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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Dec 01. 2023

16년 간의 직장인 생활을 끝내 보았다.

사이코패스인가 의심스러웠던 퇴사고민 첫날부터 퇴사당일날까지의 심리

140대가 넘어가면 회사에 대한 회의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20대, 30대와는 다른 규모의 크기로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내 마음속 작은 일렁임을 만들었던 이벤트들로 인해 결국 퇴사까지 가게 되었던 한 사람의 심리변화는 어땠을까요.



40대 직장인, 퇴사를 고민하게 만든 심리적 방황의 서막

이전글에서 짧게나마 적었던 것처럼, 39살에 일련의 직장생활에 대한 충격을 받게 되어 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파도가 일렁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개인사업과정과 운영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되며,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감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게 돼버립니다.


첫 번째 이벤트가 들이닥쳤을 때의 저의 마음속엔 이런 질문들이 가득했어요.

(첫 번째 이벤트는 2년간 6명의 팀원이 '나가짐'을 당했던 이벤트입니다.)

- 저 나이에? 벌써?

- 외국계회사인데? 이렇게?

- 나는 저 상황이 오지 않으란 보장이 있을까?

- 가만, 나 몇 살이지?


20대 중후반 처음 입사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40이라는 나이가 되었더라고요. 정말 경주마에 눈가리개를 씌워놓은 것처럼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나의 20대와 30대는 사라지고 40살이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예전 20대 때의 기분으로 살고 있었는데 말이죠.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이때부터였습니다.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겪어보지 못한 두통과 원인을 알 수 없는 목통증, 그리고 어깨와 등통증이 조금씩 시작되었습니다. 제삼자가 본다면, 좋은 회사 다니면서 배부른 소리 한다고 충분히 할만합니다.


하지만, 결국 개인의 경험의 차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아직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이지만 - 물론, 저보다 훨씬 더 어려운 환경을 겪어오신 분들도 많으실 겁니다. - 너무나 큰 결핍을 겪으며 자라왔고, 그 결핍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고통이 얼마나 거대한지 잘 알기에 어찌 보면 지레 겁부터 먹고 그 상황이 막연하게 올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한 것이죠.


본격적인 현 상황에 대한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마음 한편에서 작게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이 작은 불씨가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큰 산불이 되어 제 마음속에서 커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흘러가게 되었죠.



40대 직장인, 퇴사고민에 대한 무한굴레의 시작

작은 일렁임이 시작되고 몇 달을 혼란 속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불안함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고, 이 작은 1평 남짓한 데스크에서 하루종일 타이핑을 치며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게 과연 맞는가라는 생각이 마음속을 점점 더 어둡게 물들여 갔습니다.


- 결핍된 상황에서 자라다 보니 내 생각의 틀도 굳어진 건 아닐까?

- 지금 이러고 책상에 앉아서 하기 싫은 일을 계속해야 하나?

- 더 나이 먹고 후회하기 전에,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세컨드라이프를 준비해 볼까?

- 지금 이러고 고민하는 이 시간자체가 낭비는 아닐까?

- 근데, 뭘 하지?

자, 이 지점부터 사람이 미치기 시작합니다. 16년을 해오던 일이지만, 그 어떤 일을 한다 해도 절대 집중이 되지 않으며,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기 시작합니다.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됩니다.

"쉬고 싶다. 여유를 가지고 미래를 생각해보고 싶다."
"나 그동안 달려왔잖아. 조금 앉았다가 가볼까?"


이런 현실도피성 생각을 하게 되고, 마치 파랑새증후군을 앓는 사람처럼 몇 년 후의 나는 무언가 지금과는 다른 일로 성공해야만 할 거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지금은 퇴사했기에 '망상'이라고 지칭할 수 있을 거 같네요.


-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 없이?

- SNS를 보면, 사이드프로젝트로 시작해 보고 성과가 어느 정도 나오면 고민하라던데.

- 무얼 하고 싶은지 아직도 모르겠는데

- 지금 이 타이밍에 굳이?

- 내가 꾹 눌러서 참으면 어쨌든 10년은 보장된 월급을 받을 텐데

- 지금 받는 월급이 너무 아까운데

-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의미 없는 인생은 아닌 거 같아.


보이시죠? 생각이 위 순서대로 차례로 반복되며 무한히 쳇바퀴를 돌게 됩니다. 아무리 잊으려 애를 써도 고민의 무한굴레는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내 안의 천사와 악마가 서로 속삭입니다.

(어느 쪽이 천사인지는 모르겠네요.)

- 야, 지난 16년 고생했잖아. 이제 조금 내려놓고 쉬면서 생각해 봐. 넘어진 김에 쉬어가래잖아.

- 미쳤어? 지금 너 나이에 나가면 무슨 일을 할 거야? 어디 회사에서 받아줄 거 같아? 그냥 참고 다녀.

