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42화 / 5장 전투 수도원
장편소설 빛의 여정 42화 / 5장 전투 수도원
"주문(언령)을 익히기 위해서 딱 두 가지만 기억하라. 인내와 반복이다. 그 전까지는 그 어떤 기적을 바라지 말라. 마침내 그대의 입에서 힘이 발휘되었을 때 왜 그토록 반복하고 인내해야 했는 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전투 수도사 아나트라-
얀자의 돌발행동에 놀란 로이딘과 시테온 그리고 루네는 그가 언급한 "두번째 선지자"란 단어를 어떻게 받아들여 할 지 몰랐다. 얀자와의 만남이 끝난 후, 일단 모두 내려가서 1층 중앙 신전에서 피데라에 대한 예배를 드렸다. 수도원 내에 종이 울리자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인파가 중앙 신전을 가득 메웠다. 일종의 환영식과 같았는데 단상에 올라 연단에 선 수도원장 얀자는 피데라의 말씀을 읆조렸다.
"피데라 안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이니, 사람과 땅 그리고 하늘이 광명의 아버지를 바라보노라." 그리고 얀자가 수도원 구성원들을 한 번 눈으로 훑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가장 앞에 앉아있는 로이딘 일행 그리고 베일런과 어디서 놀다왔는지 새까맣게 그을려진 진달라를 바라보았다. 진달라는 다행히 경건함을 이유로 쫓겨나지 않았다. 그는 대장장이였기 때문이다. 얀자가 입을 뗐다.
"오늘 합류하게 된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모인 형제자매 가족여러분에게 최초의 수도원장 아나트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 까 싶군요."
아나트라. 전설적인 수도사이자, 전투 수도사의 개념을 확립하고 수도원을 세운 평민 여성이었다. 그녀는 환상과 계시를 거부하고 가업을 물려받은 채 바구니를 짜는 일에 종사하려 했지만 쇠심줄보다 강한 그녀의 고집을 꺾기 위해 피데라가 직접 얼굴을 비추어야만 했다.
"만약 당신이 신이면 나를 공중에 들어올리시오"
의심하는 아나트라를 위해 피데라가 선택한 방법은? 그냥 자기가 직접 몸을 숙여 다리를 끌어안고 올렸다. 마치 평범한 사람이 사람을 들어올리듯 말이다. 아나트라는 헛웃음이 나오려다가 순간 자기 아래에 피데라가 사라지고 자기 자신은 그 자세로 온전히 붕 뜬 채 있음을 알자 그녀는 두려운 나머지 허공에서 발을 저으며 내려가보려했다. 바로 이어서 눈 앞에서 두 천사가 피데라를 들고 일어선 채 그녀의 눈높이 맞게 다가오자 그제서야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나 여전히 고집은 꺾이지 않았고 신을 도리어 시험하는 자가 되어 돌 하나를 쥐고 모습을 살피더니 강물에 물 수제비를 하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피데라라면 내가 던진 돌을 다시 찾아주시오"
의심많은 자녀의 요구에도 묵묵히 그는 강가로 팔을 뻗더니 강물 속에 있던 돌 하나를 공중으로 끌어 올렸다.
그런데 그녀가 던진 돌이 아닌 사람 다리만한 크기의 바위가 올라왔다. 이에 아나트라는 마법을 능숙하게 부릴 줄 아는 사람인가하고 여전히 아집을 부리려던 찰나, 피데라가 그녀 앞으로 바위를 가까이 당겨 두 눈으로 보여주었다. 바위 위에는 물수제비로 던졌던 돌이 그대로 누워 있었다. 마침내 마음이 요동쳐진 아나트라는 무릎을 꿇고 그가 빛의 신임을 그제서야 고백하게 되었다.
"저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옵소서"
"괜찮아 나 같아도 의심했을텐데 뭘, 이 또한 자녀들에게 심어준 나의 감정 아니겠느냐?"
피데라의 진심에 감명을 받은 아나트라는 짜던 바구니를 내려놓은 채 자기가 어떻게 할 지를 물었다. 피데라가 무릎을 꿇고 있는 그녀를 일으켜 세운 채 말하길,
"내 자녀들이 아비를 무시하고 서로 죽이고 죽이는 살육을 벌이는도다. 아나트라여 너는 살기 위해 준비하고 나의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얀자가 아나트라의 스토리를 마무리 지으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것이 전투 수도원과 전투 수도사의 시작인 셈이지요, 자 형제자매 가족여러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저주받은 시대에서 피바람이 부는 태풍 속에 갇혀 있습니다."
