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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빛의 여정 77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77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77화 / 7장 흐려지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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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시체로 된 괴물? 나는 대륙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보았지만 그런 허무맹랑한 헛소리를 듣기는 처음이다. 나는 전설을 믿지 않는다. 어느 민족이나 도시든 제 각기 구전과 전설이 있다하나 무슨 시체로 주문을 부리는 인간들이 있다니? 아무래도 피데라시스들은 북녘 땅의 차가운 공기를 잘 못 마신게 틀림없어 보인다." - 아보테의 탐험가 "미티오"의 대륙 탐험기 중에서-



뱀이 크게 아가리를 벌리며 낮고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뱉었다. 넘어진 피데라가 그 광경을 보아하니 그가 벗어나려 했던 숲 속에서도 쉽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괴물이였다. 마치 도시에 있는 신전만큼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가리를 벌린 입에서는 두 갈래의 혀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입 안은 온통 어두운 동굴과도 같았다. 그 괴물이 등장하자 사방에 있던 온갖 시체들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밀가루 반죽해서 뭉쳐놓듯 괴물의 길게 뻗은 몸뚱아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군데군데 팔이 튀어나오고 다리가 튀어나오고 온기를 잃은 사람들의 얼굴이 군데군데 튀어나와 이 절망의 피조물은 두려움과 혐오 그 자체의 우상물이였다.


피데라가 나무벽에 기대며 몸을 일으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 아무리 빛의 신이라 한들 어디까지나 그의 본체, 본성은 인간 육신이란 그릇에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허나 피는 흘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장 안쪽 까지 고스란히 전해지는 충격인지 잠시 심호흡을 해야했다. 피데라가 손을 짚으며 잠시 숨을 돌리려 하자 괴물은 그런 여유조차 주지 않으려는 모양인지 신전만큼의 긴 몸 뚱아릴 움직여 성문만 한 대가리를 휘두르며 주변의 흩어진 시체를 잡아 먹었다. 이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의식을 잃은 시간이 곧 영겁의 시간으로 바뀔 참이었다. 괴물이 이어서 흩어진 로이딘 일행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 주변의 시신을 게걸스럽게 낚아채 삼켜 버렸다.


가장 가까이에 의식을 잃은 시테온을 향해 다가온 칠흑의 뱀은 다시금 혀를 낼름 거리며 검붉은 눈동자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유지하며 아가리를 벌렸다.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말아야 했던 피데라는 적어도 자신을 대면한 그리고 자신의 뜻을 함께 할 자녀들 또는 인간 동료들을 보호해야 했다. 다시금 빛이 나는 손을 휘저으며 이번에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동작을 보였다. 뱀이 재빠르게 몸을 낮추어 땅에 있는 시테온 시신을 잡아채려 할 때 시테온을 감싸며 나타난 후광에 입안의 톱날과 같은 이빨과 혀가 부딪혀 불꽃이 튀었다. 괴물이 높은 음으로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내뱉으며 튕겨져 나온 아가리를 뒤로 물리면서 구렁이 같은 긴 몸 뚱아리가 잠시 위축되었다.


피데라가 외쳤다.

"흉측한 괴물이여, 이 땅에 있어설 안 될 부정한 육체여. 속히 떠나 새벽으로 사라지거라!"

검붉은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괴물은 다시 혀를 낼름거리다 입을 벌리고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심히 듣기 거북하고 소름끼쳤고 피데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뱀이 몸뚱이를 흘리며 나아오더니 똬리를 틀고 하늘에 닿을 듯 위에서 아래로 피데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데라가 핏빛 늑대를 날려버리듯 다시 땅 속에서 빛을 꺼내와 칠흑의 뱀에게 휘둘렀으나 몸뚱이 중간을 스쳐 몇몇 시체들이 나가떨어지면서 빛으로 산화되는 것 외에는 피해를 주지 못하였다. 뱀의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고 혀만 낼름 거릴뿐 가만히 서서 우스운 장난을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뱀이 입을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마치 그 목 언저리에서 내뿜는 듯 절망이 외치고 있었다.

"아...한심하구나 피데라, 하늘에서 내 너를 치지 않았어도 너는 알아서 떨어졌었을 것 같구나"

피데라가 거대한 뱀을 올려다보며 외쳤다.