진짜 미칩니다. 이거 안 당해본 사람은 몰라요.


정신병 올 거 같은 고민의 굴레가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그 무엇을 하든 머릿속을 가득 채웁니다. 채우고도 메아리가 몇 바퀴를 돌정도로 하루종일 저 생각뿐입니다.


신경이 곤두서있고, 인상은 언제나 구겨져 있으며, 긴장한 상태로 지낸 탓에 목뒤는 항상 뻐근합니다.

각종 구글링, 유튜브 영상들을 수백, 수천 편을 보아도 나아지질 않습니다.

마치 조증에 걸린 사람처럼, 기분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업다운이 반복됩니다. 아내에게조차 털어놓고 얘기도 못하게 됩니다. 나란 사람은 가장이라는 사람이거든요.

"고민하라고 누가 칼 들고 협박한 것도 아닌데, 진짜 사람 미치게 합니다."



퇴사에 다다른 마지막 발버둥

거의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저런 정신상태로 지내다 보니, 몸과 마음의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게 스스로 느껴집니다. 목부터 시작된 통증은 각종 MRI와 뇌 MRI, 뇌 CT까지 찍어볼 만큼 이상증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기분도 하루 수십 번 업다운되다 보니 정신적인 문제가 생길 거 같은 무서움도 느껴졌습니다.

"더 이상 무리다. 어느 쪽이던 결정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결정도 못합니다. 빨리 결정을 해야 내 몸과 마음이 다시 예전처럼 건강해질 거 같다는 걸 알지만, 결국 위 질문들의 무한굴레를 또다시 돌리게 됩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 심리상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참 멍청한 짓을 했네요. 저런 고민이 아닌, 회사를 나오고 싶다면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내지는 어떤 걸 해보고 싶었는지를 정리하고 고민해봤어야 했는데 말이죠.

고작 저 몇 개 안 되는 질문을 매일 매 순간 스스로에게 던지며 스스로 병을 만들고 있었으니까요.

첫 사회생활하고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같이 달려온 것처럼, 퇴사에 대한 고민을 할 때는 다른 의미의 눈가리개를 하고 오로지 '퇴사냐, 아니냐' 만을 고민했었습니다.


적당한 변명을 하자면,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결정이다 보니 시선이 더욱 좁아져 원초적인 고민을 한 거 같아요. 이 글을 보시는 퇴사를 고민하시는 분들은 저처럼 이상한 거에 매몰되는 시야를 가지시면 안 됩니다.


한 1년 반이 지나니, 아래와 같은 무한굴레의 질문이 추가되더군요.

- 나 현실을 그냥 도피하고 싶은 건 아닐까?

- 단순히 일하기 싫어서 이럴 수도 있을 거 같다.

- 미래에 대한 고민은 단순히 도망가기 위한 구실을 만드는 거 일지도?

- 출근, 퇴근하는 이 삶이 싫어서 일수도 있겠다.

- 난 의지력이 제로인 인간인가?

-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회사를 못 다니는 거지?

- 근데, 나가면 뭐 해?


그래도 질문의 질이 처음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보다는 아주 조금은 자아성찰의 의미도 있고, 나가서 무얼 할지 고민하는 것도 추가되었네요.

대체 난 왜 이러는 걸까 라는 자책까지 섞이다 보니, 머릿속은 더욱 혼잡해집니다. 글로써 표현하고자 하니 당시의 심리상태가 백 프로 표현이 안됨이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떠나거나, 따르거나, 이끌거나"


어디서 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 문장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결국 저 말이 정답이었거든요. 하지만 어리석게도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가짓수만 늘어난 채로 6개월의 시간을 더 보내게 됩니다.



퇴사를 결심하다.

글을 보시는 분들은 참 한심한 놈이라고 생각하실 거 같습니다. 지금의 저도 당시의 저를 생각하면 참 한심합니다. 퇴사냐 아니냐를 1년 9개월을 고민한셈이니까요. 그 시간을 차라리 자격증을 준비했어도 될 시간인데 말이죠. 너무나 잘못된 순서로 꼬여버린 제41살과 42살의 2년 가까운 시간이 이렇게나 안타깝게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전에 없던 각종 질병은 덤으로 얻게 되었고요.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우울증이 왔던 거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산적이지 못한 채로 시간을 날려버린 저는,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지니 결국 못 버티고 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남들이 보면 충분히 비웃을 만한 일입니다. 어떤 이벤트를 기점으로 스스로를 옥죄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져버린 꼴이니까요. 그렇게 자책하며, 퇴사를 결심하게 됩니다.

"스스로 무덤을 판 멍청이었던 겁니다."


이렇게나 쓸데없는 고민을 마치 인생의 중대기로에 선 것처럼 시간낭비를 해오던 저는, 그래도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일념하에 조금씩이나마 마음을 다 잡아보기로 결심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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