친 따뜻한 눈빛, 호텔 창밖으로 번져가던 도시의 불빛. 나는 자주 길을 잃었지만, 그 길 위에서 오히려 나를 찾았다. 떠남은 머묾이었고, 머묾은 다시 떠남을 불러왔다. 여행이 끝나고 돌아온 집 앞 골목은 언제나 낯설 만큼 반가웠다. 현관을 열자 익숙한 신발 냄새와 낡은 시계 초침 소리가 나를 반겼다. 떠남과 귀환, 그 두 끝이 이어져야 비로소 여정이 완성된다는 걸 알았다.
계절은 언제나 글의 배경이자 주인공이었다. 겨울 창문에 내려앉은 성에는 차가움 속의 고독이 스며들어 있었고, 봄날 운동장에서 터져 나오던 아이들의 웃음은 공기마저 환하게 물들였다. 여름밤 지붕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자장가처럼 이어졌고, 가을 낙엽 위에 나란히 찍히던 발자국은 덧없는 순간 속의 영원을 말해 주었다.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스칠 때의 차가움, 겨울 새벽 공기 속 매캐한 냄새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글이 쌓일수록 나는 내 마음의 사계절을, 오감으로 기록해 갈 수 있었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공감 버튼 하나, 댓글 한 줄, 조용히 머물러 온 시선 하나가 내 글을 숨 쉬게 했다. 글을 쓸 때 나는 늘 혼자라 생각했지만, 독자의 마음이 닿는 순간 깨달았다. 이 글은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었다. 당신이 머무른 덕분에, 나의 글은 하나의 계절을 지나 사계절이 될 수 있었다. 독자들은 단순히 글을 읽는 이들이 아니었다. 때로는 내 글을 함께 완성하는 보이지 않는 공동 저자였다. 그들의 마음이 닿는 순간, 문장은 다시 살아 움직였다.
이제 나는 시즌1의 끝자락에 서 있다. 그러나 이 끝은 점이 아니라 쉼표다. 겨울 눈 속에 봄의 씨앗이 숨어 있듯, 이번 마무리는 곧 또 다른 시작을 품고 있다. 시즌2에서는 꿈과 도전, 감정과 내면, 글쓰기와 성장의 기쁨, 그리고 삶의 무게와 빛을 담아내고 싶다. 우리가 함께한 사계절의 울림은 다음 계절에도 이어질 것이다.
끝은 언제나 시작을 품고 있다. 계절이 바뀌듯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는 펜을 잠시 닫아 둔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문장은 조용히 자라고 있음을 안다. 곧, 첫 페이지를 다시 펼치듯 시즌2의 문장을 열어갈 것이다.
계절이 다시 한 바퀴를 돌 듯, 글의 여정도 멈추지 않는다. 나의 펜은 잠시 쉬어 가지만, 마음은 이미 다음 문장을 향해 걷고 있다. 시즌2에서는 조금 더 깊이 있는 이야기로, 우리가 함께 지나온 사계절 위에 또 다른 빛을 덧입히려 한다.
봄이 다시 오면, 그때는 한층 단단해진 마음으로 인사를 건넬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쉼표를 함께 기억해 주길.
이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의 예고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