"닥쳐라! 말로트. 니가 있어야 할 곳은 영원한 새벽이니 내 너를 추방시키겠다"

그러자 뱀의 목소리가 크게 웃어댔지만 답하지 않고 머리를 휘둘러 피데라를 향해 내리 꽂았다. 피데라는 자신의 몸을 빛으로 감싸 뱀의 입을 떨쳐냈다. 뱀이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커다란 몸을 휘젓는 바람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망루가 부딪혀 박살이 나면서 흩어져 버렸다.


그것을 바라보던 피데라가 무언가 떠오른 듯 광채로 감싼 자신의 몸을 이끌고 나무 벽의 다른 망루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데 뱀은 이 상황을 즐기듯 천천히 꼬리를 이리저리 휘저으며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귀엽구나, 어떻게든 할퀴어보려는 늑대새끼 같으니"

망루까지 도달한 피데라는 뱀의 머리는 아니지만 이제 뱀 몸뚱아리의 중간 높이만큼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외쳤다.

"오라! 부정한 피조물이여"

칠흑의 뱀은 이제 장난은 필요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잠시 고개를 뒤로 물리더니 먹이를 낚아채는 동작으로 머리를 잽싸게 망루로 향했다. 그 거대한 성문만한 머리가 망루를 으스러 뜨리려 공중에서 재빨리 내려오기 시작했다. 피데라가 그가 데리고 다니던 두마리의 말을 불렀다. 빛나는 갈기와 사방을 비추는 모습으로 변모한 말들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가 손 짓으로 뱀을 지목했다. 그러자 말들이 그 어느때보다 빠르게 그리고 담대하게 말굽소리를 강하게 내며 뱀의 똬리가 있는 곳을 향해 돌격했다. 달리면서 퍼져나오는 갈기들의 빛과 눈에서 흘러나오는 투지의 기운은 저녁인지 새벽인지 모를 검게 변한 캠프 주변에서 유난히 도드라지게 눈 부셨다. 달려오는 두 빛이 더욱 커지면서 말인지 빛덩이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고 곧 뱀의 똬리에 말의 머리가 부딪혔다. 피데라가 팔로 눈을 가릴 정도로 섬광이 튀었다. 뱀이 고통스러운 듯 더욱 더 크고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이 틈을 노리지 않고 피데라는 캠프 벽 너머로 저 멀리 평지의 땅을 바라보며 그쪽으로 손을 돌리며 손바닥을 아래로 향했다. 그가 뻗은 손 너머로 땅이 흔들렸다. 펼쳤던 손이 이제 주먹을 쥐자 땅이 더욱 요동치기 시작했다. 뱀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균형을 잃어 이리저리 흔들릴 때 피데라는 캠프 안 뱀의 머리를 향해 팔을 뻗어 손을 내보였다. 아까 전보다 더욱 큰 빛 줄기가, 마치 거꾸로 돌리면 먹구름 낀 하늘 틈으로 내리는 빛처럼 거무튀튀한 땅에서 뱀처럼 커다란 빛이 튀어나와 소리없이 뱀의 머리를 비추었다.


그러자 머리의 창백한 피부들이 조금씩 떨어져나가기 시작했고 뱀은 견디기 힘든 비명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몸뚱이에 붙은 시체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몸을 격하게 흔들면서 캠프 안 마당에 놓여져 있던 수레와 상자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뱀의 눈은 여전히 피데라를 바라보며 그 증오의 열기가 가득 품어져 있었고 최후의 저항을 시도하려 다시금 그를 입으로 덥치려 했다. 하지만 머리를 뻗을 수록 빛이 더욱 거세지니 뱀의 머리는 순식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하얀 섬광에 윤곽만 드러날 뿐 묻혀버렸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뱀이 다시 머리를 내빼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점차 흩날리던 먼지들이 이제 더욱 크게 일어나 통째로 뱀을 해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인간의 몸으로 뱀을 바라보던 피데라도 그때 마지막으로 뱀을 바라보았다. 캠프를 통째로 감쌀만한 광휘가 번쩍였고 이내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7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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