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33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33화 / 4장 아보의 이단 추적대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33화 / 4장 아보의 이단 추적대



날이 어두워지자 잠을 청해야 했던 로이딘 일행에게 자신의 좁은 방을 내준 베일런은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거실에서! 이것으로 지난 날의 잘못을 돌이키게 된 것일까나? 하하!"

기운 좋은 영감이라 속으로 생각하던 시테온은 좁은 방안을 둘러보았다. 로이딘과 시테온의 극적인 합의(?)로 루네에게 하나 있는 침대를 양보하고 둘은 침대 밑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베일런이 한 가지 까먹었던 게 있었는 지 열려있는 문간에서 말했다.

"내일은 공부를 좀 해야 될거야, 도시를 나가서. 내가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은신처를 같이 갈거거든? 여튼 내일 보세나"

베일런은 거실로 갔고 남은 세 사람은 나란히 누워있었다. 시테온이 팔을 이마 위에 올리며 말했다.

"오늘도 실컷 들었는 데 머리에 불붙겠다야"

"그러니까 침대에서 떨어지더라도 알아서들 해"

루네의 말을 들은 로이딘과 시테온은 아무 반응이 없다가 피식거렸고 피식거리자 웃음이 터져나왔다. 루네도 어둠 속에서 만족하는 미소를 짓다가 같이 웃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독이 쌓인 로이딘 일행은 다시 조용해 졌다. 로이딘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마치 잠시 후 꿈에서 무엇인가라도 맞이 할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정자세로 잠을 청했다.


의식의 저 건너 편에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한 듯 피데라의 빛이 사람의 형체가 되어 어둠 속에서 서 있는 로이딘을 만났다. 사람이 된 빛에게 로이딘은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정말 피데라라는 신이 맞습니까? 제가 신을 직접 대면하고 있는 이 순간 말입니다."

피데라가 답했다.

"꿈 속에서 나를 보고 있고 눈을 뜬 현실에서도 너에게 나타나지 않았더냐?, 위대함은 거창함에서만 발견되지는 않는단다."

로이딘은 방금 뒷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으나 신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피데라를 감싸던 빛들이 마치 꽃가루가 날아다니듯이 사뿐사뿐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의 아들들이 서로 만나게 되니 마음이 평안해지는 구나"

순간 로이딘은 당신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며 부정하고 싶었으나 거룩한 신 앞에 묵묵부답했다. 그러나 피데라는 그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언급했다.

"너는 아들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드는 모양이구나. 그럴만도 하지, 쓸데 없이 인연도 없는 신에게 목숨을 걸 만큼 요상한 임무를 하고 있는 자신에게 회의감이 들터이니"

로이딘은 이때다 싶어 마침 이야기 하고 싶었던 본질에 대해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지 않는 그냥 대륙의 평민, 나무꾼일 뿐입니다. 애초에 저와 당신은 접점도 없습니다. 제가 왜 당신을 따라 이 일들을 해내야 할까요? 그리고 이렇게 떠돌게 된 것일까요?"

피데라가 점차 사람의 형상에서 눈,코와 입이 흐릿하지만 몰려오는 빛들로 인해 형체를 잡아갔다. 로이딘은 살짝 겁을 먹었다. 온전한 인간의 모습이 된 그는 로이딘 앞에 서며 말했다.


"때론 우연이 운명이 된다 하지 않았더냐, 때라는 것이 도래했고. 그 때에 네가 일어선 것이지. 마치 수많은 새싹들 중에 하나가 먼저 일어나듯 말이다. 그럼에도 왜 그래야 하냐고? 네가 사라지면 이 세상도 사라진다. 내가 사라지면 너 또한 사라진다."

동공없는 빛나는 광채의 얼굴을 바라보는 로이딘은 피데라를 대면하였어도 자기가 낯선 헤르논까지 왜 오게 되었는 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새였다. 그는 마음 속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조각들을 생각했다.

이 또한 즉시 피데라는 로이딘의 마음을 알아 채고 짚어 언급했다.

"그래 그거야. 내 육신이 없어지면... 똑바로 듣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면 지금 당장의 추위는 가실 지 몰라도, 이그네움이 모든 곳을 밝히더냐? 아니면 이그네움이 모든 곳을 따스히 하더냐? 나의 조각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추위는 영원히 계속 될거야. 그리고 그 끝은 말 그대로 끝이 되겠지."

피데라는 뒤로 돌면서 마지막 한 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영원한 추위가 왜 왔는지 아느냐? 이게 다 나 때문이다. 너무 방심했어. 난 말로트에게 패배했고 저주가 흘려버린 물처럼 삽시간에 번져갔단다. 아들아, 나를 도와다오. 나는 힘없는 신이나 너로 인해 차차 일어서게 될 것이다. 나아가라 로이딘."

그렇게 로이딘의 꿈은 잔영으로 흩어지고 의식 저 너머로 사라져갔다.