그는 피데라 교단의 일원이자 전투 수도사들의 수행을 독려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달라 당부했다. 또한 로이딘 일행을 바라보면서 입을 떼려고 했을 때 직감으로 알아챈 로이딘은 부담스런 소개는 말아달라는 듯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얀자가 미소 지으며 로이딘 일행을 부르며 사람들 앞에 일어서게 했다. 그리고 잠시 목례로 가볍게 인사하기를 청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리했고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얀자는 인간의 심리가 질투와 연이은 증오로 가득함을 잘 알기에 "두번째 선지자"란 이름으로 로이딘을 소개하지 않았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여정을 준비하는 한 사람으로 소개했다. 피데라의 신화 중 아나트라의 사례를 말하며 루네를 바라보았던 얀자는 그녀가 훌륭한 전사가 될 것임을 소개했다. 피데라가 아닌 테오메자를 섬기는, 다른 종교의 사제인 텝 오부자를 준비하던 시테온을 소개하며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평화의 사자가 될 것임을 축복했다.
이제 얀자는 축복의 기도로 예배를 마무리 지었다.
"빛의 아버지, 광명의 아버지시여. 그대의 피조물들을 어여삐 여기사 아버지의 영광을 실현할 수 있게 하소서" 모두가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광경은 시테온이 이마를 만지는 행위와 동일 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어벙벙하다가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도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리고 조용히 해산하여 각자 할일들을 하러 떠났다. 단상에 내려온 얀자는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가 남녀로 따로 분리되어 지내게 될 것임을 알려주었다.
이러한 생활은 떠나온 크리넬의 공동숙소에서도 마찬가지였던지라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기쁜 소식은 각자에게 1인실을 준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소심한 로이딘에게는 크나큰 안심이었는데, 덧붙이는 이유로는 주문을 연습하다보면 집중이 깨질 수 있기에 각자의 수행에 최적화된 생활 방식을 지향한다는 것이었다.
시테온이 숙소로 가는 길에 조용히 속삭였다.
"니네 신을 섬기는 방식 중에 이거 하난 맘에 든다"
가는 길 도중에 루네와 인사를 했고 루네는 숙소를 관리하는 한 여성 수도사와 만나 마저 다른 길을 갔다.
그런데 문득 로이딘은 궁금한 점이 생겨 앞서가던 베일런에게 물었다.
"베일런? 혹시 저희가 얼마나 오랫동안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베일런이 살짝 몸을 틀더니 멈추고는 말해주었다.
"글세? 주문이 익숙할 때 쯤? 험난한 길을 뚫고 다른 조각을 찾거나 새로운 임무를 위해서는 주문을 익히는 것이 필수거든"
그 답이 시원찮았는지 이번엔 시테온이 물었다.
"아...그럼 주문이라는 게 보통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나요? 익숙해질 때까지가"
"적어도 반년은 걸릴거야"
세상에나. 그때 동안 한 곳에 머물기에는 이 수도원은 너무나 작았다! 피데라를 섬기는 이곳은 분명 답답함과 종교에 경도되어 말이 통하지 않을 사람들로 가득할 텐데 세속적인 것을 과연 어떻게 참을 수 있으려나?
그런데 시테온은 뭔가 편안한 표정이었다. 로이딘이 의아해하며 왜 그러냐 묻자
"반년이면 잠깐 말 먹이 주러 다녀오는 시간이나 마찬가지야. 텝 오부자는 10년이 걸려"
그 말에 정신이 들은 로이딘은 상대적 행복감을 느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싶었다.
기한이 정해져 뭔가 버틸 여력이 생긴 로이딘이 부차적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한번 더 물었다.
"그러면 주문이라는 게 대체 뭐에요? 신앙의 발현이자 마법이라고 써 있던데"
베일런이 웃으며 말했다.
"곧 알게 될거야. 어차피 지금 알지 못해도 조만간 목이 아파서 이제 그만 알았으면 하게 될거야"
로이딘은 뭔가 큰 숙제인데다가 동시에 덫이라도 걸려버린 마음이 들었다.
43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