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편소설] 빛의 여정 62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62화 / 6장 땅이 흔들리다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62화 / 6장 땅이 흔들리다


6장배경.png

수도원장 얀자는 예배를 드리고 나서 자신의 서재에 머물고 있다가 급히 찾아온 방랑 수도사 한 사람을 대면했다. 이 사람은 현재 일어난 아나티리캄의 집단 학살에 대해서 직접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러 왔던 것이다. 아나티리캄에서 테오메자 탄압이 본격적으로 시작 한 지 얼마 안 될 무렵에 헤르논의 전투 수도원은 이때 처음 아보의 형제들, 아보테 그리고 아나티리캄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저녁 예배가 마칠 무렵이었으므로 수도원 내의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은 상황이었으나 얀자가 급히 경비병에게 수도원 간부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물론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분위기가 난리날 까봐 그 외의 사람들은 철저히 모르게끔 말이다.


베일런과 랜드, 진달라를 비롯한 많은 수도원 내의 고위 수도사들이 얀자의 서재에 모여 둥근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얀자는 방금 찾아온 방랑 수도사를 불러 세운 채 그에게 다시 한번 상황을 설명해달라 부탁했고 그는 학살과 약탈이 벌어지는 대륙의 상황을 이야기 해주었다. 처음 무표정이었던 그들이 점차 이야기를 듣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 변해가고 있었다.

"아니 이런 미친 놈들을 봤나? 마을들이 통째로 불타고 있다고?"

진달라가 격앙된 목소리로 방랑 수도사를 바라보며 외쳤다. 평소 같았으면 흥분한 진달라를 제지할 법도 한 데 베일런과 얀자 모두 가만히 앉아서 골똘히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랜드가 차분한 표정으로 피데라 사원들과 신자들 혹은 수도사 형제들의 안전은 알고 있는 지 물었다.

"누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매일매일 심문에 걸려들고 줄줄이 화형을 당하거나 생매장을 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피데라 사원 한 곳이 문을 닫았다는 것만 들었지 그 쪽 상황은 잘 모르겠습니다"


"사원을 불태우면, 아무리 작은 교단의 것이라도 반발만 커지리라는 것을 그들도 알 것이오" 얀자가 사원이 문만 닫혔다는 것에 조심스러운 추측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추측은 어떤 이성적인 것보다 무언가 기대 및 바램에 가까운 뉘앙스로 모두에게 들려왔다. 그의 말은 곧 언급한 사원이 어떻게 되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는 것을 뒤집어 느껴지게 했다. 진달라가 흥분한 상태로 말했다.

"우리 형제들을 꾸려서 구출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진달라. 무장한 병력이 움직인다는 것 자체를 황금 치유교단이 알 수도 있고 피해가더라도 아나티리캄 내 테오메자 신자들이 곱게 봐줄 리가 있겠소? 그들 입장에선 지금 쑥대밭에 같아보이는 이교도 놈들이 온 것이라 생각하지 않겠소이까?"

얀자가 조용히 답했다. 베일런은 여전히 테이블만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수도원내 경비대장 "바로사"가 이어 말했다.

"원장님 말씀이 맞지만 무엇보다 수도원내 병력을 일부 차출하면 우리 본 수도원내에 방어 병력이 비어버립니다. 예전만큼 많은 병력이 아니다보니 더 방어에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시퍼렇게 두 눈을 뜬 황금 치유교단은 헤르논의 수도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몰라도 바위산 인근에 숨겨져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데라의 수도원과 헤르논 내 피데라 신전이 온전히 모두 기능을 할 때, 물러스가 시장을 지내면서 점점 맛이 갔다는 소문과 함께 영원한 추위가 찾아오며 이그네움에 모두가 의존하기 시작하자 아예 본인만의 종교를 만들게 된다. 자신의 추종자를 어느정도 확보 한 물러스는 공식, 비공식적인 방법 모두 활용하여 피데라의 사원을 일방적으로 강탈하였고 피데라시스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수도원 내에서 반격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알고 있던 물러스는 도시 내 피데라 신자들의 신원을 확보하여 인질로 삼았다는 것을 대놓고 알려 함부로 반격하지 못하게 끔 하다가 대치 상황으로 진전은 보이지 않고 시간만 흐르게 되었다. 헤르논의 시민들은 점차 치유교단에서 내세우는 피데라와 물러스를 모두 받들어 모셔도 좋다는 이중 신앙에 적응이 되어 점차 물러스의 교단으로 대부분 넘어가게 되었다. 이렇기에 끝나지 않은 피데라시스와 황금 치유교단의 전쟁 중에 다른 곳의 신자들까지 구출하러 간다는 것은 부담이 컸다.


베일런이 아무 말 하지 않다가 조용히 입을 뗐다.

"그때가 바로 지금일까요?"

다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베일런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원장은 베일런이 하는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베일런은 이어 말했다.

"우리가 수도원을 비는 것이 어렵다면 소수만이라도 보내서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대해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단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훈련하고 있는 수련 수도사들을 보내서 말이죠."

그러자 바로사가 반박했다.

"그러기에는 수련 수도사들이 위험해집니다.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친구들인데. 차라리 우리 일부가 나서는 게 나을 지 모릅니다."

베일런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들은 피데라의 사명 아래 전투 훈련을 배우게 된다는 것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진작에 새기지 않았습니까? 훈련을 다 마친다 해도 이들이 떠나는 곳은 지금 대륙 전역이 난리가 났을 텐데 피차일반입니다."

얀자가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다가 눈을 감았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 여럿 있지만 오늘 들은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만 같네"


수도원에서는 아직 모르는 북방의 부족들까지 내려오고 있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보장된 미래는 없었다. 알 수 없는 운명으로 다들 몸을 맡겨야만 했다. 회의를 모두 마치고 정리한 서재. 베일런만이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베일런이 태연해보이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로이딘, 시테온, 루네. 보낼 사람이 이 친구들 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알고 있네. 그래서 자네가 그때가 지금이라 말하지 않았나?"

얀자가 자신의 책상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바라보았다.

"선지자의 증언"

그는 무심코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넘겨진 페이지에는 성 아나트라가 울로메히와 싸워 무찌른 삽화와 내용이 적혀있었다. 얀자는 저절로 로이딘이 생각났다.



63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

keyword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