베일런이 새벽이 끝날 무렵에 바로 그들을 깨웠다. 로이딘은 역시나 약간의 두통을 시달려야 했다. 시테온은 벌써 집안을 돌아다니며 자기만의 의식을 행하며 테오메자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루네는 침대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어깨를 만져댔다. 로이딘은 꿈 속에서 피데라를 직접 대면하여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헌데 만신전에서 정신을 잠시 잃고 분위기에 휩쓸려 온 듯한 시테온과 루네는 만신전에서 헤르논에 오기까지 잠깐의 언급 외에는 각자의 삶이 있음에도 로이딘을 따라가야 할 이유에 대해 따지거나 묻지 않았다. 한편으로 굉장히 고맙고 안심되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책임감과 함께 구체적인 이유가 있나 문득 궁금해졌다. 머릿 속이 잠시 복잡해질려 할 때 베일런이 로이딘 일행을 불렀다.

아침 식사는 베일런의 수고가 깃든, 다시 한번 겨울 수수스프가 제공되었다. 차마 그의 대접에 불만을 털어놓지는 못했다. 스프의 빵덩어리가 돌과 같아서, 불만을 말하지 못하게끔 베일런이 빵덩이를 많이 첨가했나 싶을 정도였다. 식사를 하면서 로이딘은 뭔가 분주해보이는 베일런에게 물었다.

"혹시 다른 일정이 있으신건가요?"

베일런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답했다.

"당연하지! 자네들을 은신처까지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온 다음 신전으로 가서 광대 짓을 해야하니까 시간이 필요하네"


일찍 식사를 마치고, 베일런과 로이딘 일행은 말을 타고 모두 헤르논 성문 밖으로 나갔다. 나온 곳은 서쪽 문이었고, 서쪽으로 달리다 어느새 북쪽을 향해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달리는 동안 싸늘한 아침부터 부지런히 활동하는 농부들과 아낙네들이 어떻게든 얼고 녹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땅에서 작물을 키우려 겨울수수들을 심고 있었다. 순찰을 도는 병사들이 산 기슭에서 내려왔다. 언덕을 지나 도시의 풍경이 차츰이 멀어질 무렵에 다시 해안가쪽인 동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베일런은 방향을 꺾을 때마다 기억할만 한 지형을 언급해주었다. 서문에서 달리다 북쪽으로 꺾을 땐 산 기슭에서 자주 내려오는 순찰대와 도시에서 떨어져있는 망루를 기준으로, 계속 똑바로 달리다 뒤로는 도시 풍경이 사라지고 차츰 절벽 바위산이 보이고 해안에 돌출된 바위가 보이는 순간에 그 쪽을 향해 달리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침내 도착한 절벽 바위산 아래에 묘지들이 있었다. 그리고 묘지 가까이 달려가자 작은 언덕 아래로 베일런과 교도들이 마련한 숨겨진 창고가 서서히 드러났다.


"와 여기는 배 탈 생각으로 오지 않는 이상에서야 보이지 않을 거 같은데요?"

시테온이 감탄했다. 절묘하게 가려진 유적이나 다름없는 공동묘지에 누구하나 찾아 올 이는 없었다. 이미 시립 묘지는 다른 곳으로 옮겨간 상태였고 이곳은 피데라 교도들이 주로 묻혔던 곳이며 그들만이 왕래했던 곳중에 하나라는 베일런의 소개가 있었다.

"몇 년 되었지, 신을 믿든 믿지 않든 누가 공동묘지 근처에서 지내고 싶어하겠나?"

발각될 위험이 없어 안심이 되었던 루네는 갑자기 스친 불길한 생각이 들어 급히 질문했다.

"혹시 저희가 여기서 살란 말씀은 아니죠?"

베일런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살기는...죽을때까지 살아야지 하하!"

루네가 눈을 까뒤집으며 감탄사를 내뿜었다.

"아! 세상에..."

베일런이 그녀의 반응이 재미난듯 지켜보다 다시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어차피 자네들은 준비를 마치고 다시 떠나야 할 거야. 나 말고 들릴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란 말이네"

이번엔 로이딘이 그 말에 지레 겁먹은 듯 물었다.

"아니 어딜 저희가 또 가야 해요? 오기까지 고생을 얼마나 했는..."

베일런이 급히 말을 중지시켰다.

"자! 자! 아직 일러, 이리로 들어와서 창고 안쪽을 구경하게!"


그들이 안쪽으로 들어간 공동묘지 인근의 숨겨진 창고는 도서관을 방불케하는 책들이 꽂혀있었고, 시테온이 좋아할만한 약재들이 천장에서부터 서랍, 책상에 한 움큼씩 놓여진 채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잉크통에 깃펜이 꽂쳐진 채로 펼쳐진 양피지와 함께 놓여 있었다. 벽쪽으론 작은 제단도 마련되어 있었는 데 피데라의 나무 조각상과 그 주변을 둘러싼 녹여진 초들이 모여 반원형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조각상 뒤에는 경구가 써진 양피지가 걸려 있었다. "피조물들을 살피시는 빛의 신, 영광의 아버지 피데라, 때가 되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베일런이 손바닥을 비비면서 차가운 공기를 내뱉으며 말했다.

"여기서 자네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될거야"

"나누게 될거야!"

움찔 놀란 로이딘 일행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제단 넘어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공간에 만들어 놓은 작은 그네에는 화려한 빛깔을 뽐내는 금강앵무새가 앉아서 로이딘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금강앵무새가 말했다.

"뭘 봐, 앵무새 처음봐? 처음봐? 베일런이 말한다! 듣기나 해!"



34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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