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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민 Oct 30. 2022

우리는 왜 집을 지킬까

act 3 scene 1

내 책상 위에는 초콜릿 포장지가 하나 있다.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브랜드의 것인 데다, 내용물 없이 포장지만 있어 보는 사람마다 쓰레기로 오해한다. 대신 버려주겠다는 사람이 상황을 모른 채 잔뜩 구겨버렸는데도 아직 갖고 있다. 하우스어셔로 일하며 가장 크게 울었던 날의 증표이자, 삶을 오르는 방식을 생각했던 날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아몬드가 든 세모 모양의 밀크초콜릿을 쌌던 금박. 언젠간 초록색 종량제 봉투에 들어가겠지만, 그 환한 마음과 다정한 위로를 잊고 싶지 않다. 


유독 하우스어셔의 일이 고된 작품이 있다.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은 공연이 그렇다. 하우스어셔에게도 마음의 집이 있다는 걸 잊어버린 사람이 안과 밖으로 많을 때, 최소한의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작은 인정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말이다.  또 하나의 못된 공연이 끝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보다 드디어라는 후련함이 배나 반짝이던 저녁이었다. 공연을 여러 번 보러 왔던 관객 한 명이 쭈뼛거리며 나를 찾았다. 오늘 마지막으로 이 공연을 보는 날이라며, 그동안의 감사를 담아 초콜릿을 건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초콜릿을 선뜻 받아 들지 못했다. 얼떨떨해하는 사이 관객은 내 손에 선물을 쥐여주고 자리를 떴다. 퇴근 후 배가 고파 가방에서 초콜릿을 꺼냈다. 포장지를 벗겨 입에 털어 넣고, 천천히 녹여 맛을 봤다. 편안하고 포근한 질감이었다. 겉이 모두 녹아 없어지자 아몬드가 나왔다. 아몬드는 오독거렸고 고소했다. 그걸 씹으면서 오늘 하루를 생각했다. 


아니, '덜 중요한 일을 하는 데다 대체할 인력이 넘쳐나 함부로 대해도 되는 시간제 근로자'에도 감사를 느끼는 그 관객의 다정을 떠올렸다. '먼저 인사를 건네도 대부분에 무시당하기 일쑤'고, '맨바닥에 쭈그려 앉아 밥을 먹는 일이 당연한 존재'로 생각되었던 우리를 존중하는 사람의 예의를 묵고했다. 이상했다. 하우스어셔를 무시하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나는 그 사람의 인격을 의심했다. 스스로를 달래며 내가 존중받아 마땅한 인격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나의 자격을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이 초콜릿을 받아도 되나?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선명해졌다. 내가 내 마음의 집을 필요 이상으로 어지르고 방치할 때에도, 소란 사이에 스미는 빛을 감사히 여기는 시선이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돌아보면 극장의 집을 지키며 내가 쏟은 사랑보다 돌려받은 것이 언제나 더 컸다. 공연 잘 봤다고 깊이 고개를 숙이는 관객의 몸짓에,  늘 고생이 많다며 도넛 상자를 건네는 스태프의 미소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객석 꼭대기에 올라왔다는 배우의 거친 호흡에 사랑이 묻어있었다. 평판 관리나 위선이래도 상관없었다. 무엇이었든 내게는 유효한 위로였으니까. 


내가 극장의 집을 지켰던 건, 그것이 내 마음의 집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급박하고 산란한 순간에도 극장을 떠날 수 없었던 건, 그곳에 갇힌 환한 사랑에 질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엔 사랑이 많다는 명제를 극장은 몸소 가르쳐 주었다. 암전을 깨고 쏟아지는 빛처럼, 적막을 부수고 침노하는 소리처럼. 극장이 즐거움을 선사하는 방식은 사랑의 그것과 지나치게 닮아있었다. 


이 말을 적는 순간에도, 금박 초콜릿 포장지는 내 책상에서 볕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내 마음의 집 거실 한복판의 달린 조명의 색과 꼭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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