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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의 여정 76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76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76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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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는 쉴 틈도 없이 다시 말을 몰아 캠프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달려왔던 길들이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지 싶었다. 그가 탄 말과 옆에 붙어 따라가는 말들은 갈기를 휘날린 채 최선을 다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캠프를 향해 다가 갈 수록 징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하늘이 흐려지고 있었다. 먹구름이 여기저기 끼어들어 낮의 하늘을 방해하려 들었고 캠프 위의 검은 하늘을 중심으로 먹구름들이 모여들고 있는 풍경을 마부는 바라보았다. 마주치는 숲에선 새들이 떼로 모여 마부를 스쳐 반대로 도망쳐 날아가고 있었다. 바람도 마치 그가 오기를 거부하는 듯 역풍으로 불어 그의 옷자락을 심하게 흔들었다. 곧 그의 모자가 날아가 저 멀리 사라지면서 인간이 된 피데라의 마음을 시험하고 있었다.


캠프가 위치한 바로 직전의 언덕에 올라가면서 저항은 더욱 심해졌다. 바람은 앞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거셌고 하늘은 마치 펜의 잉크를 떨어뜨린 듯 검어져만 갔다. 피데라가 팔로 이마를 가리며 앞을 보려 애썼다. 그러나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무언가의 방해 앞에서 말에 몸을 맡긴 채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모든 것이 흐릿하게, 바람으로 보이지 않는 풍경에서 유일하게 캠프만이 안개 속에 갇힌 듯한 모습으로 생생히 보였다. 그리고 그곳엔 칠흑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을 뿐 언덕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한 내막을 알 수 없었다. 다만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지 않음은 분명 해 보였다. 캠프를 바라 본 피데라가 마음이 철렁하여 얼른 언덕을 내려가고자 했다. 순간 그를 감싼 바람과 안개 근처에서 피데라에게 음성이 들려왔다.


"오랜 만이구나 형제여, 네가 하찮은 피조물의 몸뚱이로 이곳 저곳을 배회하고 있었다니 우습구나"

익숙한 음성이였다. 그리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음성이었다. 피데라는 자신의 형제이자 원수인 절망 그 자체인 "말로트"가 말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피데라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사방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닥쳐라! 이 배신자야. 아비의 뜻을 버리며, 형제를 쓰러뜨리고 하늘을 뺏은 자여"

말로트가 나지막히 웃었다.

"창조의 순리를 약해 빠진 놈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

피데라가 그간 볼 수 없었던 이성을 잃은 표정과 함께 소리쳤다.

"말 장난 그만하고 당장 나와! 여기는 나의 영역이다. 네놈이 감히 흔들 수 있을 줄 아느냐?"

말로트가 비웃으며 답했다.

"하늘을 가졌던 놈이 하늘을 빼앗겼으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 지 모르겠군? 그럼 직접 와서 보라"

그리고 사방의 안개가 옅어졌다. 캠프가 더욱이 선명하기 보이기 시작했고 칠흑의 빛이 안 마당 감옥 쪽에 있음을 피데라는 알게 되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을 다시 급히 몰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안 마당의 사람들이 어떻게 된 것일까?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는? 피데라는 자신의 자녀들이 걱정되었다. 평지를 달리게 되었을 때, 도망쳤던 피데라를 추적하려던 산개한 경비병들의 시체가 이곳 저곳에 놓여 있었다.그런데 로이딘 일행이 쓰러 뜨린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잔인한 정도로 물어 뜯긴 시체들이라 그것이 곧 핏빛 늑대의 소행임을 피데라는 알게 되었다. 그는 달려가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핏빛 늑대와 절망의 추종자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캠프 입구까지 달려가 나무 울타리를 건너 곧 안 마당으로 진입했다. 요상한 주문소리가 낮게 들려오고 있었다. 검은 빛이 달아올라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긴장한 채 사람들이 있던 곳으로 돌고 돌아 깊숙히 들어가니 그 내막을 이제 알게 되었다.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가 수많은 시체더미 바깥에서 쓰러져 누워 있었다. 그들이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알수 없었다. 감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해 시체들로 반듯이 제단으로 쌓여져 있었고 시체를 밟은 채 시체로 만든 제단에서 칠흑의 빛을 불러내며 넝마를 입은 뒤틀린 형상의 절망의 추종자가 팔을 파르르 떨며 제단에서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으르렁 거리는 소리와 함께 핏빛 늑대가 추종자 앞을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달라들 듯 피데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데라가 사람들이 모조리 쓰러진 것을 보자 다시 이성의 끈을 놓게 되었다. 그는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말을 타고 온 몸의 핏줄기가 빛으로 변한 채 제단을 향해 돌진했다. 추종자는 달려오는 피데라를 보며 흠칫 놀라 의식을 중지하려다가 핏빛 늑대가 맞서 달려가는 것을 보고 다시 집중했다.


그가 탄 말과 따라오는 말 모두에게서도 온 몸에 빛 줄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맥박처럼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의 눈동자는 섬광으로 빛이났고 갈기는 가느다란 빛줄기들로 가득 메워졌다. 핏빛 늑대가 질풍같은 속도로 달려오자 어찌나 빠른 지 피데라를 덮치고 말들은 잠시 주인없는 몸으로 앞으로 내달리다가 방향을 전환해야했다. 피데라는 보통 사람이라면 낙사를 당할만 한 충격으로 땅에 쓰러졌고 핏빛 늑대도 넘어지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그에게 달려가려 했다. 괴성과 함께 다시 핏빛 늑대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칼날과 같은 발톱으로 그를 향해 뛰어 들었다. 피데라는 섬광으로 이루어진 자신의 손바닥을 잠시 땅을 향해 내렸다. 그의 머리 높이만큼 뛰어든 늑대가 바로 앞까지 올 무렵에 다시 손을 위로 휘저었다. 땅 속에서 눈조차 뜰 수 없을 정도로 빛나는 기둥이 솟구쳐 단 한번에 핏빛늑대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핏빛늑대는 빛을 맞고선 눈 녹듯이 육체가 산화해버리며 한 줌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 광경을 바라본 추종자가 긴장하며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팔을 덜덜 떨면서 마지막 안간힘을 쓰면서 읆조리고 있었다.

피데라는 천천히 걸어가다 추종자가 주문을 계속하는 것을 읆조리는 것을 보고 달려갔으나 때는 늦어버렸다. 마침내 추종자가 주문이 성사됨을 보고 피데라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우리 주인님의 완성작을 보아라"


그의 몸이 앞에 있던 칠흑의 빛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이윽고 사방이 진동하더니 시체 몇몇을 끌어당기며 흡수하기 시작했다. 로이딘 일행의 육체가 빨려 들어가지 않게 하려 다시 근처로 달려가던 피데라는 거대한 파동을 맞으며 그리고 수많은 시체들과 함께 공중으로 튀어 날아가면서 캠프의 나무 벽에 세차게 부딪혔다. 육신의 고통을 느낀 피데라가 얼굴을 찌뿌렸다. 괴로워하며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금새 표정이 공포로 바뀌였다. 절망의 추종자가 주문으로 만들고, 절망이 축복을 내려 만든 괴이한 피조물인, 싸늘한 육신들이 하나로 합쳐져 만들어진 하늘 높이 만큼 거대한 칠흑의 뱀이 흉악한 낯을 비추며 제단 주변을 초토화시킨 채 소환되었다.



7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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